미국 마케팅컨설팅업체 앤더슨 애널리스틱스가 미국 대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 삼성전자를 일본 기업이라고 답한 대학생은 무려 58%였다. LG전자 역시 응답자의 42%가 미국 기업이라고 대답했고, 26%는 일본기업이라고 대답했다. 한국 기업이라는 응답은 겨우 9%에 그쳤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한국 정부가 국가 브랜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미국 대학생들이 한국을 모를 수도 있다. 아니면 한국 기업들이 한국 회사라고 하면 물건이 안 팔릴까봐 일부러 일본기업으로 착각하도록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 대학생이나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국적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과거 수입품은 대부분 일본과 독일 제품이었기 때문에 브랜드 국적이 어디인지 관심도 없고 모든 브랜드가 일본이나 독일에서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의식이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 브랜드에서 국가라는 요소는 점차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브랜드에서
교회에도 새로운 흐름이 요구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교회평가는 “목사 브랜드”가 기준이 되고 있다. “목사 브랜드”가 교회의 가치를 결정하고, 교회 선택과 출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목회자들은 이런 현상을 도리어 교회성장의 중요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목사 브랜드를 명품화하는데 많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목사를 홍보하는 일에 영향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교인들도 명품브랜드를 가진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교회 브랜드”에서 목사라는 요소가 배제되는 진정한 교회가치 회복이 가능할까? “목사 브랜드” 가치만을 존중하는 교회는 아직도 일본 밥통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같다. 목사에 의해 교회가 성장하기도 하고, 교회가 무너지기도 하는 현실에서 목사의 유명함보다는 교회 구성원들의 인격과 사랑과 섬김의 모습이 “교회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교회의 주체는 성도들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적 가치가 강조되고, 일터에서 걸어 다니는 성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브랜드는 성도들이어야 한다.
교회부흥시대에서
지난 100년 동안 한국교회는 목사가 중심이 된 교회부흥시대였다. 세계 50대교회중 절반이 한국교회일 정도로 놀라운 교회성장의 축복을 누렸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교회부흥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마이너스성장으로 교회성장의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고 거부한다. 지난 15년 동안 한국교회는 ‘새 신자 감소, 재정 감소, 출석율 감소’라는 3저(低)현상과 ‘이탈자증가, 일 안하는 제직증가, 고령화증가’라는 3고(高)현상으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만일 2030년까지 이대로 간다면 한국교회는 반에 반 토막이 날 것이라고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진단하고 있다. 목회현장은 노력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과 탈진현상의 늪에 빠져있다. 문 닫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으며, 하나님은 무능한 신(神)이 됐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15년이 골든타임이다. 지금이다.
한국교회가 불쌍하다.
너무 힘들어 슬피 울고 있다. 안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개독교’ 성경을 ‘구라경’ 목사를 ‘먹사’라고 조롱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불신자들의 시각보다 더 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시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을 ‘가나안교인’이라고 부르는 신조어까지 유행하고 있다. 교회의 비리를 세상에 알리고 언론에 나팔부는 사람들이의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다. 교회의 싸움과 분쟁은 잠시도 쉴 줄 모르고 분열하고 있다. 기독교의 적은 우리 안에 있다.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고 교회를 비난하는 소리가 커진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고(故) 옥한흠 목사는 믿음의 사람은 “낙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낙망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지금 ‘대형교회를 비난하거나 작은교회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지만 위대한 교회, 크지만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작은 교회는 무시당하고 큰 교회는 손가락질 당하고 있는 아픔을 부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교회 외에는 답이 없다.
교회만이 세상을 이기고, 교회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며, 교회만이 세상의 소망이다.
일터부흥시대로
이제는 일터부흥시대다. 일터부흥이란, 건물성전을 통해 사람성전을 세워, 걸어 다니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세우신 것이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One-body)이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올라 가셨지만 여전히 그 분의 몸은 이 땅에 남겨두셨다. 그 몸이 교회인 것이다.
무늬만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디자인하신 주님의 교회를 세워(Church-planting) 가정을 세우고(Home-planting) 하나님의 나라(Kingdom planting)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일터부흥이다.
교회의 가치는 사람이다. 이제는 목사중심의 “교회부흥시대”에서 평신도 중심인 “일터부흥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더 큰 교회를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문화, 종교, 외교…. 모든 분야에서 걸어 다니는 성전을 세워 세상에서는 성공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승리하는 “성공을 넘어 승리하는 요셉 같은 일터부흥의 주인공을 세우는 것이다.” 교회 외에는 답이 없다. 교회만이 세상을 이기고 교회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교회만이 세상의 희망이다. 교회는 세상에 희망을 주는 “희망제작소”가 돼야 한다.
김근중 목사 / 늘푸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