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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클렙시드라와 총회의 클렙시드라

지난 9월 기독교한국침례회 107차 총회에 3박 4일을 참석하면서 올해 총회는 나에게 있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총회로 기억된다. 특히 교단에 산적해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작금의 현실들을 보면서 가슴 아프기도 하고 또 깊이 생각하게 하는 동기도 됐다.
현대인들은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현상은 목회자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화의 내용들은 깊이가 없고 대화라고 나누는 것들이 고작 가십거리에 불과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소크라테스의 인생 명언가운데서 한 문장이 생각난다. “숙고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침례교회는 개교회주의라는 명분아래 숨겨진 미묘한 이기주의에 익숙해 있어서 교단의 현재와 미래에 별 관심 없이 살아온 나날들을 깊이 반성하고 숙고하면서 우리 교단을 느낀 것은 작금의 우리 교단의 상태가 아포리아(혼란, 난제)의 상태에 빠져 있지 않는지 심히 염려가 된다.


총회를 참석할 때마다 늘 놀라는 것은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은 어떻게 저렇게 논리적으로 자기 의사를 잘 전달하며 말을 잘할 수 있을까 감탄과 부러움, 그리고 나도 저들처럼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의장은 내가 손을 들면 발언기회를 줄까? 준다면 나도 저렇게 정리가 된 말을 당당한 태도로 잘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면 나는 도저히 저렇게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테네가 제국으로 발돋움하다가 쇠퇴기를 맞았을 때 가장 발달한 것이 수사학이었다. 수사학자들 가운데 소피스트들은 특히 말을 잘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아테네가 쇠락해 가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 잘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젊은이들은 아테네의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소피스트들에게 말하는 것을 필수적으로 배워야 했다.


소피스트들은 짧은 시간 안에서 자기가 주장하는 말의 기승전결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아테네의 자유시민이라면 누구나 시민들 앞에서 발언할 수 있지만 발언할 시간은 언제나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그 시간 안에서 그는 자기의 주장의 목적과 그 목적의 기승전결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소피스트들에게 돈을 주고 말하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말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기 위해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클렙시드라”라는 물시계였다. 이 물시계는 항아리 아래에 구멍을 뚫고 물방울이 떨어지게 해서 시간을 재는데 이 항아리에 담아둔 물이 다 떨어지는 시간이 정확하게 6분이었다.
그래서 말을 배우는 사람들은 “클렙시드라”라는 물시계에 맞춰서 6분 이내에 기승전결을 짓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하고 반복해서 훈련해야만 했다.


그 결과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어디를 가나 대중 앞에서 자기주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에 익숙했다. 그들 가운데서 ‘소크라테스’의 제자 가운데 한명인 ‘알키비아데스’도 말 잘하기로 유명하다.
그 말 잘하는 ‘알키비아데스’가 아테네의 쇠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총회에서도 기독교한국침례회식 ‘클렙시드라’가 도입됐다.

그것도 6분이 아닌 3분으로 말이다. 그 이유는 아테네의 젊은이들보다 발언자들이 더 많아서 발언하려는 대의원들에게 골고루 발언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3분 이내에 자기의 안건을 대의원들에게 이해시키는 대의원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떤 대의원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네 번 발언의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이 발언을 독점한다. 우리 교단 안에 저렇게 말을 잘하시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농어촌 목회를 삼십 수년 하다 보니 그런지 말하는 것에는 전혀 자신이 없다. 다만 작금의 농어촌이 급격한 고령화가 되어가다 보니 어떻게 하면 농어촌교회들이 가까운 미래에 문을 닫는 현상을 막아 볼까 고민하던 차에 기독교한국침례회 사회복지재단을 세우는데 필요한 기금 중 일부를 내고 사회복지재단을 세우는 일에 헌신해 줄 것을 요청받고 농어촌교회를 살리는 길은 이길 뿐이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하다보니 이사회장직을 본의 아니게 맡게 됐다.
문제는 총회 회의장이었다. 한분이 복지재단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사장은 나와서 답변을 하라고 호통치고 명색이 이사장이라는 사람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갑자기 하늘은 노랗게 변하고 목구멍은 타들어가고 3분의 법칙은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입에서는 횡설수설하는 말이 흘러나오고 마이크는 이미 꺼져 있는 상황에서 아! 말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청산유수처럼 3분 안에 자기 할 말들을 또박또박 잘도 하고 그리고 또 하고 또 하는 분들이 다시 한 번 더 부럽기만 하다.


말하기를 돈 주고 배운 아테네의 젊은이들도 6분 제한의 “클렙시드라” 물시계 법칙을 적용받는데 우리 총회의 “클렙시드라”의 3분 법칙은 좀 야박하지 않는지? 하지만 우리 침례교 목회자들의 말하는 능력이 소피스트들의 말하는 능력보다 더 뛰어난 것은 아닌가? 하지만 “클렙시드라”로 훈련된 웅변가들이 넘쳤던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망해서 아포리스 상태가 된 것 같이 오늘날 말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기독교한국침례교회에 밀어닥친 아포리스 상태를 말로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고 오로지 서로 대화하는 총회가 됐으면 한다.


이정일 목사 청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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