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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의 결정체 :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최현숙 교수의 문화 나누기>

2018년을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각오와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한해였건만 새로움은 어느새 희석되고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이 되고 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 올 한해를 위한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을 구체화하는 일을 하면서도 옛 습관으로 굳어버린 나의 모습에 가끔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한해를 잘 보내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바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다. 

바흐가 살았던 17세기에는 바이올린에 비해 첼로는 그다지 크게 주목받는 악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는 첼로를 위한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물이 바로 무반주 첼로 조곡이다. 
이 작품은 6개의 바로크 춤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악기를 위한 모음곡이나 조곡과 그리 다르지 않지만 단선율 악기인 첼로를 통해 여러 성부가 어우러지는 듯 한 대위법적인 효과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난해한 면을 가진 작품이다.

한대의 첼로로 선율과 통주저음의 연주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바흐는 두 가지 방안을 모색했다.  첫째, 하나의 선율이면서 음악적으로는 화성적인 진행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실제로 단선율이 아닌 화음을 연주하는 중음주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점은 오늘날까지도 첼로 연주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이 작품을 첼로의 성서라고 부르며 일생을 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음악애호가나 연주자들에게 세월은 거슬러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 작품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 기상, 바흐가 가진 정신이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음악이 가진 가장 큰 내면적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한 단어로 축약한다면 정신의 순수함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는 성실한 작곡가였다. 그러나 그 성실함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여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바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찬양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장 고귀한 가치로 알았던 인물이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성실하게, 그리고 모든 열의와 성의를 다해 수행하려는 순수함이 그의 삶과 음악의 기초가 됐다. 단선율 악기의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그 악기가 할 수 있는 최고 그이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더 많은 수고와 고민을 요구하면서 바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는 평범한 것보다 조금 더 애쓴 것을 최선이라 하지만 바흐는 거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기 까지 필요한 최선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의 음악을 통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평범한 것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불가능의 경계까지 뛰어 넘어 사람의 한계를 초월한 바로 그 경지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것은 찬양에 대한 엄중한 교훈이다.

매주일 성가대원으로, 반주자로, 혹은 지휘자로, 찬양인도자로, 아니면 찬송을 드리는 예배자로 우리는 얼마나 순수하게 최선 그 이상을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올 한해 우리들의 예배가 이런 순수한 노력으로 살아나고 힘을 발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모인 교회공동체는 가끔 소란하고 혼란스러워도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최선보다 더 큰 것을 드리며 예배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영적 생기를 공급받는 진정한 산제사로 올려 지길 기대하며 기도한다. 바흐의 음악처럼 순수하고 간절한 소망과 기도로 세워지는 한해를 소망하며 우리들의 예배가 살아나는 한해이기를 바란다.

최현숙 교수 
침신대 교회음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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