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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교회

반종원 목사
수원교회

신학교 학부도 졸업하기 전에 담임 목회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33년의 세월에 접어들었다.
한 가지 일에 30년의 세월을 걸어왔으면 달인이 되든가 프로가 됐어야 할 텐데 아직도 목회는 여전히 미숙하고 설교는 날이 갈수록 힘이 든다. 어느 시인은 자신의 묘비에 “우물쭈물 하더니 내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써달라고 했다지만 나 역시 어영부영 하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후반전을 한 참 지나서 내리막 언덕 에 와 있다.
젊은 날에는 야심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참 많았다. 때론 나침판을 잊어버려 방향을 놓치고 헤맨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주님께는 잠간 쉬시라고 하고 나 혼자 나서서 무얼 해 보려다 실수도 했다.


목회 30년 동안 마당만한 터 위에 원두막 같은 예배당 건물을 짓고 수년 동안 빚 갚느라 헤매다가 몇 해 전 다시 손바닥만 한 주차장 하나 사놓고 또 다시 빚 갚느라고 허덕이고 있다. 사실 나의 목회 꿈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내 고향은 강원도 산촌 두메산골이다.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는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여러 분 계셨다. 그 중에 어떤 부모님들은 아들 이 군대를 가면 편지를 읽어드리는 일. 답장을 써 보내는 일을 어린 내게 시키시곤 했다. 아예 우체국집배원이 우리 집 까지만 동네 편지를 배달하면 저녁에 일 밭에 가셨던 어른들이 들여서 편지를 받아 가시고는 했던 기억이 난다.  


농한기가 되면 마을 아저씨들은 사랑채에 모이고 아주머니들은 우리 집 안방에 모이셨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우리 동네는 집성촌인데다 내가 늦둥이로 태어난 까닭에 항렬이 높아서 연세가 많은 어른들도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불러드렸다. 안방에 모인 아주머니들은 이야기책을 읽어드리면 아주 좋아하셨다. 나는 어려서 고전 이야기책과 동화책을 참으로 많이 읽었다. 춘향전, 별주부전 흥부전 장끼전 장화홍련전 등 당시에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이야기책은 거의 섭렵을 했을 것이다. 몇 번씩 읽어도 할머니들은 늘 처음 들으시는 것처럼 재미있어 하셨고 또 나 역시도 재미있어서 읽고 또 읽고 했다.  학교에 가면 장르가 다른 동화책이 많이 있었다. 시골 학교라 지금 생각하면 아주 소량의 책이지만 그때는 엄청 많게 느껴졌다.


동화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안데르센 동화집이나 이솝 우화집은 표지가 다 낡아지도록 읽었다. 그 중에 안데르센 동화는 나의 어린 시절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데르센동화에는 주로 공주, 왕자. 하늘과 별, 바다, 바람이 소재로 등장한다. 하나님, 마녀도 등장을 한다. 엘리제 공주가 백조가 된 오빠를 살리기 위해 벙어리가 되어 온갖 희생을 한다. 11명의 오빠들도 나름대로 얼마나 동생을 아끼고 형제애가 좋은가? 밤이면 마법에서 풀려난 백조들이 사람이 되어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 복판 작은 바위위에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둘러서서 바람과 파도를 이겨내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동화 같은 목회를 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마녀들의 시기와 악마들의 동굴이 도사리고 있고 악당들이 들끓고 있는 세상 영적 전쟁터 한복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주님을 향한 믿음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십자가 부활신앙의 생동감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주님 기뻐하시는 동화 속에 교회를 세워가는 그림을 가슴속에 그리면서 목회를 했다. 물론 현실의 벽은 동화나라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품은 교회는 늘 그러했다.  우리 교회 2020의 비전을 성도들에게 그려주면서 두 가지 큰 꿈을 꾸게 했다. 하나는 한 평생 주님을 의지하고 사시던 노인세대들의 고단한 인생의 쉼터가 되는 교회이고 또 하나는 다음세대를 위한 작은 체육관 하나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저 꿈만 꾸다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주 작은 소망을 가슴에 품고 기도한다. 2020 비전은 다 이루지 못했지만 교회에 빚은 물려주지 않으려고 기도한다. 빚 없는 교회, 나는 헌금하려고 빚은 지지 말라고 강조하는 목사이다. 집을 팔아 전셋집 가고 전세 집을 월세 집으로 옮겨 가면서라도 교회에 헌금하면 주님이 채우시고 갚으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지만 나는 그러지 말라고 가르친다. 신앙생활 잘 해서 하나님이 복 주시거든 그때 가서 헌금하라고, 복 주실 때 까지 기다리라고 얘기한다. 십일조도 할 수 있는 믿음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가르친다. 물론 새 신자 등록도 마음 내킬 때 자유롭게 하게 한다.


나는 목회가 행복하다.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설 때마다 일제히 주목하는 교우들의 눈동자가 너무 좋다. 동화 속에 나오는 제비집에서 먹이를 물고 올 어미를 애타게 기다리는 제비집을 실제로 보면서 자랐다. 먹이를 물고 오는 어미를 향해서 일제히 노란 주둥이를 벌리는 새끼들의 애절한 모습도 보아왔다.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한 여름 나고 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창 밖 비 소리도 정겹다. 다시 동화 속으로 가고 싶다. 초심으로 돌아가 동화 같은 목회를 하고 싶다.
어느새 내 손에는 조금 나이 들어서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명작 어린왕자가 들려있다.
 어린 왕자가 말한다.  “어른들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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