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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의 덕스러운 복음전도의 기수 이덕여 목사(1)

출생과 성장 그리고 신앙
이덕여(李德汝) 목사는 1899년 9월 7일에 충남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 116번지에서 부친 이정회(개국開國466년<1857년> 4월 8일~대정12년<1923년> 8월 25일)와 모친 김정봉의 장남 이덕근(李德根)으로 태어났다. 
본명인 이덕근 보다 이덕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덕근의 품성이 덕德을 베푸는 분으로 여겨져서 교단에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된 이름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덕근이라는 이름보다는 이덕여 목사로 부르게 된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한문을 공부했으며, 부모는 그가 한학을 공부하여 관리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1912년부터 7년간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한문 공부를 끝내기 일 년 전인 1910년 마을을 방문한 전도인인 이후로 전도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했다. 그때가 1910년 6월이었다. 이덕근은 이후로 전도사의 전도를 받고, 1910년 6월에 전 가족이 동시에 믿기로 작정한 후 이 전도사의 자택에서 처음 모여 예배를 드리고 광시교회라고 명칭을 붙인 것이 계속 이 전도사의 지도를 받으면서 전도에 충성하므로 광시교회는 순식간에 수십 명의 신자들이 모이는 성장을 가져왔다. 그때 이덕근은 이 전도사를 보좌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인근 부락인 봉우실이란 곳에 지교회를 세우게 됐고, 그해 11월부터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으며,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됐다.


그 다음해인 1911년 2월에는 이덕근 성도의 부친인 이정회 성도는 자신의 집을 교회에 모두 드렸으며 예배당을 넓혔다. 그럼에도 인근에서 몰려오는 교인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1911년 2월 이후로 전도사가 사임을 했고, 같은 2월에 부친 이정회 성도가 자신의 집을 전부 바치고, 가옥 일부인 3층을 개조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그 후 마을에서 함께 기도하던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헌금을 시작할 때 그는 자기 집 사랑방을 임시 교회당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교우들과 힘을 합해 교회를 건축하기로 하고 기도에 힘썼다.


모든 교인들은 성냥을 팔기도 하고, 청년들은 돌을 날아오기도 해서 자금이 모아지고, 물자가 확보되자 교회를 짓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는 전보다 훨씬 넓은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1911년 2월부터 시작된 교회 건축에 온 마을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동안 땀 흘리며 수고했으며,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공사가 마무리 되고, 1911년 10월 경 드디어 마을에 독립 건물로 교회가 세워졌다. 이로 인하여 사실상 광시교회는 충남 예산 지방에서는 모교회로 그 역할을 했으며 인근 여러 곳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예산 구역회가 발족하여 눈부신 부흥을 이루었다.


이덕근 성도는 교회에서 반장의 직분으로 봉사했다. 이 광시교회가 예산 구역의 본부교회가 되어 여러 교회를 세우고 전도함으로 교회는 날이 갈수록 부흥되었고, 신도들은 날마다 더해졌다.
1913년 5월, 이덕근 성도는 광천 새터교회에서 이영구 목사로부터 침례를 받고, 교회의 임원이 되었다. 그 해 9월부터 당회와 사경회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1913년 7월에 총부로부터 반장 직분을 받고, 교회에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1914년 예외 없이 예산 지방에도 일제의 탄압이 시작됐다.


일제는 먼저 포교 계를 제출하라고 강요했으나 똘똘 뭉친 교단의 모든 임원들과 함께 예산 구역의 모든 교회는 일제의 탄압에 꿋꿋이 맞섰다. 교회들 간의 갈등도 생겼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던 일부 교회가 구세군으로 갈라져 나갔다. 그러나 이덕근 전도인은 요동치 않는 신앙인으로서 광시교회에 부임한 역대 교역자를 충성으로 섬기고, 교회를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가 섬긴 교역자들은
제 2대 전영대 목사(1911. 2. 부임),
제 3대 노재천 목사(1912. 3. 부임),
제 4대 박두하 전도사(1915. 2. 부임),  
제 5대 윤종두 교사(1916. 11. 부임),
제 6대 정영길 전도사(1918. 10. 부임),
제 7대 문재무 전도사(1920. 9. 부임),
제 8대 박상래 교사(1921. 4. 부임),
제 9대 윤종두 교사(1922. 9. 부임),
제 10대 박기양 목사(1923. 9. 부임),
제 11대 노재천 목사(1926. 1. 부임),
제 12대 이덕여 성도(1930. 10. 부임)가
구역 통장으로 시무했다.                                              
<계속>


김대응 목사

예수향기교회

한국침례교회역사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