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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종이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토요일만 되면 우리가 살던 울릉도는 주사골 동리에 올라와 노란종이를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들 3,4학년이 같이 모여 놀이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노란 종이를 나눠주고 떠났다. 친구들은 예수쟁이가 우리 동네까지 와서 선전종이를 뿌린다고 욕하고 받은 종이를 찢어버리기도 하고 또 코를 풀거나 그것을 모아서 뺀또(종이치기)를 만들기도 했다.


언젠가 배석문 담임선생이 “요사이 서양종교인 야소교가 설치니 조심하고 멀리하라”고 하셨기에, 친구들과 불교신자인 나도 5학년인 한상태를 따라서 “예수를 믿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큰 소리로 복창하며 예수쟁이를 따라가며 놀려댔으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가만히 지나갔다. 한번은 공짜로 이발해주는 곳에 가자고 해서 옆 동네인 중간 모시게까지 따라 갔더니 그 노란종이 나눠주는 그 사람이 아닌가!


나는 뒷줄로 섰다가 도망칠까 했더니 친구들의 눈짓 만류로 길가에 고개 숙인 채 이발을 하고 부끄러워 인사도 못하고 도망쳐 왔는데, 나중에 중학교 1학년 때 교회에 나가면서 더욱 그 노란종이를 나눠주던 이웃교회 집사에게 미안했고 지금까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어려서는 부친이 믿는 유교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공자의 생애, 그의 교훈 중에서 삼강오륜과 어록인 논어를 위시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부친은 큰 외숙모의 오빠이신 권이덕 스님의 절간에 가서 일 년 신수를 보여주셨고, 어머니가 양남댁 여승의 절간에 나를 데리고 가서 석가모니상, 나무아미타불상, 보살상 및 북두칠성단에 목탁소리에 맞춰 각각 일곱 번씩 모두 28번의 절을 하고 불공을 드린 후 초등학교 3학년부터 엄마 따라 불자가 됐다.
침례교세계연맹(BWA) 총재를 역임한 데오도르 아담스(Theodore Adams) 박사가 목사안수를 받을 때, 그의 부친 목사님은 “나의 아들 테드(Thed)는 하나님과 사람을 하나 되게 해야 한다”는 짧은 말로 교훈해 줬다. 프렌시스 쉐퍼 박사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기독교는 우리가 우리의 세대의 질문들을 배우기 위한 충분한 동정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언젠가 전철에 들어오시는 유약한 노인에게 얼른 일어나 경로석 자리를 양보하고 서 있다가 빈자리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는데 휠체어에 거장의 남자를 태워 밀고 들어오는 여인이 있어 일어나 앉으라고 권했더니 남편을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데 붙들고 지켜야 하니 사양했다.


 “충분한 동정”이 떠올라서 “천국가신 부모님 생각이 떠오르네요”하며 돈을 드리며 “점심식사라도 하십시오”라고 했더니 우리도 부부가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천국 갈 준비가 되었다고 밝은 웃음으로 한사코 받지 않았다. 옆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간접전도가 됐는가? 생각하다가 옛날 읽은 전도얘기를 떠올렸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한 호텔에서 어느 부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그 부인은 그날 한 전도자가 자신에게 말했던 것에 대해 남편에게 말했을 때 “왜 당신은 그에게 그 자신의 사업이나 걱정하라고 말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그때 부인은 “만약 당신이 그의 얼굴의 표정과 목소리를 보았다면 그리고 그가 말하던 진지함을 들었더라면, 당신은 그것이 그의 사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에요”라고 대답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여 생명을 살리는 복음전도에 얼마나 진지했던가 다시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하루는 은행에 들려 대기표를 뽑아 앉아 기다리는데 마침 옆에 앉은 신사분께 인사를 정중히 하고 세상 이야기와 나라걱정, 인생살이와 시간의 속절없이 빠름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면서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할 것을 권유하며 가끔 나눠주는 ‘인생의 결과와 도전’ 전도지를 건네줬다.


그런데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의 진지하고 차분하게 하신 말씀에 감동이 있어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됐다고 매일 카카오톡에 아름다운 풍경에 좋은 글을 실어 보내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1967년 군복무시절 원주군인 복지센터를 차려 1년간 사복근무를 하면서 춘천시 소양로에 군인센터를 차린 후 1년간 춘천교회 부목겸 군인 전도를 하면서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 박사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선교에 쓰여지는 2억불 선교비보다 더 많은 돈이 사람들이 씹는 껌값에 사용된다”는 말이었다. ‘아하,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비의 비용이 껌값보다 적다니!’ 그날부터 오늘까지 50년간 내 돈 주고 껌 사먹은 일은 없었고 껌 살 돈으로 복음 전도비에 사용해 오고 있다.


50여 년 전 호주의 울름이라는 한 파일럿이 비행기 고장으로 바다에 떨어졌다. 호주 공군과 정부는 울름중위를 살리기 위해 비행기, 군함, 잠수부 등을 동원해 그를 구명했다. 그때의 정부 보고로 파일럿 구조에 25만 불(2억5천만 원)이 들었다고 하니 오늘의 물가 인상을 계산하면 30억원이 넘게 소요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호주 정부가 이처럼 막대한 투자를 했다면, 오늘날 사람을 경시하고 마구 다루는 이 패역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환대의 연회장에 저들을 인도하고 초대하여 함께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1970년대 말 예일 대학교의 생물리학자 헤롤드 모로위츠(Harold J.Morowits) 박사는 인간의 몸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에 대해 아주 놀랄만한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의 생명을 구성하는 인체의 재료인 단백질, 효소, RNA, DNA, 아미노산 등 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생화학 물질을 감안할 때, “이 화학약품 구입 목록으로 인체의 60조 세표를 만드는데 약 6000조 달러 가량이 들어갈 뿐 아니라, 만들어진 세표더미를 조직으로, 조직을 기관으로, 또 기관들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만드는데 세상의 모든 자금을 다 탕진하고 말 것이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진술했다.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 파스칼(Pascal)의 세계는 그의 철학의 빛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명상록 “팡세”(Pance)의 서문에는 그가 고치지 못해 고통 받던 피부병을 예수님의 성상 앞에서 기도하고 손이 닿았을 때에 깨끗이 고침을 받은 기적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 체험을 통해 그는 살아계신 주님을 믿게 됐고, 기독교 철학자가 되는 동기가 됐다고 한다. 주님은 승천하시기전 성도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셨는데 오늘의 우리들은 어떤가? 저부터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회개하고 복음전도를 위해 분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