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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Jesus wept!)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나도 흘렸다(Me too)

영어성경에는 “예수는 울었다”로 주어와 동사의 두 단어로 신구약 성경 66권중에 가장 짧은 절이요 문장이다. 헬라어인 “에다크루센 호 예수스”로 세 단어로 된 문장인데 한글 번역에는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11:35)로 되어있다. 예수께서 친구로 불렀던 나사로의 무덤 앞에 한 영혼에 대한 소리 없는 연민과 사랑의 눈물이었다. 신약성경에서 특히 사복음서를 수없이 읽으면서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고”(눅10:21) 또 기뻐하신 기사는 몇 곳이 있었지만 울으신 것은 세 번인데 웃으셨다는 기사는 한곳도 발견하지 못했다. 
죄악이 관영하고 패역한 세상에서 처절하게 저주받아 가련하게 죽어가는 인생들을 보시고 어찌 웃으실 수 있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왔다.


두 번째 우신 시기는 예루살렘 성문 앞에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눅19:41~44) 파멸되리라는 예언대로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Titus)장군에 의한 공격으로 처참하게 훼파되고 1900여년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민족의 비극이었고, 셋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 흘려 기도하실 때(막14:32, 눅22:44) 우셨는데, 히브리서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히5:7)고 기록했다.
이 눈물의 기도는 십자가를 앞두고 죄악으로 멸망해가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통곡의 눈물이었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예수님은 한 사람. 자기의 민족 및 인류를 위해 세 번 우셨는데, 80평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울음을 기억하며 나는 뭣 때문에 울었던가 돌이켜 재삼 생각해 본다.


어릴 때 자라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울음이 떠오른다.
일본 사람의 외정시 1학년때 연필 두 자루를 잘 깎아 필통에 넣어 눈 덮인 십리의 고갯길을 넘어 도동국민학교에 갔는데 수업시간에 필통을 열어보니 연필 끝이 떨어져나가 옆 친구에게 연필 깎는 칼을 빌려 연필 깎는 소리가 여자선생의 귀에 들려 앞으로 나오라 해서 가니 두툼하게 입은 겨울옷을 다 벗기고 20cm 두께의 눈이 쌓인 운동장을 다섯 바퀴 돌고 오라해서 팬티만 입고 추위를 겨우 이기며 3바퀴를 돌고 벌벌 떨며 교실에 들어갔다. 교실에서 지켜본 선생이 두 바퀴를 덜 돌았다고 옆 교실에 가서 선생에게 손도장을 받아오라 해서 눈물 나게 개망신을 준 일본선생을 잊을 수 없다.


일본식 교육을 받은 서 선생에 대한 눈물 흘린 두 가지 회오는 이제껏 수많은 선생 중에 가장 악독하고 못된 선생인 동시에 나의 어린 마음에 철저하고 확실한 인생교육을 시킨 좋은 선생으로 기억된다.
구약에서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진 예레미야는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애1:2)라고 죄악으로 멸망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눈물이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렘9:1) 다윗은 나단선지자의 책망에 처절하게 회개했다(왕하20:5)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시39:12)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로 살인과 간음죄를 용서받았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발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붓고 눈물로 씻은 죄 많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눅7:47)라고 주님은 사죄의 은총을 베푸셨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뒤 아라비아의 3년의 속죄의 회개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에베소교회 장로들과 고별사에서 “모든 겸손과 눈물,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행20:19,31)이며 고린도 교회에도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2:4) 라고 권면했다.


1964년 3월 8일 신대원에 입학하면서 철없이 시작된 도안교회 목회에서 오늘 내 나이가 80이 넘어서도 중국서 온 조선족 중심의 수십 명 성도를 섬기기까지 55년에 걸쳐 수많은 눈물겨운 목회현장이 있었다.  그중에 죽기까지 잊혀지지 않은 사건은 1989년 10월 16일 정오에 일어난 서울교회 유치원 화재사건으로 7명이 죽고 6명이 4°의 화상 원아 치료를 위해 4년간 흘린 눈물은 한 그릇이 넘으리라! 와중에 주님의 은혜로 사망자의 위로금과 화상 어린이를 미국의 제일 유명한 겔베스톤 어린이 화상병원 치료와 미국이민 주선에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주신 주님께만 감사를 올린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하) 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마17:17)라고 당시 세상을 탄식하셨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종말이라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정말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또 세상 사람들 가운데도 믿음 곧 신뢰성을 보겠는가?
주석가는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앞선 말세에서 성도들이 진실된 믿음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교인들의 순수한 믿음이나 첫 목회 때의 성도들과 달리 세상이 죄악과 불신으로 변한 오늘의 교인과 교회를 비교할 때 참 믿음은 식어져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고 종말예언을 하실 때도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2)에서 오늘의 세상은 제쳐 두고라고 우리의 신앙과 진리의 이름아래서도 감행되는 불법을 목도하면서 말세의 징조가 분명하다. 사실 불법과 사랑은 대치되는 것으로 교회는 불법의 침투로 타락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성도끼리의 사랑에 나아가 불신자를 향한 사랑은 점점 식어져 잃어버리고 있다.


살기 좋은 세상 속에 타락한 인간이여, 한번 왔다 다시 못 돌아오는 고귀한 영혼은 어딜 가는가? 천상의 예수님은 지금도 울면서 우리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리라.
믿음이 없어져가고 사랑이 식어진 징조 외에도 수많은 주님의 종말세상의 유언들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적중한 깨달음으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라고 가슴을 치며 회개한 세리의 기도가 나의 귓전에 메아리치고 있다.


지난 55년의 목회를 돌아볼 때 감사와 감격에 넘친 추억에 아울러 불충의 깊은 참회와 뉘우침도 크구나! 회개의 눈물방울이 눈시울을 적시구나!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가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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