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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상식과 책임

계인철 목사
광천중앙교회

새해가 됐지만 우리 사회와 교회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도리어 이전보다 더 못한 상황으로 흐르는 듯한 모양새다. 세계 또한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밝은 전망보다는 이전보다 못한 전망들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미중의 G2 및 무역전쟁에서의 주도권 싸움은 점입가경이다. 럭비공같이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의 언행에 전 세계는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s)를 타고 있고, 증시 등 경제는 출렁거리고 있다. 남북관계는 서로 신년사를 발표하며 새해를 맞이했지만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파랑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막연한 미래의 행복만 꿈꾸게 할 뿐 아무것도 된 것이 없는 현재는 무미건조한, 일명 파랑새 증후군이나 다름없는 안개 속에서 휘청거린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진보수의 갈등은 새 해가 되었어도 그대로이고, 깨끗하고 좀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진보 정권도 전 정권들에 비해 별 다르지 않은 모습과 태도에 기대만큼 실망감도 크게 다가오는 새해 벽두다.
한국교회는 과연 다른가? 한국교회도 한국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탁류 속에서 탁류 되어 함께 흐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교회도 우리 사회처럼 진보수의 이념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성경의 해석마저 그들이 갈아입은 옷 색깔에 따라 달리하고 있다. 마땅히 교회는 오직 성경의 복음을 따라 참된 복음을 선포하며 그 복음의 삶을 사회에서 살아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상식이고 책임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절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정치나 어떤 이념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교회는 교회로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함으로 사회, 즉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누구도 교회가 세상의 정치를 해주고 어떤 이념으로 무장해 그 이념을 실현하거나 경제성장을 주도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교회는 교회만의 사명을 세상에서 바르게 감당하기만 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과거 독일의 히틀러 정권이 들어선 때와 똑같지는 않지만 어딘가 비슷해 보인다.


1933년 히틀러가 수상이 된 후 다음해 총통으로 취임하자 독일교회는 히틀러를 메시야로 선포하면서 영적 구원은 예수가 정치 경제 구원은 히틀러가 이룬다면서 신학교에서마저 나치식 경례를 의무화 했다.
심지어 그들은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독일 민족을 위한 시대는 히틀러 안에서 성취됐다. 왜냐하면 히틀러를 통해 참 도움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그의 능력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선언문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바르트, 본회퍼 같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나치에 반대한 것은 실오라기 같은 기독교의 희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교황청은 히틀러가 보낸 대사와 협약 체결함으로 히틀러를 예수 이름으로 지지했다. 이때 독일교회 대표였던 밀러 목사도 같은 행동을 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 보여 주어야하는 상식과 책임을 져버린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선택이었다. 예수와 말씀이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책임 있는 교회들이 아니었다. 교회는 단순히 인문학적 또는 사회학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와 그 복음만을 세상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살아냄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지키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복음 외의 다른 방법을 찾거나 선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7세기 이집트는 본래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비롯한 3대 계파가 있던 기독교 국가였다. 그런데 로마교회의 횡포에 질린다며 이집트 교회를 641년 이슬람에 바쳐 버리는 상상할 수 없는 비상적이고 무책임한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며 끝까지 남은 교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오늘의 콥틱교회다. 이들에 의해 이집트에서 기독교의 명맥이 각종 박해 속에서도 오늘까지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극과 극으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나 다름없는 치킨게임의 장이 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교회가 어느 한쪽씩 선택하여 지지하고 참여하기보다는 오직 복음의 참된 모습으로 돌아가 스스로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고, 스스로 자신을 녹여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 교회의 본질을 따라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고 사명이다. 교회가 교회로의 본질과 그 소명에 충실할 때, 정치가 교회에 개입되지 않으며, 경제 논리를 벗어나며, 세속적 문화에 물들지 않게 된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말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며 우리는 왜 이런가라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현재의 모습에서 돌이켜야 한다.


교회는 교회답게, 목회자는 목회자답게, 성도는 성도답게 사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책임감 있는 실재로 돌아서야 한다. 교회와 목사, 성도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며, 오직 말씀을 살아내는 상식과 책임감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어느 공동체든 상식과 책임감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그 공동체는 타락하며 변질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무너진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이 상식과 책임으로의 돌이킴이 없이 계속해서 새해에도 그대로 산다면 세상을 속이는 사탄의 달콤한 말들이 진리로 둔갑할 것이며,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닌 세상과 사람이 하나님, 즉 종교를 만들었다며 이제는 하나님도 사람의 뜻을 따라 존재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이미 그림자가 보인다.). 그때는 이미 이 땅에서 기독교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존재가 될 것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금, 만시지탄(晩時之歎)같은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늦었다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지금이 어쩌면 가장 적절한 타이밍(timing)일 수 있다. 결코 이 땅을 기독교 사회로 만들려 하거나 국가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 하지 말고, 나비 날갯짓에 불과할 수 있지만 오직 예수와 그 복음으로의 삶에 우리의 전부를 다 쏟아 붙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430년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순수했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됨으로 세상은 기독교 왕국이 됐지만 교회는 변질에 변질을 거듭하면서 타락했다. 교회의 본질적 상식과 그 책임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인데, 모두를 손에 쥐고자 했다. 이것으로부터 저항한 것이 바로 루터의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Sola Christus)’,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었다. 이제 우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식과 책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결단의 시간에 직면했다. 이 순간을 망각하거나 놓치면 완전히 무기력한 기독교를 보게 되거나 아니면 가장 흉측한 괴물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라기츠(Leonhard Ragaz)가 ‘성경의 부활’을 꿈꾸며 소망했던 것처럼 우리도 성경이라는 상식과 그 책임을 간절히 소망하며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독교의 상식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며 성령이시고 성경이다. 책임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말씀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 됨이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교회된 자신을 오직 예수와 말씀이라는 상식과 책임을 지는 일에만 전념하라고 하신다. 교회는 교회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의 상식과 책임을 다하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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