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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최현숙 교수의 문화 나누기>

최현숙 교수
침신대 융합실용 기악과

기독교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요즘처럼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시대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소수만이 갖는 느낌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인으로 바르게 사는 것 자체도 많이 힘든 시기다.


겉보기에 정의롭고 명예롭더라도 이해관계가 맞물린 상황에서의 모습은 전혀 다름을 목도할 때마다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의 태도인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과 마주하곤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또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상이라는 명제를 더 절실하게 고민하게 하는 여름이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근본주의적인 정죄함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녀라는 특권의식 때문에 무작정 관대해서도 안 된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하는 중요한 단어는 균형이다. 율법의 적절한 적용과 사랑을 기초로 한 관용의 절묘한 균형, 올바른 지적과 사랑의 용서 사이의 균형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기울지 않게 중심추와 같은 역할을 한다.


문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부딪혀 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준과 잣대는 늘 유동적이다. 관계의 거리에 따라, 손익의 계산법에 따라 변한다.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기도 하고 과거에는 잘못된 것이었으나 현재는 바른 것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이것을 정당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예전에 신랄하게 비판하던 것을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입장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며 갖게 되는 불편함을 애써 감추며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변호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상황마다, 사람마다 달라지는 같은 문제, 다른 답을 보며 당황스러운 현실 앞에서 절망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더 절실하고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은혜의 절정이 바로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자세가 아닐까? 사람의 불안정하고 부정확한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우리 모두는 비로소 평등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환경이나 현상을 보고 절망하거나 열광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경륜과 계획에 따라 역사가 세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거두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때도 지금이다.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생각하다가 문득 바흐의 칸타타 106번 중에서 “하나님의 때가 최고의 때이다”라는 합창곡이 떠올랐다. 이 작품은 장례음악으로 작곡된 8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음악이다. 그 중 일부분으로 4부 혼성합창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슬픔보다는 주님 안에서의 삶 자체에 대한 담담한 진술이다.


하나님의 시간이 가장 좋은 때, 그분 안에 우리가 활동하며 존재하며
그 분이 원하시는 그때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죽는다.


장엄하면서도 희망을 암시하는듯한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절제된 감정을 불필요한 미사여구 없이 그저 맑은 음들로만 표현한다. 음악의 정도를 지키는 것과 엄격한 음악적 규범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전달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바흐의 음악은 여러 가지 상념으로 혼탁해진 마음을 정화 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바흐가 그랬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정도를 걷노라면 그분의 가장 좋은 시간에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은혜의 순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보자. 사람이, 상황이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묵묵하게 흔들림 없이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