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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제일교회, 미약함 딛고 창대함으로 영향력 끼치다

 

 

작은 농촌 시골교회에서 시작한 충남 보령 미산제일교회(구권환 목사)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예배당을 건축하며 하나님이 기뻐 영광 받으시는 일을 감당하며 지역에서도 칭찬받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1995년 가신교회에서 교환 목회로 미산제일교회에 부임한 구권환 목사는 교회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가운데에서 미산제일교회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도로 이뤄낸 기적

구권환 목사가 부임할 당시, 미산제일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겨우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좁은 진입로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진입로 입구에는 장로교회가 있었고 지역 문중의 집과 대나무 숲이 있고 교회가 위치한 땅도 문중 땅으로 속해 있어 매년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더욱이 교회를 가꾸기 위해 나무 하나 심고 돌 하나 옮겨 놓는 것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구권환 목사는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기도의 제단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구 목사는 “전에 있던 교회도 9년을 목회하면서 예배당을 새롭게 건축하고 이곳에 부임했는데 정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며 “그래도 목회자가 좌절하거나 실망할 수 없기에 저녁마다 강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교회가 새롭게 세워질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구 목사와 20~30여 명의 성도들은 함께 무려 7년 동안 예배당 건축의 비전을 놓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예배당 건축을 선포하고 자신부터 건축헌금을 드리겠다고 작정했다. 매월 70만원도 안되는 사례비를 받으며 생활했던 구권환 목사는 건축헌금 1000만원을 위해 적금에 가입하고 새롭게 지어질 예배당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자원해 준비했다.

 

목회자 자신의 헌신과 이에 따른 성도들의 동참은 작은 정성 벽돌헌금이 모아 지기 시작하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예배당 건축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부임 직후부터 기도한지 7년째 당시 교회가 속해 있던 문중의 땅이 법원 경매에 나오면서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계속되는 경매 유찰로 시세에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교회와 중직자가 2만 1000여 평이라는 땅을 낙찰받게 됐다. 당시 구 목사는 예배당 건축에 집중하고 있던 상황이라 교회가 필요한 부지인 1500평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공동으로 경매에 참여한 중직자에게 지분을 넘겼다.

 

 

구 목사는 “교회가 세상처럼 욕심을 부리면 세상 부동산 투기와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교회가 필요한 부지 외에 모든 권리를 양도하고 본격적으로 예배당 건축을 시작했다. 그리고 구 목사가 생각하고 고민하던 대로 자신이 직접 건축 자재를 준비하고 부임 8년째부터 예배당을 세우기 시작했다.

 

 

 

1차 성전50평, 사택 35평, 식당 40평을 시작으로 2차 성전 99평을 15년에 걸쳐 지을 때도 구 목사의 손길로 세워나 갔다. 성도들도 옆에서 함께 도우면서 때마다 돕는 손길과 물질을 채워주고 동역하며 교회를 완성해 나갔다. 교회 주변 조경도 조경에 필요한 나무와 돌들을 어디선가 제공해 준 손길이 있었으면 적재 적소에 배치하고 조경 환경을 조성하는 이들도 자원해 교회를 위해 헌신해줬다.

 

구 목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7년 동안에 성도들과 함께 쌓은 기도의 제단이 응답으로 이뤄진 전적인 하나님의 기적에 역사현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자원하며 목회자의 본을 선보여

교회의 건축이나 지역사회를 위해 섬김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한결같은 일은 바로 구권환 목사가 먼저 자신의 사례비를 헌금을 내놓고 가장 많은 헌신을 했다는 점이다. 농촌교회 담임목회자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구 목사는 기적과 같은 치유의 경험으로 목회자의 길에 서게 되고 먼저 헌신하고 섬기는 자리에 누구보다 자원했다.

 

 

구 목사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신앙심 깊은 조모의 품에서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내성적인 성품으로 교회 사역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교회를 섬기고 담임 목회자를 섬기는데 평생을 조용히 헌신하고 싶었던 구 목사는 20대 중반에 폐결핵 3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제대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던 그는 마지막 심정으로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15일 금식기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도굴에서 기도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오직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목놓아 고백하며 피를 토하면서 부르짖었지만 어떠한 응답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까지 응답이 없으면 이젠 죽는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은 채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기도굴에 들어가 기도할 때, 작은 십자가에서 빛이 강하게 가슴을 향해 비치며 ‘가라! 가라! 가라! 두려워 말라! 네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하리라’라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고 구 목사는 당시를 회고했다.

 

그리고 기적과 같이 폐결핵을 고침받는 육체적인 치유의 체험을 하게 됐다.

그 길로 신학교에 입학하고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목회에 대한 열망, 하나님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그의 열정과 열망은 세상의 환경도 교회의 상황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고 기도로 나아간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몸과 마음을 체득했기에 구 목사는 믿음의 선포하고 믿음으로 나아간 것이다.

 

 

구권환 목사의 성품은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어 지역에서 미약한 교회로 시작했지만 현재 지역에서 미산제일교회가 감당하고 있는 선한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으로 넓혀졌다. 미산제일교회를 통해 가정이 변하고 이웃이 변하고 지역사회가 변하는 역사였다.

 

또한 구 목사의 남다른 헌신과 열정은 지역사회에도 귀감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그는 대전검찰청 홍성지청에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상담분과위원으로 현재 12년째 활동하고 있다.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예배당을 건축하며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피해자 집을 수리하는 봉사를 해오고 있다.

 

 

현재 49호까지 집수리하기까지 검찰청 산하 홍성지청만이 구권환 목사가 있었기에 유일하게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숨은 봉사자였다.

 

농촌교회이기에 받는 것에 익숙한 교회라고 여길 수 있지만 미산제일교회는 남달랐다. 구권환 목사는 처음 목회하면 서부터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3명의 해외선교회와 국내 3개 교회와 5개 기관을 후원하고 섬기고 있다.

 

무엇이든지 성도들과 함께 나누며 담임 목회자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드리면서 성도들도 섬김과 나눔을 경험하고 있다. 교회 입구부터 교회 여러 조경과 나무, 출입문, 창문, 장판 등 구 목사와 성도들의 손길을 안 닿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구 목사는 자신의 목회관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산제일교회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목회자가 먼저 드릴 줄 알아야 하고 목회자가 먼저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성도들도, 믿지 않는 이웃들도 변화되지 않는다. 미산제일교회가 이 지역에 사랑을 실천하고 나눔을 실현하며 함께 하는 교회가 됐으면 한다. 거창한 것을 보지 않는다. 오직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과 사랑으로 모든 목회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선교하는 일과 나누고 섬기는 이 목양에 전념하고 싶다.”

보령=이송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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