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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치르고 나서

 

얼마 전 올 들어 다섯 번째로 장례를 치렀다. 한 해 평균 두 번 정도 치르곤 했는데 올 해는 절반도 지나기 전 벌써 다섯 번이나 치른 것이다. 부교역자 시절 섬기던 교회에서는 교인이 많은 탓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장례를 치른 적도 있지만 지금 섬기는 교회는 그에 비할 수 없는 작은 교회이기에 정말 많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노인들의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죽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죽는다는 것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준비한다.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수의를 장만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우리 교회의 연세 많은 성도들도 대부분 수의를 장만해 상자에 담아 자기 방 장롱에 보관하고 있다. 준비하는 이유에 대한 여러 가지 속설들이 있지만 자신들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의와 함께 준비하는 것은 무덤이다.

 

자신이 묻힐 묘 자리를 미리 정해놓거나 아니면 한 술 더 떠 아예 가묘를 만들어 놓기 까지 한다. 어느 사모님의 장례식에서 남편이신 목사님이 자신과 후손들의 묘 자리를 만들어 두고 그것을 자랑삼아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수의든 묘 자리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 저런 것을 준비할 때 과연 어떤 마음이들까?’라는 의문과 저 분들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저런 것을 준비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전자의 의문은 아직 죽음을 내 문제로 실감나게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무리 애써도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두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붙잡고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삶의 깊은 성찰의 결과로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자 하는 생각의 일환으로 한다고 하기 보다는 온전히는 아니겠지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으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또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수의와 묘지 밖에 없는 것인가?’하는 의문도 생겨난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인생을 마무리 한다는 것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별로 의미 없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 마무리를 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노릇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성도들에게 설교를 가끔씩 하지만 나의 부족함 탓인지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유명인들처럼 회고록을 쓰거나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는 것 같이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손들과 성도들에게 덕과 은혜를 끼치는 인생 마무리 곧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과 방법들에 대해서 정말 지혜가 필요하다. 거기에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변에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를 모본으로 보여주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목사인 내게는 어쩌면 인생 마무리보다 목회 마무리가 먼저 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마무리 하는 것이 지혜롭고 덕스럽고 은혜스러운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한다면 너무 이른 것일까? 좋은 본을 보이신 선배님들의 경우를 찾아봐야할 것 같다. 갑작스런 사고나 급성 질환으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지만 노인들은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때 죽음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중증 치매로 오랫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집사님이 계신다. 그런데 그 분의 남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 중에 목사님도 계셨고 여러 사람이 전도했지만 요지부동이었던 분이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견고하여 그 어떤 말도 먹히지 않는 분으로 교인들에게 소문이 난 분이셨다.

 

그런데 그 분이 그만 암에 걸렸고 고령인데다가 너무 늦게 발견되어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부인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 둘째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 시아버지 마음이 많이 열린 것 같으니 와서 복음을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장 달려간 나는 차분하게 복음을 전했고 그 분은 맑은 정신으로 분명하게 영접하고 시인했다. 그리고 그 분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며칠 뒤 그 분은 소천 받으셨다.

 

얼마 전 폐암으로 소천 받으신 집사님 한 분은 병이 발견되기 훨씬 전부터 자기가 만일 죽을병에 걸리면 절대로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마도 동네 분들 중에 몇 년 째 병원에서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사람들을 본 탓일 것이다. 실제 병이 악화되어 호흡이 힘들어졌어도 끝까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견뎌내셨다.

 

마지막 며칠 동안은 말을 하지 못했는데 내가 가서 말씀을 전하고 기도할 때마다 모기 소리만 하게라도 아멘을 하셨고 마지막 말씀도 기도가 끝났을 때 하신 아멘이었다. 그 기도 후 제대로 눕지도 못하던 분이 누워 잠이 들었고 몇 시간 뒤 숨이 멎었다. 그런데 그 분의 마지막을 지키던 큰 며느리가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다.

 

그 오랜 세월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도 나오지 않더니 힘겹지만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시어머니를 보더니 교회를 나온 것이다. 이제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는 그 날이 곧 올 것을 기대한다. 하여튼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기도가 필요한 것 같다.

 

고성우 목사 / 반조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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