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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72시간 데이빗 텐트, 코로나 이후 다시 예배

박호종 목사
더크로스처치

코로나 이후의 영적 침체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전염성 폐렴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많은 사람이 건강과 생명을 잃었다. 생명의 위협 앞에 세계는 문을 걸어 잠갔다. 스스로 또는 강제로. 예배당도 피할 수 없었다. 교회의 모든 모임이 온라인으로 옮겨졌다. 


잠그면 멈출 줄 알았건만 거센 질병의 파도는 멈출 줄 모르고 퍼져나갔다. 이제 곧 끝난다는 희망은 어느새 절망으로 바뀌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모두가 지쳤다. 일상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일상의 개념’이 무너져갔다. 무너진 일상과 함께 성도들의 영성도 무너졌다. 온라인 예배만으로는 영적 양분이 채워지지 않았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교회의 영양실조가 여실히 드러났다. 영성의 가장 기본적인 척도, 예배 참석률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낸 ‘한국교회 코로나 추적조사(3)’ 결과를 보면 최근 교회의 현장 예배 참석률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소속 담임목사 98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거리두기 전면 해제 후 현장 예배 참석률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평균 73% 수준이다. 온라인 예배를 포함하면 80% 수준이라는 게 응답자들의 의견이다. 교회학교 참석률은 더 낮다. 거리두기 해제 후 이전에 비해 43%정도다. 새신자 등록은 코로나 이전 대비 20% 정도로 매우 낮아졌다. 침체다.


출석만으로 신앙을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영적으로 활기 있는 성도 중 교회에 드문드문 출석하는 성도는 없다. 코로나 이후, 교회는 영적 활기를 잃었다.

 

이어지는 혼란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이제는 회복만 남았다고 생각했건만, 21세기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혼란이 생겨났다. 전쟁이다. 지난 2월, 러시아 지도자 푸틴이 패권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차이를 보고 모두가 러시아의 단기간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전쟁은 7월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들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도 문제지만, 세계의 석유와 식량 가격에 끼치는 악영향도 큰 문제다. 세계 8% 규모의 산유국인 러시아와 세계 밀 수출량의 1/4을 감당하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석유와 밀값이 폭등하고 있다. 전 세계가 홍역을 앓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코로나를 헤쳐가기 위해 풀었던 막대한 양의 달러가 지금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올라가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가 올라가니 서민 경제가 점점 엉망이다.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나노사회, 방으로의 도피
혼란과 위기가 닥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안전한 곳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까? 방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이 시대에 흐르는 의식이 표현된 농담이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를 ‘나노사회’라고 정의한다. 개인화의 극단 ‘나노화’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같이 살더라도 샴프 하나 조차 각자의 취향에 맞춰 개인용이 따로 있다. 뭐든지 다 개인화되는 것이다. 나노화의 원인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디바이스의 발전이다. 각자가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접하는 가상세계가 타인과의 유대보다 편리함을 택하게 한다. 


나노사회의 사람들은 그래서 ‘방’으로 피한다. 위기일수록 방해 없이 가상세계에 집중할 수 있는 그곳으로 간다.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위기와 더불어 발달 된 가상세계는 우리를 ‘방’으로 몰아넣고 있다. 

 

점점 오염되는 가상세계의 콘텐츠
‘방’으로 피한 사람들은 종일 무엇을 할까? ‘콘텐츠’ 소비다. 가상세계는 수많은 글, 그림, 영상. 각종 콘텐츠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 콘텐츠들에 흐르는 악(惡)이다. 수많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가상세계에서 경쟁한다. 나의 콘텐츠에 시선을 잡아두려고 치열하다. 그래서 점점 자극적으로 변모한다. 더 잔인하게, 더 음란하게, 더 괴상하게. 잠깐이라도 시선을 잡기 위해 서슴없다. 가상세계는 오염되고 있다.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그 기간 동안 음란물을 아주 많이 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과 환경이 갖춰지니 당연한 일이다. 오염된 그곳에서 꺼내야 한다.

 

강력한 예배의 회복이 답  
‘세상보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자’는 말은 환상이다. 더 재미있게 만들 수가 없다. 교회가 어떻게 넷플릭스보다 재미있을 수 있을까? 전문 인력이 붙어서 만들어내는 그들의 퀄리티를 교회가 당해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답이 아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다. 재미보다, 쾌락보다 더 간절하게 무언가를 찾고 있다.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공허함이다. 교회는 재밌으려고 찾는 곳이 아니다. 그 공허함을 해결하고 싶어서 찾는 곳이다.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이다.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이 언제 임하실까. 성령은 어디에나 계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주권적으로 찾아오신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할 때 그곳에 오신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며 경배하는 자들이 있는 곳에 오신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편 22:3)


주를 찾게 하는 다윗의 장막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다윗의 장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5장 16~17절의 말씀이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이방인들의 율법 준수를 놓고 사도들이 논의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다윗의 장막’은 법궤를 품은 장막이다. 즉 임재의 장막이다. 주님을 상징하는 법계와 사람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장막 가운데 놓인 법궤만을 바라보며 레위인들(예배자와 중보자)이 24시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다. 


사도들은 다윗의 장막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이고 임재의 처소 즉, 주님이 머무시는 곳이 교회임을 알았다! 이것이 주님께서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와 마태복음 21장 12절 이하의 성전 개혁의 핵심임을 알았고 그래서 이방인들이 다른 짐을 지지 않고 주님만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윗의 장막의 회복을 말했다. 이것이 교회요 아버지의 집이다.


주님은 우리를 무겁게 하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님만 예배하는 곳에서 주님을 찾게 하신다. 침체의 회복이 필요하다. 주님을 찾게 하는 다윗의 장막이 필요하다. 누군가 꺼져가는 불씨를 타오르게 바람이 불어줘야 하며 기름을 부어야 할 간절한 필요가 있을 때가 있다. 또한 흩어진 작은 불씨를 모아서 활활 타오르게 열정을 모아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꺼져가는 심지를 시뻘건 숯덩이가 되게 하여 각각의 처소를 성령의 불로 태울 불쏘시개가 되게 할 용광로가 필요하다. 다윗의 장막은 예배와 기도, 말씀의 용광로이다. 

 

72시간 데이빗 텐트 
이 여름, 침체의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 예배하는 곳이 있다. 다윗의 장막을 재현하려는 캠프가 있다. 8월 14~17일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리는 “David’s Tent”(데이빗 텐트)다.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멀티캠프다. 데이빗 텐트는 이제까지 있던 여름 캠프와 세 가지가 다르다.

 

첫째, 72시간 동안 멈추지 않는다. 데이빗 텐트는 72시간 동안 오직 주님을 예배하면서 주님을 찾는 곳이다. 다윗이 세웠던 법궤를 품은 장막처럼 멈추지 않고 주님을 향한 찬양을 올려드린다. 10년 넘게 멈추지 않고 예배와 기도의 탑을 쌓아왔던 것을 폭발시키는 예배, 임재의 폭발의 시간이다. 오직 예배의 소리만 가득 채워지는 그곳에 주님이 오셔서 충만한 임재를 베풀어 주시리라 믿는다.


둘째, 안식이 있다. ‘캠프’하면 보통 빡빡하게 짜인 시간표와 시간표대로 착착 움직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데이빗 텐트는 참석자가 따라야 할 시간표가 없다. 메인 텐트에서는 72시간 동안 올려드리는 예배가 있고, 서브 텐트에서는 선택 강의들이 진행된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신청해서 선택한 것만 참여하면 된다. 남는 시간에는 주변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내도 되고, 숙소에서 숙면을 취하며 체력을 회복해도 된다. 자유다. 자유 안에서 안식을 취하라.


셋째, 모든 세대가 함께한다. 데이빗 텐트는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가족 캠프다. 기존 캠프는 청년 캠프, 청소년 캠프, 어린이 캠프 등. 세대별로 특정 타겟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데이빗 텐트는 모든 세대가 함께한다. 전 세대가 연합한다. 전세대가 한 영으로 하나가 된다. 그래서 데이빗 텐트에는 세대 간의 연합이 있다. 메인 텐트에서 72시간 예배를 올려드리는 동안, 서브 텐트에서 키즈 캠프와 유스 캠프가 진행된다. 다음 세대들이 다윗의 장막 안에서 함께 예배하며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데이빗 텐트는 세대 간의 연합, 다음 세대의 연합. 두 가지의 연합이 있는 캠프다. 
 
돌파구는 오직, 예배!
데이빗 텐트 광고가 나간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서 모집정원이었던 1000명이 다 찼다. 정원이 다 찼음에도 빗발치는 문의에 정원을 확장해 추가 인원을 수용하는 중이다. 이 코로나 중에도 멈추지 않는다. 갈망이 살아있다. 아직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오직 예배를 외치는 이 캠프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가 예배에 목말라 있다는 반증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영적 갈증에 시달려 온 한국교회 성도들은 우물을 찾고 있다. 


이 갈증은 한 번의 캠프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 모든 한국교회가 생수의 강물이 터져 나오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주님이 오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모든 예배가 살아나야 한다.


이번 데이빗 텐트가 그런 예배를 위해 예배팀의 영성을 개발하고, 새로운 예배팀을 세우고, 예배의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교회들에게 좋은 도전과 배움의 장이 되리라 믿는다. 


연거푸 찾아온 혼란의 소식들로 많은 교회가 침체됐다. 잃어버린 교회의 활기는 다른 것으로는 찾을 수 없다. 예배할 때 성령께서 채워주시는 생기로만 찾을 수 있다. 침체의 시대를 뚫고 나갈 돌파구가 필요한 모든 이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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