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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교회, 아픔과 상처 딛고 사랑과 나눔 실천

“끊임없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 안아주면서 이게 바로 그 분이 우리를 향한 진정한 복음이며 사랑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교회는 자랑하고 내세우는 곳이 아닌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서 묵묵히 예수님을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목회자 자녀가 가지는 갈등 중에 하나는 부모님의 목회 소명을 바라보며 ‘나도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이다. 유성훈 목사도 부친의 목회 사역을 묵묵히 지켜보며 ‘나는 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진 목회자 자녀였다.
시골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섬겼던 부친의 곁에는 항상 물질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 성공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반 대학(음악대학)을 진학하고 새로운 길을 준비했던 유 목사는 어머니의 권유로 마지못해 참석한 연세중앙교회 흰돌산 수양관에서 사도 바울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됐다. 


강단 정면으로 십자가를 지고 오시는 예수님의 형상을 보게 된 유성훈 목사는 그 자리에 꼬꾸라지며 회개의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아버지 목사님의 크신 은혜를 외면하고 그 은혜를 모르는 자식이었다는 마음으로 회개한 그는 일반대학을 마치고 신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이어 경기도 광명시 다사랑교회에서 유상채 목사와 성도들을 섬기며 부사역자로 헌신하던 가운데 2014년 전격적으로 남양교회에 부임하게 됐다.


‘나를 보내주소서’로 시작한 사역
주변 목회자의 소개로 방문하게 된 남양교회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 후임 목회자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는 그에게 남양교회로의 부임 결정을 쉽게 내릴 수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유성훈 목사는 “청빙 제안을 받은 것에 감사했지만 내가 그곳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직접 남양교회를 찾아가서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교회를 방문하게 됐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바꾸고야 만다. 유 목사는 “교회 문을 열자 눈에 띈 5~6명의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를 알게 됐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을 품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나라는 사실에 ‘주여 나를 보내소서’라는 고백으로 남양교회 부임을 결정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예배당은 있지만 사택이 부재한 관계로 교회 한켠에 장롱을 세워 교회 주방과 사택을 구분하고 그곳에 가족들과 함께 기거했다. 


그리고 시작된 사역은 먹이는 사역이었다. 유성훈 목사와 오지혜 사모는 성도들을 위해 매주 식사를 준비하고 대접했다.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까지 20여 명의 성도들은 매주 좁은 주방에서 함께 식사하며 교제했다. 


그렇게 사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성도들은 교회 식당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 사택을 짓게 됐다. 그 이후 9년 동안 교회 여러 곳을 손보면서 교회를 아름답게 가꿔 나갔다. 교회를 가꾸는 것과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불신의 꼬리표가 붙은 남양교회의 이미지를 해결하기 위한 유성훈 목사의 노력도 쉼없이 이뤄졌다. 음악대학을 전공한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해 주변 학교에 방과후 교사로 활동하고 주민 자치위원회에서도 활동하며 지역주민과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상처입은 아이들,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게는 자원해 이들을 보듬어 안았다. 교회가 품은 아이들에게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나선 이도 유성훈 목사였다.


유 목사는 “내가 처음 이곳에 와서 들었던 이야기는 ‘목사는 도둑놈’이라는 소리였다. 신성모독으로 유대인에게 붙잡힌 예수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참으로 듣기 쉽지 않은 말이었지만 묵묵히 예수님의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섬겼다”며 “변치 않는 마음으로 남양교회가 지역주민에게 녹아들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고 교회의 사역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분들도 많아지며 점점 칭찬받는 교회로 소문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양교회가 속한 중심 지역에 공공시설물들이 들어서면서 교회 이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역 중심에 세워진 아름다운 성전
마을 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음악동아리를 개설해 색소폰을 가르치던 유성훈 목사는 마을 중심 지역에 행복센터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지적도를 보게 됐고, 마침 행복센터 인근 부지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근 학교도 있고 우체국도 있으며 행복센터도 들어오는 이 곳에 교회가 세워졌으면 하는 마음을 품은 유성훈 목사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논의하기 시작했다.


유성훈 목사는 “정말 모은 건축헌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위한 행복한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땅 주인을 만나 저렴하게 땅을 마련하고 대출을 받아 교회가 갚아나가는 조건으로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며 “대출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시고 걱정해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담대함으로 대출 상환 계획을 모든 성도와 나누면서 주님의 은혜로 건축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건축을 시작한 남양교회는 다른 교회를 달리 삼각뿔 모양의 단층 구조의 예배당과 2층 건물의 교회 식당, 소그룹실, 사택으로 지어졌다. 지역주민들과 성도들도 처음에는 어떤 건물이 나올지 궁금해 했고 점점 특이한 모양으로 세워지자 이상하게 반응하기도 했지만 예배당이 완공되고 주변이 정리되면서 마을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물이 됐다.


유성훈 목사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생각에 지역과 조화를 이루는 예배당을 생각했고 그 마음으로 지금의 남양교회가 세워졌다”며 “교회 건축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지키신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게 되면서 성도들이 많이 용기를 얻게 됐고 새로운 회복의 마음을 허락하셨다”고 힘주어 말했다.


교회 건축을 마친 후 입당예배는 지역의 마을잔치처럼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마을사람들도 축의금으로 1800여 만원을 후원했다. 이 모든 것은 지난 9년동안 한결같이 지역을 섬기고 함께 한 유성훈 목사와 남양교회 성도들의 헌신과 나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성훈 목사는 앞으로 남양교회가 지역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교회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아픈 이들을 돌보는 교회, 지역 주민 모두가 한 식구라는 마음을 품는 교회,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교회가 바로 남양교회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라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양=이송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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