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다섯째날 방문하기로 했던 유대인 최후 항전 요새인 마사다 국립 공원이 우리의 여정 넷째날까지 오픈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며칠간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져 금일의 일정과 후일의 일정을 바꿔 진행하게 되면서 갈릴리 침례식 다음날인 네 번째 날 문제의 요단강 침례터를 전격 방문하게 됐다.
원래의 침례식 거행 장소였음을 밝히자 아이들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1차 때보다 모여든 순례객의 수가 현저히 줄어 혼잡은 덜했으나 여전히 강물은 혼탁했고 뚜렷한 기준없는 차림 혹은 탈의한 채로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적잖이 보이니 차갑긴 했지만 잔잔한 유속과 맑은 수질의 갈릴리에서 오롯이 우리들만의 침례식을 거행함이 선물처럼 여겨진 모양이었다.
엘리야의 뒤를 이어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활동했던 엘리사가 여리고성의 물을 소금으로 치유해 새롭게 만들었던 일을 기념하며 보존되고 있는 여리고 동편 엘리사의 샘을 지나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던 일명 시험산 조망 스팟을 지나던 중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 외국인 성지순례객을 태운 한 버스의 기사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3년 전 1차 뿌리 이스라엘 원정대를 태우고 순례 기간 내내 정을 나누었던 기사 리프핫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는 사실인데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쫓는 길에 우연을 가장해 찾아든 이 만남은 그의 친구였던 휴게소 내 기념품점 사장의 마음을 통과하며 과일을 짜 만든 향긋한 주스 한잔으로 우리 모두의 손에 쥐어졌다. 버릴 것 없는 순간과 순간이 만나 우리의 순례 여정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작지만 큰 선물이었다.
탄력받은 우리의 여정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쿰란은 방문 때 마다 짙은 감격과 도전을 준 장소로, 그곳은 오랜 세월 하나님의 말씀을 품어낸 계시의 땅이자 언제고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종말론적 공동체였던 에세네파-쿰란 공동체의 삶을 받아낸 성결과 거룩의 땅이기에 세상을 따르지 않고 오직 진리를 쫓되 현재의 고난을 종말의 소망으로 극복하며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의 오늘과 내일을 비춰주고 있다.
구약학자 갬브로니는 “피난처란 도망가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장소지만 다윗은 그 모든 것 대신에 여호와만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전환을 했다”라고 말한다. 엔게디 광야는 우리에게 다윗의 고독과 무력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인생의 적막을 통로 삼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차지한 진정한 영혼의 요새를 알려주었다. 정점의 정점을 찍듯 쿰란과 엔게디를 연이어 지나고 이스라엘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지주라 일컬어 질 만큼의 장렬한 역사를 품은 마사다 요새에 드디어 올랐다.
생명이 살 수 없는 사해를 바라보는 요새 마사다. 유대인의 반란을 두려워 한 헤롯의 요새가 유대인들의 최후 항전지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새겨진 곳이다. 이 곳이 승전지가 아닌 패배지임에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순례의 장소로 꼽히며 이스라엘 군대가 선서의식을 치르기 위해 필히 방문하는 장소가 된 이유는 하나님께 택함받은 백성된 자존심과 정체성을 죽음으로 지켜낸 그들의 결사항전 정신 때문이다.
신앙과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떤 댓가를 치룰 수 있을 것인가를 물어오는 마사다를 오르내리며 성도됨의 무게와 신앙의 자유에 둔감한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넷째 날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은 때론 달콤하게 때론 엄격하게 우리를 다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