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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

 

바다 게들을 모아 통에 넣어두면 한 마리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게가 기어 올라가면 다른 게들이 다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어오르고 다리를 잡고 떨어지면 다시 다리를 잡는 것을 반복한다. 결국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운명체로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크랩 멘탈리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보통 이상으로 뛰어난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서로 비슷한 환경의 사람이 자신보다 잘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자신도 그렇게 올라갈 생각보다 끌어내리려 한다. 처음부터 자신들과 같은 대오에 있어야 할 사람이 올라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제거함으로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자기 삶을 불만족하게 하는 비교대상을 끌어내림으로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력을 상대적으로 부각시켜 주며 앞서가는 그 자체가 거슬린 것이다. 그래서 끌어내려 같은 계층에서의 이탈자를 제거하고 통 속의 결속을 다지려는 집단착각을 한다.

 

함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올라가는 자를 볼 때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앞서 가는 자로 인한 차이만큼의 소외와 박탈감이다. 하향 평준화시켜 통 속에 함께 모여 있어야 하는데 올라간 것 그 자체만으로 유죄이다. 처음부터 다른 계층에서 올라간 사람은 인정한다.

 

하지만 비슷한 무리에서 앞서간 사람은 용납하지 않으려는 것이 게 다리 잡기이다. 앞서 올라가는 자를 끌어내리려는 크랩 멘탈리티가 그 이유와 대상을 찾는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을 못 참는다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뼈 속 깊이 죄인인가를 보여준다.

 

지금은 통 안의 모습들이 밖으로 자유롭게 공개되는 시대이다. 전달매체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여 실시간으로 확인 할 수 있다. 내부의 부끄러운 모습을 단속하고 차단하려는 조치로 무마되는 시대가 아니다. 감추고 숨길수록 의혹이 증폭되고 호기심을 자극하여 더 빠르게 유통하게 만든다.

 

통속에서의 화합과 선행의 소식보다 다리를 잡아 끌어내리는 소식이 더 빨리 담을 넘는다. 이런 내용이 사람들의 이목이 더 집중시키고 관심을 끌게 된다.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달려들어 공격하고 많은 안티들을 양산하여 연합한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같은 업종끼리 동업자 의식이 있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어느 선에서 묵시적으로 타협한다. 끌어 내리기가 전체 생존까지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계산한다.

 

서로 다리잡기 자체가 어떤 명분이 있다하더라도 그 통속을 바라보는 자들은 식상해 한다. 기대감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실망감 때문에 강한 공격자로 바뀐다. 또한 가장 큰 피해는 내부의 발전과 인물이 자랄 수 없는 황무지로 만드는 것이다. 디딤돌이 되어서 나가도록 돕고 발전하기보다 다리 잡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통속에서 올라가고 다양한 은사와 능력을 발휘하여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발목만 잡아 사막화를 가속화 시킨다. 한 통속에서의 협력과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라 할지라도 잡아 끌어내리기는 공동체를 고사시키는 최악의 처방이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아니라 서로 통속에서 올라가는 기본 구조는 존중해야 된다. 다리를 잡아 상대를 못 올라가게 하는 크랩 멘탈리티가 아니라 먼저 올라간 자들로 인해 통 전체가 발전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크고 작은 나무가 울창하게 어우러져 숲을 이룰 때 가뭄과 홍수를 더 쉽게 극복된다. 인물이 자랄 수 없도록 만드는 통은 통 그 자체마저 없어지게 만든다.

 

통 속에 있는 공동체를 섬으로 만들어 외딴 섬에서 점차 무인도로 사라지게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다 주인공이 되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누리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연출가께서는 다양한 캐릭터를 사용하신다.

 

주연과 조연, 더 높은 오름과 덜 오름의 순서 매김은 세상의 주특기이다. 어떤 특별한 사실을 너무 부각시키고 확대 해석하여 불안감을 증대시키는 일반화는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미미한 증상이라고 자만하고 등한이 여겨 소홀함에서 돌이키는 지혜는 필요하다.

 

크랩 멘탈리티가 만연한 세상에서 그리스도 멘탈리티로 무릎을 꿇기가 어렵다. 밟고 올라가도록 등을 내어주고 통속에서 올라가도록 발판이 되어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뿐 이신가? 우리는 말로만 하고 생각으로는 동의 하지만 행동으로 못하는 것이 당연한가? 지금도 묵묵히 그리스도 멘탈리티로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둠속에 빛이 길을 비추고 있다.

 

협착한 좁은 길을 걷는 나그네들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커지도록 한 발을 내딛는다.

 

추복현 목사

광주요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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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찬송과 기도의 부르짖음이 울려 퍼졌다. 114차 총회(총회장 이욥 목사)는 지난 5월 10일 강경 옥녀봉 ㄱ자 복원교회에서 신사참배거부 교단기념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81년 전, 1944년 5월 10일 일제총독부 함흥재판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폐쇄된 날을 기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뜻을 되새기는 행사로 진행했다. 1부 감사예배는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사회로 평신도부장 김태욱 목사(두란노)가 대표로 기도했다. 이어 전국여성선교연합회 글로리아합창단이 찬양하고 총회 여성부장 하숙현 권사(범일)가 성경을 봉독한 뒤, 이욥 총회장이 “하나님 말씀 순종에 목숨 건 사람들”(렘 38:5~6)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욥 총회장은 설교를 통해,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로 무너지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을 보며 애통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백성들의 불순종과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고난과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