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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세사기 피해일지(1)

기자가 직접 경험한 전세사기 이야기

“사기를 안 치는 놈이 바보인 세상이네요.”

 

구청의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를 방문한 후 한 세입자가 내뱉은 말이다. 건물은 총 3차례의 가압류가 차례로 걸렸고, 건물주는 연락 두절이다. 건물 등기부 등본에 나온 건물주 주소의 등기를 때본 결과 해당 주소는 전혀 다른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도움받을 곳 또한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해가 예견됨에도 마냥 넋 놓고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우리는 웃음을 점점 잃어갔다.

 

조짐의 시작

지난 해 말, 퇴근 후 편의점에 들렸다가 집 현관문에 들어서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 거주하시나요?”

 

“네 무슨 일이신가요?”

 

“저도 여기 세입자인데 집주인 전화번호 바뀐 것 알고 계셨나요?”

 

지난 4월 원룸으로 이사한 후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각 호수별로 집주인이 변경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즉 새 건물주를 우리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자신을 관리 부동산이라고 알린 부동산에서 알려준 건물주의 전화번호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세입자의 말에 따르면 관리부동산에 문의하니 새로운 번호를 알려주긴 했지만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사한 지 한 달 만에 집주인이 바뀌는 시나리오는 전세사기의 가장 대표적인 플롯이 아니던가. 당시 어리둥절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세사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기에 부동산에 몇 번 문의하고 넘어갔는데 점점 의심이 구체화 되는 느낌이었다. 5평 남짓에 전세금은 1억 4000만 원, 그 가운데 9000만 원이 은행 대출금이었기에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4명의 세입자가 문제를 직시하고 단톡방을 만들어 이런저런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지만 당시로서는 불안한 마음만 삼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는 생각, 부질없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올해 1월, 결국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계속된 가압류, 집주인은 어디로?

전세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서비스 또한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이 전세사기가 급증하고 있는지, 지금 계약하려는 집은 안전한 지, 어떤 특약사항을 넣어야 하는지, 입주 후 등기가 변동되지는 않았는지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이다. 이미 입주를 했기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피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나 또한 해당 서비스를 등록해 이용 중이었다.

"고객님께서 구독 중인 주소지에 변동 사항이 발생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알람을 눌러 확인해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건물에 가압류가 걸렸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에 4명의 세입자가 모여 있는 단톡방에 이 사실을 알렸다.

 

충격적인 소식에 모두 아연실색했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고민하는 것은 일단 뒤로 미뤄놓고 4명 이외의 세입자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우리는 반지하부터 4층 꼭대기까지 각 호수를 돌며 초인종을 눌렀고 그렇게 16명 세입자 모두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무인카페에 모인 세입자들은 대부분 20~30대의 사회 초년생 혹은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세입자 가운데 한 달 뒤 이사를 가야해서 건물주에게 연락을 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건물주가 설 전까지는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답을 했다며 녹음본을 들려줬다. 걱정인 것은 해당 녹음은 왠지 마지못해 답하는 느낌이 있어 신뢰하기 어려웠다.

 

세입자 중 한 명은 우리 건물의 등기에 나와 있는 건물주의 주소 등기를 때어 봤다. 충격적인 것은 해당 집주소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성조차 달라 가족관계라고 보기도 어려웠고 내역을 보니 건물주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나중에 이사를 간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두 번째 가압류가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이번에는 2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약 한 달 뒤의 이야기지만 가압류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한 건이 더 들어와 총 3건의 가압류가 걸린 상태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뭔가 뒤에 더 있다

첫 2000만 원대의 가압류는 카드 연체로 추정됐다. 그리고 두 번째 가압류는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건 것으로 이는 현 집주인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건물에 이미 전세사기가 터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입자들이 입주하기까지 들었던 스토리를 종합해보기 시작했다. 전 집주인 전 씨와 Y부동산은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을 건축해 세입자를 끌어모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굉장히 비싼 수수료를 주위 부동산에 뿌렸다고 한다. 특히 나와 같은 B부동산을 통해 이 건물에 들어온 세입자는 총 4명일 정도로 해당 부동산은 적극적으로 세입자를 유치했고 지난 12월 즈음 폐업했다.

 

Y부동산 측은 원래 J씨와 함께 건물을 관리하려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J씨가 팔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새로운 관리부동산은 허위 광고 문제로 영업정지가 된 상태였다.

 

새 관리부동산 대표의 명함을 보니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해당 유튜브는 갭투자를 위한 건물을 소개하는 채널로 그중에는 한참 공사 중이었던 당시 우리 건물도 포함됐다. 이미 건물을 지을 때부터 전 건물주는 세입자를 모집한 뒤 팔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다른 세입자가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전 건물주 전 씨는 우리 건물 옆에 위치한 건물의 건물주에게 절대 팔지 않고 자신이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건물을 매매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고 이를 전 씨에게 물어보자 "세입자들에게는 미안하죠"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미안했던 걸까?

 

아쉽게도 옆 건물주는 우리 건물이 지어질 당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건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했기에 만약 법정으로 간다고 해도 증언은 못해준다며 미안해 했다. 대신 건물 청소를 맡은 업체를 통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힌트를 남겨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줬다.

 

건물 청소 업체에 연락을 해보니 청소 계약을 한 계좌의 명의는 곽 씨라는 또 다른 인물이었다. 청소업체 사장은 곽 씨가 다른 건물 몇 채를 더 보유하고 있고 그중 몇 개는 이미 경매에 넘어갔다고 증언했다. 여기까지 듣자 뭔가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뒤에 더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입자 몇 명과 함께 이미 경매에 넘어갔다는 건물에 직접 찾아갔다. 거기서 우리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우리 건물의 관리부동산인 부동산이 우리와 똑같은 양식의 건물주 변경 안내문을 집집마다 붙여 놓은 것이다. 다만 변경된 건물주명은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해당 건물의 세입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 건물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 건물의 새 건물주는 문제가 터지자 자신은 사실 곽 씨(청소업체 계좌에 돈을 입금한 인물)에게 명의를 빌려줬을 뿐이고 이번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곽 씨는 이미 구치소에 수감 돼 있으며 이 사람이 신림 지역에 OO하우스란 이름의 건물을 여러 채 운영 중에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더욱 충격인 것은 우리 세입자 중에 B부동산을 통해 OO하우스를 소개받은 이가 있었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촘촘한 거미줄이 우리 앞에 그물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전세사기 문제가 사실 더 큰 세력이 뒤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관리 부동산을 찾아갔지만 부동산 대표는 오히려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그저 건물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매매계약을 중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관리부동산 아니냐”는 세입자의 질문에 자신은 그저 도의상 관리해주는 것일 뿐 관리비를 따로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 매매 수수료조차 자신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20억대 가까이 되는 건물을 중계하면서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는 말을 우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법적 조치를 취할테면 취해보라는 입장이었다.

 

전세사기지만 전세사기가 아니다?

답답한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이미 모든 정황이 전세사기로 귀결되고 있으나 법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구청의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에 방문해 문의해보니 건물이 경매에 들어갔거나 계약기간이 6개월이 남았거나 하는 등의 기준이 있는데 우리는 그 어느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방법은 고소를 진행해 이것이 전세사기가 맞다는 것은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전세사기 피해자로 등록된다 하더라도 큰 도움은 기대하기 힘들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의 회복이지만, 집주인이 자신은 돈이 없다며 파산신청을 해버리면 달리 방도가 없다. 경매를 통해서 받을 수 있는 돈 또한 피해를 회복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매의 경우 대부분 유찰이 되기에 선순위 몇 사람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이철빈 공동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집에 선순위로 근저당이나 압류가 걸려있는 후순위 임차인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현행법상 경매가 완료되면 보증금의 대부분을 잃고, 집에서 강제로 퇴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법을 통해 경매·공매를 최장 1년간 유예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이제 유예 기간이 모두 끝나가고 있어 돈도 집도 잃고, 전세 대출 미상환으로 인해 신용까지 잃는 삼중고에 빠지는 피해자가 속출할 것이 예상된다.

 

의문이 들었다. 우리의 전세금을 왜 우리가 갚아야 하는가? 집주인이 파산했다고 이렇게 쉽게 손을 털 수 있다는 것인가? 돈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20억 가까운 건물을 매입했지? 전 집주인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명의를 빌려주는 것이 어른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인가? 명의 대여는 불법 아닌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 지는 이는 없었다.

 

일단 형사고소는 오래 걸린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우리끼리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고소를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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