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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유수영 목사와 함께하는 창세기 여행 (21)
(창세기 5장 21~32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1~24)

 

창세기 5장 족보에 등장하는 많은 이름 중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에녹입니다. 


에녹이 주목받는 이유는 죽음을 겪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에 대해서 성경은 오로지 두 단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라는 짧은 문장은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에녹이 어떤 사람이길래 감히 인간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에녹은 하나님과 이토록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원초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특별한 은총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 상상력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창세기가 이 구절을 넣은 이유는 죽음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특별함을 알려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가 깊고 넓은 신앙을 얻는 방법을 찾으려 저마다 노력합니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오래 기도하고, 더 큰 열정으로, 더 헌신하고, 더 무릎 꿇고, 더 포기하고, 더 매달리며 신앙의 정점을 향해 달립니다. 에녹 역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을 텐데 성경이 남긴 기록은 오직 하나 하나님과의 동행뿐이었죠. 어쩌면 우리는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가치에 오히려 소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에덴동산에서 맺었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 아름다운 관계의 재현입니다. 이 관계가 죄 때문에 깨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에녹은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서 이 땅에서 에덴동산의 삶을 살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신앙의 출발점이면서 마지막 목표이기도 합니다.


족보가 보여주는 에녹의 삶에서 우리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사실은 에녹 한 사람의 삶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이 지난 365세에 하나님 부름을 받았죠. 그리고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으며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숫자가 많이 나와 혼란스러운데, 라멕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맥락이 잡힙니다. 라멕이 태어난 해에 아버지 므두셀라는 187세였고 할아버지 에녹은 252세였습니다. 에녹이 365세에 하나님 곁에 갔으므로 라멕은 100년 넘게 에녹과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같은 집에서 함께 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영향받을 만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이 땅에 살면서도 에덴동산처럼 살았던 에녹은 라멕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그 해답은 라멕의 아들 노아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 5:28~29)

 

라멕은 할아버지 에녹과 너무나 달랐던 자기 삶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어떤 부족함도 고통도 없었던 에덴동산의 삶으로 돌아가는 소망을 품게 되었죠.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 없이 사람을 데려가시는 은혜가 누구에게나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결국 자신도 이 땅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후손에게 기대를 걸었고, 그런 마음이 노아의 이름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해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롭게 일하며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안위(위로)해 주실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아라는 이름을 붙였을 겁니다.
에녹은 후손에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의 상징이 됐습니다. 뒤이은 대홍수 심판의 절망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새로운 신앙의 모델로 자리 잡게 되죠. 에녹은 단 한마디 말도 이 세상에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삶으로만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유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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