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침례신학대학교(피영민 총장) 페트라홀에서는 매주 수요일 정오마다 학생들과 교수, 목회자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열정적이고 뜨겁게, 그리고 꾸준하지만 흔들림 없이 이어져 온 이 기도의 시간은 바로 ‘수요정오기도회’(수정기)이다.
2005년 5월, 혼란스러웠던 학교 상황 속에서 소박하게 시작된 기도 모임은 어느덧 20년의 세월을 지나며 1000회를 훌쩍 넘겼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없이 정오의 종소리와 함께 기도의 문이 열린다.
수정기를 2021년부터 이끌고 있는 신인철 교수를 만나 그 시작과 여정, 그리고 수정기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보았다.
혼란 속에서 피어난 기도의 씨앗
“2005년 5월 하순이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내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누군가는 이 학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모여 시작된 것이 바로 수정기입니다.”
당시 학교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갈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김광수 교수와 김선배 전 총장 등 일곱 명의 교수들이 기도의 자리를 만들었다. 첫 모임에는 30명의 학생이 참석해, 마음을 모아 학교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조용히 시작된 기도회가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 정오에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은혜의 연속이었어요.”
기도, 오직 기도를 위한 자리
수정기는 예배가 아닌 기도회다.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 시간을 ‘기도 훈련’의 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정해진 순서 속에서도 가장 중심은 기도 그 자체입니다.”
찬양으로 문을 열고, 35분가량의 간결한 설교가 이어지면, 이후 10~15분 동안 합심 기도에 집중한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찬양팀은 매주 정성을 다해 예배의 문을 연다.
“기독교 신앙은 듣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삶으로 연결돼야 진짜죠. 학생들이 실제로 기도하고, 그 시간을 통해 자신과 사명을 점검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도에 갈급 한 분들은 11:30부터 페트라홀에 나아와 기도를 시작합니다.”
코로나19의 파도 속에서도
수정기는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다만, 많은 오해와 갈등을 감내해야 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기도회도 비대면으로 전환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방해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어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부 지침을 어기면 학교가 문책을 받거나 행정 조치를 당할 수 있었거든요.”
어려웠지만 수정기 위원들은 매주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 등을 통해 배포하며 기도의 불씨를 놓지 않았다.
“그 시기, 제가 학생처장을 겸하고 있었기에 더 앞장서야 했습니다. 마음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기도회를 멈출 수는 없었기에 그 나름의 길을 찾아간 것이죠.”
동역자들의 헌신, 보이지 않는 손길
기도회가 지속되려면 기도하는 사람뿐 아니라 기도회를 ‘지탱하는 손길’도 필요하다.
“매주 정오에 기도하다 보면 학생들이 점심을 건너뛰게 되죠. 그래서 매주 간식이나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를 위해 15명의 목사님들이 후원하고 계세요. 이분들의 말씀으로 섬겨 주시고 재정적으로 후원도 해 주십니다.”
손석원 목사(샘깊은), 황일구 목사(물댐), 강대열 목사(진해), 임성도 목사(디딤돌), 정인환 목사(신촌중앙), 나상진 목사(예수마음), 박경인 목사(한몸), 정종학 목사(통영 함께하는), 박춘광 목사(동탄 지구촌), 박호종목사(더크로스처지), 이영은 목사(아름다운), 김창호 목사(새생명), 강성호 목사(예안), 안동찬 목사(새중앙)를 비롯한 여러 목회자들이 직접 와서 말씀을 전하며 학생들을 섬기기도 하고 재정적으로도 큰 힘을 주고 있다. 어떤 교회는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하며, 악기 수리나 영상 장비 구입 등으로 기도회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다.
교수 운영위원회에서도 수정기에 함께하고 있다. 기민석 교수, 김기영 교수, 김용국 교수, 김태식 교수, 오진철 교수, 조동선 교수, 최선범 교수, 한철흠 교수가 수정기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한 방학 동안에는 교수들과 더불어 강영미 목사가 말씀으로 섬겨주고 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수정기는 이만큼 오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한 동역자들이죠. 앞으로도 이분들의 헌신이 수정기를 이끌어 가리라 확신합니다. 바라기는, 더욱 젊은 목회자들이 수정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동아리로의 전환, 체계적인 운영
2020년부터 수정기는 정식 학내 동아리로 등록됐다. 행정적 안정과 운영의 투명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비공식 단체로 운영하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수정기가 임의단체로 남아 있다면 학교의 행정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아리 등록을 통해 학교의 보호 아래 들어가게 되면 시설 사용이나 행정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학교의 한 부분을 훨씬 명확하게 할 수 있죠.”
수정기는 동아리 등록 이후 매년 재정 및 사역 보고서를 작성하고, 통계와 사진을 기록해 후원자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정기는 단순한 모임이 아닌, 학내에서 공식적 사역 공동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년에 한 번 2월 말에 설교를 담당해 준 목회자들을 모셔 재정보고와 운영 보고를 드린다. 이 때 1년 동안 재정 수입의 지출과 수정기에 참여한 학생들의 숫자를 확인하는 동시에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기도 한다.
20주년 기념예배,
그리고 기도하는 공동체의 내일
다가오는 2025년 5월 21일, 수정기는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이날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고, 수많은 손길에 감사를 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수정기 20주년을 맞이하여 ‘시간을 넘어 순간을 기도하자’란 주제를 정했습니다. 이것은 매 순간에 기도하자는 취지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수정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가 되도록 스스로를 다듬는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수정기를 섬겨준 분들을 모시고 감사를 드릴 생각입니다. 기도회를 함께 섬겨준 목사들이 학생들에게 안수기도를 해주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찬양 팀 리더 출신 동문들도 초대받아, 하나의 ‘기도 공동체’로서 세대를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신인철 교수는 기대했다.
기도가 세대의 다리가 되고,
신앙의 뿌리가 되기를
신 교수는 수정기가 단지 매주 반복되는 ‘의무적 모임’이 아니라, 신학생들이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기도의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처음 수정기를 시작했던 학생들이 벌써 마흔이 돼 중견 목회자가 됐습니다. 이 기도회는 단순한 행사나 습관이 아니라, 그들의 사역과 신앙을 지탱해 준 뿌리였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 사역이 어떤 프로그램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보여주기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진짜 기도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각자 한 사람의 목회자로 기도의 훈련을 하는 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수요일 정오마다 한국침신대 학내에 울려 퍼지는 찬양과 간절한 기도 소리. 20년을 이어온 이 기도의 시간은 단순한 전통이 아닌, 세대를 연결하는 영적 유산이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는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새로운 세대의 손에 들린 찬양의 악기와 주님을 향한 간절한 외침 속에서, 수정기의 내일은 또 다른 은혜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 정오의 기도가 멈추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이 학교 위에, 이 세대 위에, 끝없는 부흥의 숨결을 부어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수정기는 어제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의 간증이자 내일의 약속이 될 것이다.
대전=범영수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