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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 비낀 볕에 서서

 

2013년도 카렌다가 이제 달랑 한 장을 남기고 있다. 사상가 V.영은 자연은 회전할 때 아름답고 인간은 전진할 때 아름답다고 했고. 단테는 자연은 신의 예술”. 임마누엘 칸트는 우주의 질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했다.

 

창조주의 절대 주권적 섭리 앞에 유한한 인간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싶지만 낙엽이 지고 깊어지는 겨울의 문턱에 서니 자꾸 어깨가 움츠러든다. 텔레비전 매체에서는 올 겨울은 무척 추울 것이라고 하는 기상청 예보를 들고 겨울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홈쇼핑 방송이 한창이다.

 

아직 난방기를 가동하지 않는 내 서재에 들어와 컴퓨터를 여는 오늘 아침 따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큰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기세이다.

 

수석채집이 취미이신 교우 한분이 멀리 가서 구해온 것이라면서 까맣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받침대와 함께 가져오셨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것이어서 담임목사인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조금 특이한 돌덩이로 보일 뿐인데 그분은 연신 감탄을 하면서 너무 너무 아름답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수석에는 문외한이라서 별 느낌이 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분은 더욱 열심히 설명을 한다. 움푹 파인 쪽을 가리키면서 이쪽의 기암절벽과 절벽 끝에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를 보라는 등, 실선 하나를 가리키면서 이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는 등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나에게는 별로 느낌이 오지를 않는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럴 듯도 해 보이고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역시 나에게는 수석을 보는 심미안은 부족하다. 사람은 모든 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면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공처럼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또한 둥글게 만들어진 세상은 쉼 없이 자전과 공전을 하며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 때문에 세상의 구조는 이중적이며 또한 복합적이다. 이세상은 낮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밤이 있고 아침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저녁이 있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도 이중적이며 동시에 복합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 한편에서는 한 겨울을 지내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여름을 지내기도 하고 한 편에서는 한 낮을 살아가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한 밤중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단면으로 생각하기보다 이중적으로, 아니 복합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해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여러 가지 복잡하고 난해한 일로 가득 차 있다. 보이는 것마다 어려운 일이고 들리는 소식마다 마음을 어둡게 하는 답답한 소식들이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재난과 사건, 사고의 소식들은 우리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근심되게 만든다. 인류가 살라온 이래 고난이 없고 문제가 없던 시대가 어기에 있었던가 싶지만 작금의 시대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어느 한구석 마음 편한 곳이 없다

 

며칠 전 교우 한분이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남의 빚보증 잘못서 줘서 큰 어려움을 겪고 난후에 집까지 다 없애고 부부가 아들하나 데리고 트럭으로 생선 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가정의 가장이다. 날씨는 추운데 감기 몸살이 겹쳐 장사하기가 너무 힘

 

이 들었던 모양이다. “목사님! 온 몸이 쑤시고 곧 쓸어 질 것만 같습니다. 잘 버틸 수 있도록 목사님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 코끝이 찡하다. 세상은 복합적이고 인간의 사고구조도 복합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없이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하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절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밤은 더 큰 절망일 것이다.

 

밤이 지나고 새날이 와도 더 큰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소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쉼의 은총이다. 그 사람에게 오늘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디딤돌일 것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워 옴을 느끼며 겨울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을 바르게 인식하고 사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삶의 지혜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나에게 큰 영감이라도 주신 듯 입술에서 찬송가330장 가사가 흘러나온다. “어둔 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돛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이 오리라/ 어둔 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지는 해 비낀 볕에 힘써 일하고 그 빛이 다하여서 어둡게 되어도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써 일하라

 

반종원 목사

수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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