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답십리에 위치한 엘부림 양복점(대표 박수양 장로, 답십리교회). 지난 40여년간 한결같은 믿음과 신뢰를 가지며 맞춤 양복의 브랜드화를 선언한 엘부림은 지금까지 5천 600여 명 회원의 나이와 체형 등 맞춤 스토리와 명품 브랜드를 분석해 맞춤 양복에 과감히 적용하고 높은 가격대를 과감히 낮추는 고객 지향형 마케팅을 선보이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노력에 대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기도하면 된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갈 때 엘부림을 통해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 하나 이뤄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고백했다.
지난 7월 27일 일본 고베에서 열린 제25차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 기술경진대회에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수상한 박수양 장로. 특히 박 장로는 일본에서 양복기술을 전수받은 우리로선 이번 대회의 우승에 남다른 애착과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40년의 장인 정신으로 한 땀 한 땀 그의 손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그분의 손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경 후 양복점의 첫 만남
경기도 포천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세상에 나온 박수양 장로는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어렵게 중학교 시험을 보고 입학, 졸업을 했지만 농사를 업을 하는 부친의 뜻을 따라야 했다.
“그 때 당시에는 시골에 서당이 있었어요. 오전에는 글공부하고 오후에는 농사일했죠. 공부가 너무 재미 있었어. 왠만한 서책은 다 섭렵하고 오전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그 때 참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삶이 흘러가며 박 장로는 ‘이대로는 내가 평생 농사꾼이 되겠다’라는 회의가 들어 1968년 가을, 추수를 하다 말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서울 답십리의 삼촌댁을 무작정 찾아간 박 장로는 기술을 배워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뜻을 알리고 삼촌을 통해 근처 양복점 재단사를 소개받으면서 맞춤 양복의 세상을 처음 접하게 된다.
재단사 보조의 삶은 고단했다. 잔심부름을 시작으로 잠 안오는 약까지 먹어가며 몇날 며칠을 재단 보조로 일하면서 어깨 너머로 재단사 선배들의 기술을 하나 하나 습득했다. 작업이 끝난 일과 이후 시간에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기술을 따라하며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그러면서 하나 하나 익힌 기술로 완벽한 양복을 맞춤할 수 있게 됐을 때, 답십리에 ‘부림양복점’을 열며 본격적으로 맞춤 양복점 사장님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사업 시작과 함께 온 불황…그리고 ‘엘부림’
50군데가 밀집한 양복점 거리 구석 한 켠에 자리잡은 부림 양복점은 박 장로의 성실함으로 이뤄낸 결정체처럼 세심한 맞춤과 재단, 그리고 가봉, 완성복이 나올 때의 기쁨과 보람은 “자식을 낳는 것과 같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70년대 말부터 출시된 기성복의 점점 양복 시장을 점유하면서 맞춤 양복점 시장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50여 군데가 넘는 양복점 점포는 점점 사라져 현재 두 군데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 지인들과 친구, 선배 재단사가 양복점 거리를 떠날 때마다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이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게 하소서! 제게 주신 재능을 헛되이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믿음의 고백과 함께 그는 맞춤 양복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해외 견물을 익히기 위해 세계맞춤양복대회에 한국대표 선수로 참석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 권역별 국제대회에도 해마다 참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세계기능인올림픽은 12연패라는 독보적인 실력으로 국내 소상공인에게는 기능장으로서 실력을 갖춘 이였다.
또한 해외 명품 브랜드 옷을 분석하고 현재 양복트랜드를 분석해 자신의 맞춤 양복에도 적용하는 시도를 보였다. 수많은 컨셉과 디자인 샘플들은 자신이 발품을 팔며 세계 명품 브랜드를 분석한 자신만의 숨은 노하우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작은 소규모 양복점으로는 승부가 좀처럼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한계점을 극복해준 이가 바로 박 장로의 둘째 아들이었다. 연세대 영문과를 나온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참석한 세계대회에서 아버지 세계 1위를 하게 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아버지의 기술을 브랜드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오랫동안 ‘부림(富林)’이란 이름으로 양복점을 한 박 장로는 이 이름을 포기할 수 없었고 세계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갖기 위한 고심과 기도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의 ‘엘’를 붙여 ‘엘부림’을 만들었으며 답십리교회 담임인 최종호 목사의 기도와 권면으로 지난 2008년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며 재2의 창업을 하게 됐다.
‘엘부림’ 유명인의 맞춤 양복 드디어 대통령까지
엘부림 맞춤 양복의 특징은 고가의 명품 정장과 같은 느낌과 제 몸에 착 맞는 착용감, 과감한 가격 파괴에 있다. 특히 맞춤 양복이 고가라는 인식 때문에 주저하는 30~40대에게 ‘엘부림’은 과감한 가격 경쟁으로 기성복 시장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체형별, 연령별 명품 패턴과 세계 패션 동향 등을 꼼꼼히 분석해서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양복을 선보인다. 물론 수선은 평생 무료다.
“난 자신할 수 있어요. 우리 옷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 최고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선 정말 놀랍게도 제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수많은 이들이 엘부림의 옷을 입고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했거든요. 근데 정말로 유명 연예인, 정치인, 행정가, 판사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이 우리 매장이 오셔서 직접 양복을 맞추고 가세요. 난 전혀 모르는 분들이죠. 대부분의 누구의 추천으로 소개로 오신 분들이었어요.
아! 하나님이 날 이렇게 사용하시는구나.
얼마전에는 필리핀 라모스 전 대통령이 한국에 오셨을 때, 제가 직접 치수를 재서 양복을 맞춰 드린 일도 있었어요. 다들 세계 유명 명품 브랜드가 있는데 꼭 제 옷을 고집스럽게 찾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그의 매장 테이블에는 유명인들의 양복 맞춤 사진과 기념 사진들이 빼곡이 놓여 있다.
자신의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도의 응답이라고 고백하는 박수양 장로. 오늘도 그는 매장에 오기 전 먼저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엘부림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편하고 만족할 수 있는 옷을 입게 하시고 이를 통해 저를 주의 종으로 사용해 주소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나날이 성장하고 주목받고 있는 ‘엘부림’의 다음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