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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가 필요없는 책을 손에 들어보자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8월은 평년에 비해 비가 많이 내리고 덥지 않았다고 한다. 벌써 바람이 선선하고 하늘이 높아지고 한 해를 갈무리하는 이 시점은 오곡백과를 삼삼오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가위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이쯤 되면 자연스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디선가 흘러나오고 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장자는 자신의 친구인 혜시를 두고 평가한 데에서 말미암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이 있다. 대장부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됐으니, “지식인을 자처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로 옮기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옛날 수레는 보통 소나 말이 끌었기 때문에 사람이 끄는 수레보다는 훨씬 많은 양의 책을 실을 수 있었다. 정확한 통계가 전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수레 하나에는 약 1,500~2,000권의 책을 실을 수 있다고 하니, 평생 읽어야 할 책은 약 7,500~10,000권에 이른다.


사람의 평균 수명을 75세로 잡으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달에 평균 8~11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찔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과연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는가 반성해본다면 말이다.


사람을 만나도 마음이 답답하고 영혼이 외로운 시대이다. 책은 또 하나의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들려주는 정리되고 절제된 문장 그리고 가끔은 허풍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잘 걸러내어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새롭게 정리되어 또 다른 듣는 이에게 전해진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 연암 박지원도 글을 읽는 즐거움을 이렇게 말했다. “쇠고기 돼지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많이 먹으면 해가 생긴다. 많을수록 유익하고 오래갈수록 폐단이 없는 것은 오직 독서일 것이다.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경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은 먹고 살만 해도 책을 안 읽는다. 돈을 많이 벌어도 더 벌어야 하기에 여유는커녕 점점 바빠지는 게 인생살이 인지도 모를 일이다. 먹고사는 일에 붙들려 밥벌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박지원과 절친했던 이덕무는 독서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갑절이나 낭랑하여 그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둘째, 차츰 날씨가 추워질 때에 읽게 되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흘러가 몸이 편하여 추위도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에 눈은 글자에, 마음은 이치에 집중시켜 읽으면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부딪침이 없게 되어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친다. 주림과 추위, 근심과 병을 이겨내게 하며, 노망까지 막아준다니 독서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박지원은 나는 집이 가난한 이가 글 읽기 좋아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부자로 잘 살면서 글 읽기 좋아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책의 적()이 부유함이었나 보다. 그러나 지금 책의 적은 스마트폰이다.


매월 스마트폰 사용자와 데이터사용량이 사상최고치를 갱신하는 이때에 우리 손에 놓여 있는게 맨질맨질한 종이의 촉감이 아닌 배터리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마트기기들이 아닌지 되돌아 볼 때이다.


지혜의 총명함은 지식으로부터 나오고 지식의 양은 오래전부터 종이로부터 나왔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의 양을 두려워할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규합하고 사람들과 소통시킬 수 있는지가 먼저이다.


모 통신사에서 처음 핸드폰이 나왔을 때 했던 캐치프레이즈가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주셔도 좋습니다였다. 손에 잡히는 전화가 발전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장이 아닐까?


윤양수 목사 / 한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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