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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정 교수의 음악읽기> ‘노란 우산’


국회의사당 주변 마른하늘 아래 노란 우산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얼핏 보니 개나리꽃 무리인양 고요한 흔들림이 있다. 지친 발걸음 탓이리라. 지난 716일 오후, ‘세월호 생존학생들의 도보행진이 안산을 지나 12일을 소요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이르렀다. “많은 친구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노란 우산은 침묵의 외침, 슬픔의 행렬이었다.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워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을 받았는고.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먹여줄 사람이 없도다.” (예레미아애가 424)


실로 지난 봄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함께 자책과 슬픔에 초토화된 예루살렘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선지자 예레미아가 바벨론 침입에 의해 철저히 무너진 예루살렘을 향해 옷을 찢으며 애통했던 그 처절한 슬픔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저 잘되겠지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 ‘이 정도쯤이야하는 대책 없는 모험주의, ‘나는 괜찮겠지하는 자기 예외주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무심한, 무감각한, 무대책의 비양심적인 행보! 과연 언제 즈음에야 끝이 날까? 이 터무니없는 죽음의 유희, 과연 언제까지일까?


돌이켜보니 세월호의 비극은 유족만의 슬픔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마음을 헤집어 놓은 국민적 트라우마였다. 어떤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여럿이 모여 표출하길 바랐고, 어떤 이들은 골방기도 속에 눈물을 훔쳤으며, 또 어떤 이들은 이 모든 표현을 삼가 함으로 슬픔을 삭였다. 비록 그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세월호의 슬픔은 진정 우리 모두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동일한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후, 우리는 거의 반년이란 세월이 너무도 힘겹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라가 슬픔과 분노에 묶여 흔들리는 것을 보았으며, 슬픔에 지친 유족들의 메마른 눈물과 천막 속의 단식 논쟁과 유가족과 대리기사 분과의 불미스런 사건에 이르기 까지 참으로 모두에게 힘겨운 순간들이 어렵게, 느리게, 그리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게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시간이 아무리 지났어도 유족들에게 내일이란 아직도 너무나 잔인한 단어일 것이다. 그러나 이즈음에서 우리는 이렇게 얘기해야하지 않을까? “이제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부축하며 일어섭시다. 다리에 모든 근육이 사라지고 터질 듯 핏줄만 솟아오른다 하여도, 휘청거리는 두 다리가 한 발자국도 견뎌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서로서로 의지하며 내일을 바라봅시다.”


마침 1012일자 신문에 소망의 기사를 읽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신도 1200명이 5월에 이어 이웃도 잃고 손님도 끊긴 상인들을 위로하러 안산 단원고 옆 재래시장에서 단체 장보기를 했다는 소식이다. 원칙은 두 가지. 물건 값을 깎지 않는다. 교회나 종교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참으로 사려 깊은 지침이다. 사랑과 위로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며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 마음속에 남아 있던 노란 우산의 주인들을 미래 속으로 떠나보내려 한다.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그들이 살아남은 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를 기원하며.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의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희생된 학생들의 영전 앞에 마지막으로 헌정의 노래와 짧은 시 구절을 헌정하고자 한다

 

소프라노 K씨는 한이 서린 듯 애달픈 가창이 남다른 재미 성악가이다. 이분도 몇 년 전 그토록 사랑하던 딸을 잃었다. 진정 유족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헤아렸을 그분이다. 직접 들려드릴 수 없는 것이 유감이나 K씨가 노래한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Grieg)너를 사랑해’(Ich liebe dich)의 노랫말 일부를 부모의 심정으로 남기며 글을 맺는다.


너를 사랑해

 

너는 나의 존재요, 또 발생이라

너는 나의 마음의 첫 번 축복이라

나는 너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

일생동안, 그리고 영원히...

 

차수정 교수

침신대 교회음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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