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성탄절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기억된다. 모든 아픔도 슬픔도 흰 눈에 가린 채 성탄절 새벽에 임한 한 병사의 힐링 이야기는 성탄 시즌만 되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적인 추억의 간증으로 남아 있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어느 해 늦가을, 위문예배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 나에게 한 중년 부인이 다가왔다. “유지영 목사님이시죠?”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그 분은 당시 허리 디스크로 입원해 있었던 한 병사의 어머니였다. 아들 문제로 상담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동안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필자는 그런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의아했지만 교회 상담실로 이동해서 사연을 들어보니 금방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아들이 군대 온지 1년 6개월 동안을 매주 월요일마다 그 먼 전방까지 아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서울 모 교회의 전도사인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휴일을 반납한 채 최전방에 있는 아들과 군 생활을 동행하다시피 한 것이었다.
내용인즉 아들이 군대 오기 전에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자매와 사귀었는데 군대 온지 얼마 안 되어서 그 자매가 변심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에 아들은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매번 죽고 싶다고 하니 엄마의 입장에서 아들이 행여 자살이라도 할까봐 불안해서 아들을 찾아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주 와서 기도해 주는 어머니의 정성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의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고 군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어머니를 근심케 하는 관심 병사였던 것이다.
얘기를 다 듣고 나니 마음이 매우 아팠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형제를 회복시켜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 드리고 싶었다. 필자는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전혀 그러한 내용을 모른 체하고 그 영혼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관찰해 보니 그 병사는 문제가 참 많은 형제였고, 자존감 지수를 테스트해보니 수준 이하로 나왔다. 사랑 때문에 병든 영혼은 사랑으로 회복시켜야 된다는 믿음으로 아예 내 아들로 생각하고 아낌없이 사랑으로 대해 주면서 상담과 기도를 균형 있게 병행하였더니 눈에 띄게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성탄절을 맞이하게 됐는데 성탄전야 행사로 ‘복음성가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환우와 신우 믿음의 간부 및 가족들을 대상으로 개최했는데 그 형제가 동상을 받고 그동안의 우울증을 한방에 날려 보내기라도 할 듯 뛸 듯이 기뻐했던 것이 눈에 선하다. 짧은 시간에 이뤄진 자신감을 갖고 변화된 돌봄의 결과였다.
그리고, 행사 후에 추억도 쌓고 성탄의 의미를 좀 더 새겨 보고자 군교회 몇 명의 일꾼들과 밤새 철야로 대화 및 성경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 형제를 포함해서 우연히도 12명의 제자를 훈련시키는 주님의 심정으로 마태복음 1장을 강해했는데, 18절에서 20절까지의 내용을 가지고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받아들인 약혼자 요셉의 심정을 전하는데 말씀을 듣던 그 형제가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눈물 콧물에다 입에 거품을 물고 한참동안을 통곡하던 그 형제의 입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터져 나왔다. 형제가 고백한 내용은 개인사가 들어있어 여기에서는 생략을 하겠다. 독자들께서는 이해를 해주시길 바란다. 형제는 잘못은 했지만, 그래도 순수함이 남아있었기에 본인의 죄로 인해 많은 시간 고통 받고 있었다.
“저는 죄책감에 시달려 군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내내 고통에 시달려 왔습니다!”
죄가 고백되고 긴 시간의 고통의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 그는 성령 충만한 천사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주님의 사하심과 함께….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의 분량과 주님의 사랑과 말씀의 능력은 그 형제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통회자로 만든 것이었다. 변화된 형제는 송구영신예배를 회개의 단으로, 신년 예배를 감사의 단으로 쌓고 헌신과 충성을 한 다음에 전역하고 이곳을 떠나갔다.
그리고 2년 쯤 지나서 이맘때 다시 찾아왔다. 의젓한 사회인으로 전문직 고소득 연봉자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특히 힘들 때 영적 고향으로 알고 찾아와서 안수 받고 가면 신기하게도 일이 잘 풀리곤 한단다. 그 형제는 올 때마다 우리 가족에게 식사로 소고기를 대접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 형제가 오는 날을 ‘소고기 먹는 날’로 정했다. 이번 성탄절을 보내면서도 그와 같이 회복되는 영혼이 늘어나도록 기도하면서 기쁨과 감사의 단을 쌓을 수가 있었다.
작년 2월 15일에 방영된 CGN TV와의 인터뷰에서 이 형제에 대해 아내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목사님과 상담하면서 계속 보살핌을 받았던 형제가 있었어요. 그때 그 형제가 간증할 때 이런 표현을 하더라고요. ‘죽고 싶었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의 인생을 보면 그렇지만 목사님과 상담을 하면서 ‘어둠의 그늘에서 빠져 나왔고,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겠노라’고 고백하더라고요. 그때 제 마음속에 든 생각이 ‘그동안의 사역도 사역이지만, 앞으로의 사역가운데서도 단 한명의 열매가 없더라도 그 한명의 형제로 만족하겠다. 그 한명의 형제로 내가 충분히 하나님 앞에 감사하겠다.’ 이렇게 마음속에 정말 큰 감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이사야 61:1).
유지영 목사
국군춘천병원 새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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