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예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이시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주님께서는 그의 살아계신 이름과 권세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용하도록 인장을 우리 성도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 강화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2-14, 15-16, 16:24-26))고 여러 번 약속하셨다.
그 약속으로 우리는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의 인장을 찍어 응답을 받는다.
예수님의 이름도 있는가?
교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한번은 교황 이노센트 2세(Innocent Ⅱ)를 방문하였다. 교황은 한 웅큼의 돈을 세면서 “토마스여, 그대도 보시다시피 ‘교회도 더 이상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오”라고 말했다. 이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대답하기를 “사실이옵니다. 대 성부여, 그리고 교회가 이제는 ‘일어나 걸으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3:6)말할 수도 없게 되었사옵니다”라고 응수했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떠한가? 은과 금이 있고, 보기도 좋고 훌륭한 교회당이 높이 세워져 있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이 높이 세워지고 있는가?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이 성도들의 삶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복음과 그 이름이 증거되고 높여지고 있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하겠다.
예수님의 이름만 되풀이
신유부흥사 스미스 위글스워드(Smith Wigglesworth)가 한번은 해소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 그의 침상 곁에 서서 반복해서 다른 것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의 영광이 방을 가득 채웠고 치유는 죽어가는 사람의 몸에 흘러 그는 일어났고 완전히 고침을 받았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를 확신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이름은 기도 끝에 붙이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남겨주신 천국 열쇠요, 구원의 열쇠이며, 기도응답의 열쇠로 남겨주신 이름이다. 기적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높이고 자랑하며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모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나의 군생활을 돌아보면 한없는 주님의 은혜였으나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나의 무모한 운전이 나의 생명을 앗아갈 뻔했던 처절한 경험을 잊을수가 없다. 1군 사령부 지명차출로 춘천 샘밭 2군단 사령부에 붙어 있는 미군사고문단(“C” KAMG)에 특파(TDY)되었는데, 마침 남춘천 병기부대 연대장 중령편에 나를 지프차에 태워 미군부대에 배속시켜 주었다.
일과는 1군 사령부 관할 내의 탱크 부대나 포병부대 및 병기 창고 한 두 곳을 스케줄을 따라 시찰한 후 산탄총으로 꿩 사냥을 하고 부대로 돌아오면 특무상사 헤럴(Herrel, sergeant major)과 나의 일과는 끝나고 자유시간이었다. 그날도 꿩이 한창 살쪄가는 가을이라 케첸버그 사령관과 고문관들이 일과 후 함께 양구 밑쪽 높은 산에 올라 주말 꿩 사냥을 했다.
차가 산꼭대기 가까이 오른지라 그들이 사냥하면서 아래로 내려갈 것이므로 모든 차량을 산 아래 길가로 옮겨놓으라는 명령이었다. 나는 고문관이 운전하고 옆좌석에 않자 통역자로 한국 부대를 시찰했는데, 카투사인 김상병이 미군 짚차는 운전이 쉽다면서 시간 날때마다 가르쳐 주었으나 익숙치 못한 상태였다.
시동을 걸어 기어를 넣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천천히 군인들이 만든 도로로서 포장이 되지 않아 울퉁불퉁한 산골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데 갑자기 길이 오른 쪽으로 90도 가량 바뀌면서 30 ~ 40도의 경사길이 나타났다. 순간 왼쪽을 보니 수백 미터 아래로 급경사 낭떠러지가 보였다.
너무 당황해서 “앗! 주여!”라고 소리치면서 벼랑 끝에서 오른쪽으로 급커브를 휙 돌면서 브레이크를 세차게 밟았다. 정신없이 너무 많이 꺾다 보니 폭이 넓은 미군 지프차지만 산비탈로 오르다가 그만 “쿵”하면서 뒤로 곤두박질치고 한번 더 낭떠러지로 굴러가려는데, “주여!”라고 소리 지르고 보니, 차가 비탈 쪽으로 넘어가다가 거꾸로 뒤집혀 주저않고 말았던 것이다.
눈을 떠보니 내가 거꾸로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차려 우선 문을 찾아 열고 기어서 차 밖으로 나와 보니 조금만 더 굴렀더라면 지프차와 함께 비탈로 떨어져 뼈다귀도 찾지 못할 뻔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망의 산비탈에서 정말 나를 다윗처럼 살려주셨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