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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믿어 주는 것


괴테가 말했다. “그 사람의 보여지는 모습대로 그를 대하면 당신은 그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잠재력을 믿어 주면 당신은 그 믿음대로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이 믿음의 원리를 손수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는 시몬을 보면서 그를 반석이라 불렀다. 천방지축 급한 성격의 시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행동하는 대로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잠재력을 보시고 믿어 주신 것이다. 그렇게 이름이 베드로로 개명된 후에도 시몬의 행동은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옴을 알고는 제자들에게 심각하게 너희 나를 버리고 흩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자, 눈치 없는 베드로는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여기 있는 자들이 다 주를 버리고 달아날지라도 저만큼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믿어주십시오. 제가 베드로 아닙니까?’ 하지만 그는 멋지게 배반하고 도망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그랬다. 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베드로를 믿어주었고, 그에게 당신의 교회를 맡겼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주님의 믿음대로 반석이 되었고,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 소명의 길을 걸어갔다. 믿어주셨던 주님의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버트 로젠탈은 이 믿음을 실험했다. 그와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쳤다. 그런 후에 그 학생들의 담임교사들에게 그 중 일부 학생들의 시험 결과가 대단히 우수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 교사들은 그 학생들이 수재라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교사들이 수재라고 믿었던 학생들은 완전히 무작위로 선택된 이름이었다. 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난 것이 없었지만 교사들은 그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나다고 믿었기 때문에 믿음대로 대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해 학기 말에 교사들이 믿었던 학생들은 실제로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내게 되었다. 그들의 성적뿐 아니라 지능검사에서도 다른 학생들 보다 평균 20점이나 더 높았다.


또 교사들은 우수한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에 그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행복하며 더 호기심이 많고 더 상냥하며 인생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고 기록했다. 이 모든 것이 교사들이 아이들을 믿어 주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교사들은 그 학생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믿음만큼 성장했다.


이 결과에 대한 원인은 교사와 학생 간의 미묘한 상호작용에 있는 것 같다. 교사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 음색, 얼굴 표정, 손동작이나 자세 등을 통해서 그 학생들을 향한 자신들의 기대를 전달했던 것이다. 그러한 의사소통은 학생이 자신에게 갖는 이미지를 바꾸게 해 주는 것이다.


너를 믿는다.” 이 말 한마디가 방황하는 사춘기의 자녀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위대한 힘이 된다. 사실 목회자 자녀들의 사춘기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욱 심할 수도 있는 환경적 요인을 가지고 있다. 어디를 가나 목사의 아들()이 왜 그래?’라는 눈총을 받기 때문이다. 자신이 목사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사춘기의 청소년일 뿐인데 왜 그렇게 차별대우를 하는지 그게 못마땅해서 더 심한 일탈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는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될까?


목사가 설교할 때 맨 앞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어느 성도(장로)의 얼굴은 나는 목사님을 믿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힘이 난다. 그 어느 설교자도 설교 단상에서 내려오는 순간 숨고 싶은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오랫동안 설교를 했어도 늘 자신이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의 눈빛이 설교자들에게 한없는 생수가 되기도 한다.


부임하기 전, 교회 대표자들이 안수집사들에 대한 신임투표를 하겠노라고 내게 의견을 제출했었다. 교인들의 불만도 잠재울 겸, 너무 많은 안수집사들의 숫자도 조정할 겸 필요한 조치라면서, 그래야 내가 부임해서 어려움 없이 목회 할 수 있노라는 첨언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강력하게 만류했고, 결국 안수집사들의 신임투표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부적격자를 골라내어 신임을 얻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로 인해 서로가 상채기를 내는 것이 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을 믿어주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에 많은 변화도 일어났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시작된 목양장로(목양안수집사) 사역은 그들을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서너개의 목장을 맡고, 그 목자들을 섬기면서 자신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지갑을 열어 베풀면서도 기쁨이 넘쳤다.


교인들은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늘 멀게만 느겨졌던 그들이 가까이 있었고, 자신들의 형편을 살펴주고 돌봐주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믿어주는 것이다. 주께서 한없이 부족한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 주신 것처럼 말이다.


조범준 목사 / 영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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