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를 부추기는 사회의 위력은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되는데, 사회적 동물의 관계지향적 관계에서 비롯된 이 기본적인 욕구는 안타깝게도 ‘착해야 한다’는 명제에 길들여져 왜곡되어 왔다.
좋은 사람들의 완벽주의는 여러가지 사회적 병폐를 낳곤 한다.
1) 불가능한 일에도 무턱대고 도전하려 한다.
2)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만들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좌절감으로 악화시킨다.
3) 친구와의 사이가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4) 욕심이 지나쳐 도통 만족할 줄 모른다.
5) 다른 사람이 내 생활이나 인생까지 주도한다.
그렇다면 완벽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완벽해지려는 노력은 항상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해지기 위해, 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산다는 건 엄청난 잘못이다’라고 자기암시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이를 계속 되뇌이고 묵상하거나 체화될 때까지 적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완벽주의를 버리기로 결심하라. 사실 완벽주의가 잘못이라는 사실을 되뇌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즉 습관을 아주 끊으려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심도 함께 해야 한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리라 다짐했다면 이제부터는 다른 차원의 인생관을 터득할 차례다. 바로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조건 3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내가 알아서 한다(독립의 심리). 흔히 성인기에 들어서면 유아기의 의존성과 청소년기의 독립성은 차차 멀어지고 ‘상부상조’(혹은 상호의존)이라는 중도 성향이 나타난다. 의존성과 독립성이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을 ‘철이든다’고 표현한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이처럼 제3자의 영향력을 살피는 동시에 스스로 의존성에서 탈피해 상호의존성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책임관과 자립심을 갖춘 성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를 먼저 생각하라(공익정신). 공익정신으로 살아가면, 남들이 규정한 터무니없는 기준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거나 그에 부응하지 못해 자승자박할 필요가 없어진다.
셋째 서로 사랑하라(사랑의 효과). 조건을 따지지 않는 완벽한 이유는 비난을 받지 않고 모든 개념을 초월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최선을 요구하며 이웃과의 유대감을 조성해 자신과 그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본질적으로 사회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조건을 따지는 사람은 당신이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산기부터 두들긴다. 그렇다고 해서 조건부 포용과 사회적 기대심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육과 예술, 운동, 정치, 그리고 직장에서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부 포용은 실적을 쌓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를 배려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당신의 됨됨이나 인생의 지침, 자긍심의 정도, 혹은 인맥을 넓히는 방법은 조건을 따지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물론 실적으로 승부를 가려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싶은 마음이 누군들 없으랴마는 그로부터 인생의 보람과 안정, 기쁨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경우 필요한 몇 가지 대안을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 조건을 따지지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라. 둘째 당신은 이미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라. 셋째 섬기는 연습을 해보라. 즉 스스로 어떤 시험을 정해 두고 이를 통과한 사람과만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넷째 부족한 점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다섯째 완벽을 기대하는 사란과는 관계를 끊어라.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당신을 떠나가는 것은 아니다. 미리 좋은 인맥을 형성해두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일을 계기로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완벽주의 근성이 완벽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당신의 기분까지 좌우될 필요는 없다. 또한 자신만의 가치 기준은 유지하되, 남의 환심을 사고 있는가? 보다는 ‘내 자신에게 솔직했는가?’라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