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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구 선교사와 함께 하는 기독교유적여행 (20)

헤스본 (Heshbon) : 히스반(Hisban)

 

 

헤스본(히스반:책략)은 암만 남쪽으로부터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마다바로 부터는 왕의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대략 9Km정도 위쪽에 위치한다. 그리고 헤스본 북쪽 3Km 지점에는 엘르알레가 위치한다.

 

 

현재는 암만에서 마다바로 가는 왕의 대로변에 위치하여 암만에서는 사해 도로를 택하여 달리다가 마다바, 나우르 이정표를 보며 우측 인터체인지를 따라 마다바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이곳으로부터 약 4Km 지점 좌측에 나지막한 언덕에 엘르알레의 산성 자리가 보이고 이곳에서 남쪽 방향으로 계속하여 3Km 정도 달리면 우측으로 헤스본 안내 표지판이 보이고 언덕 편에 헤스본 산성이 보인다. 헤스본을 방문할 사람은 헤스본 성 푯말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많은 분들이 요르단을 다녀가지만, 헤스본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행사의 성지순례 코스에서 생략되어 있어 들려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소중 하나이다. 특히나 헤스본의 중요성은 모세의 시나이 반도 출애굽 여정에 있었던 마라와 르비딤의 기적 이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출애굽 및 가나안 입성 과정에서 꼭 들려 보아야할 장소이다.

 

특히나 열두 지파의 기업 분배와 함께 요단강 동편도 이스라엘 영토라는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사사 시대와 솔로몬 이후까지 연결되는 헤스본의 역사는 요르단을 순례하는 순례자가 꼭 들려야 할 곳임을 알리고 싶다. 헤스본 성을 살피다보면 초기 히브리 글자들이 새겨진 커다란 돌들과 시대에 따른 건축 문양이 나타난다. 예수님 시대에 들어서는 헤롯 대왕이 헤스본을 가까운 마케루스와 함께 군사전략지로 요새화 시켰었다.

 

로마의 점령 후에는 로마인들이 이주해와 이곳 헤스본과 엘르알레 지역에 이주해 살았던 마을 흔적이 남아 있다. 로마 점령 이후 7세기 까지, 헤스본은 마다바 지역과 연관한 기독교 비잔틴 문화가 계속 이어졌으며 그 당시 지어졌던 비잔틴 양식의 교회 터를 헤스본성 정상에서 볼 수도 있다.

 

지금은 무너져 옛 모습을 다 추측할 수는 없지만 비잔틴 시대에 코린도 양식으로 지어졌던 자그마한 교회를 통해 이곳 헤스본 성 정상에서도 하나님께 예배 드려졌음을 볼 수 있다. 7세기 이후 이슬람이 요르단 지역에 들어오면서 기독교 비잔틴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이슬람의 진출에 따라 헤스본 성 위에 세워졌던 이슬람 모스크의 흔적을 볼 수도 있다.

 

 

성경과 헤스본

헤스본 있는 모압 평야 지역은 롯의 후손이었던 모압 족속의 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롯의 후손들에게 요단 동편 땅을 주어 살게 하시면서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두 족속의 땅을 점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2:9)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과 암몬을 치지 않고 우회해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해 간다.

 

그렇지만 모세의 출애굽 당시 아르논 골짜기로부터 헤스본에 이르는 지역은 아모리 족속의 지역이었으며 특히 헤스본은 아모리 족속의 수도로 시혼 왕이 다스리던 곳이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모압의 경계를 우회하며 왕의 대로를 따라 지금의 와디무집(아르논 골짜기)을 건너 헤스본으로 향하게 된다. 다가오는 이스라엘로부터 위협을 느낀 시혼은 바산왕 옥을 불러 함께 대항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만다.

 

결국 이스라엘은 모압과 암몬 사이에 있었던 아모리인들이 다스리던 땅 헤스본은 물론 바산 지역까지 점령하게 된다. 만약 모압이 헤스본을 다스리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이스라엘은 모압과 전쟁을 금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헤스본을 위회해서 가나안으로 향했을 것이고 요단강 동편의 땅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혼 왕은 이스라엘이 모압 평야를 향해 올라오기 전 모압과 싸워 영토를 아르논 골짜기까지 넓혀 놓았다.(21:26) 결국 이같은 아모리인들의 활약은 이스라엘 12지파중 3지파가 요단강 동편에 남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르우벤 지파는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 헤스본을 점령한 모세에게 나아와 자신들이 아모리 족속의 모압평야에 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목축을 주업으로 삼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헤스본이 풍요롭게 보인 것 같다. 특히나 봄철의 모압평야의 푸르름이 르우벤 지파에게 유혹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결국 르우벤 지파는 아르논 골짜기로부터 헤스본 지역까지의 땅을 모세로부터 그들의 기업으로 받는다. 지금도 우기가 지난 헤스본과 마다바 지역은 녹색의 평야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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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찬송과 기도의 부르짖음이 울려 퍼졌다. 114차 총회(총회장 이욥 목사)는 지난 5월 10일 강경 옥녀봉 ㄱ자 복원교회에서 신사참배거부 교단기념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81년 전, 1944년 5월 10일 일제총독부 함흥재판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폐쇄된 날을 기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뜻을 되새기는 행사로 진행했다. 1부 감사예배는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사회로 평신도부장 김태욱 목사(두란노)가 대표로 기도했다. 이어 전국여성선교연합회 글로리아합창단이 찬양하고 총회 여성부장 하숙현 권사(범일)가 성경을 봉독한 뒤, 이욥 총회장이 “하나님 말씀 순종에 목숨 건 사람들”(렘 38:5~6)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욥 총회장은 설교를 통해,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로 무너지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을 보며 애통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백성들의 불순종과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고난과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