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주는 자가 복이 있다(Ⅰ)

한명국 목사의 회고록

1. 갈릴리 바다와 사해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20:35)
30년 전 성지순례에서 우리 일행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텔아비브에 내려 성도인 예루살렘을 보고 여리고에 내려가 이어서 맛사다를 보고 사해에서 쉬었다. 들은 대로 몸이 바다위에 뜨는지 속옷 입은 채로 수영하러 들어가는데 가이드는 말렸다. 눈에 소금물이 들어가면 큰일 나니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양해를 구하고 수경을 끼고 들어갔는데 처음이라 수영하기가 만만치 않아 하늘을 보고 누어 팔과 다리를 벌리고 조금씩 움직여도 부력으로 둥둥 뜬 몸은 잘 나아갔다. 우리는 이어서 요단강변 길을 따라 갈릴리 바다(게넷사렛 호수 또는 디베랴 호수)에 이르렀다.


울창한 숲과 만년설로 덮여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의 국경이 되는 해발 2814m의 헐몬산에 내린 비나 눈이 녹으면 계곡을 따라 가이사랴 빌립보를 지나 갈릴리 호수에 이른다. 갈릴리 호수는 분화구로 추측되는 곳으로 물이 고였다가 그물을 요단강을 따라 사해로 내려 보내주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살아있는 바다로 미생물이나 플랑크톤 및 각종 물고기들이나 이끼와 수초가 번식하지만 사해는 지중해 해저 392m로 내륙에 움푹 파인 곳이라 들어온 요단강물을 내어 보내주지 못하므로 물은 증발하고 소금의 농도가 높아 생물이 못하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소금바다가 된 것은 결국 요단강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어 보내지 않는데 있다. 갈릴리 바다는 받아들인 만큼 내어 보내기 때문에 살아있는 바다가 되었고 받아만 들이고 내어보내지 않는 사해는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웅변적인 설교와 상생의 진리를 가르친다. 목회와 인생살이에 주신 복된 말씀을 본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6:38)


2. 하나님이 주신 만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이 모든 만물과 세상의 모든 것들을 거져주시고 사용케 하셨다.(창1:28~3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대가없이 그저 받았다. 우리가 보고 누리는 해, 달, 보석들로 수놓은 찬란한 별들과 지구상의 모든 것들과 땅, 바다, 무생물, 동물, 식물을 비롯한 10분만 없으면 죽은 무진장의 공기와 10일간 마시지 못하면 죽는 물과 40일간 안 먹으면 죽는 음식물을 무제한으로 값없이 주셨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행17:25) 하나님이 친히 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청지기로 삼아 만물을 주어 사용하고 잘 관리하게 맡기셨다. 육신의 부모가 억만장자라도 자식에게 아무리 많은 유산을 준다 해도 우리의 영적 아버지 하나님만큼 무제한으로 줄 수는 결코 없다.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그저 주고 또 주며 계속 주시는 참 좋고 선하신 아버지이시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4:7)고 사도 바울은 지적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진장의 선물을 거저 받았다. 태양은 생명의 광선을 계속 주되 앞으로 2억년을 계속 되리라고 천문학자들이 말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 곧 땅도 계속 줌으로서 상실되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 땅의 법칙이요, 만일 땅이 식물, 동물 및 씨앗과 열매를 내지 않으면 받을 것이 없고 있다면 메마른 사막만 된다. 두바이에서 가나의 아크라까지 8시간 아프리카 북부 사막지대 위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계속 황량한 사막이었다. 예를 들어 씨앗이 뿌려져 수많은 수확을 주고 종자를 낳으며 동물도 새끼를 낳고 번식한다.


식물처럼 땅으로 다시 돌려주는 것이 자연법칙이요 곧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이다. 우선 보기에는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인다는 옛말이 있지만 무진장으로 내리는 하늘의 비를 땅이 흡수하여 생물이 자랄 뿐 아니라 대지 속에 깊이 흐르는 무진장의 지하수가 보이는 강물이나 호수의 물 못지않게 너무 많다고 한다.
언젠가 일본 목사 천도욱랑의 글에서 기억이다.


미국의 로키 산맥에 있는 나고야 삼목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벌써 나이가 이천년이었으니 이제는 4천년을 살아온 나무로서 하루에 지금도 10톤의 물을 빨아들인다고 했다. 4천년동안 수억 톤이 넘는 로키산속의 엄청난 물을 먹었으니 그 나무만 하더라도 땅속에 있는 무진장의 지하수를 먹고 지금도 살아있다고 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한그루 나무에도 끝없이 베풀어 주심에 놀라움을 재삼 금할 수 없다.


3. 주기 위해 오신 예수
하나님께서는 대자연보다 가장 크고 위대한 선물을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것 중 가장 위대한 선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자신을 주기 위해 오셨다. 그의 삶과 사역은 물론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의 생명을 우리와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로 주기 위함이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두려 함이니라”(마20:28) 섬김의 최고는 자신을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요, 나아가 죄인의 친구되기 위하여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하셨고,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려 오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먼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이요 인류를 위해 전폭적으로 그의 속성인 사랑의 동기에서 무조건 주신 삶이었으니 곧 하나님의 지극한 아가페 사랑의 현현이었다. 그의 30년 사생애는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2:51)였다. 공생애 3년은 십자가 달리시며 옷 한 벌마저 로마 병사에게 주시고 태어날 때와 같이 돌아가신 전적 희생과 드림의 삶이셨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살펴보면 먼저 산상수훈으로 천국의 대헌장 메시지를 (마5~7장) 주시고, 끝으로 돌아가시기 전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만찬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최후의 유시를 주신 다락방 강화를 남기시기까지 수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찾아온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여러 가지 귀신들린 자를 맞아 축사로 온전케 하시며, 4~5000명의 굶주린 배를 채우셨고, 여러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바다와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하시며, 바다 위를 걸으시며 베드로를 건져내셨고, 원수와 대적 자들의 모해를 지혜롭게 이기시고, 부활 후에 승천하시기까지 그의 가르침과 사역의 핵심은 바로 사랑을 나타내는 드림으로 표현해 주셨다.


전적 드리려 오신 삶은 최후의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전적 내어 주심의 아가페 사랑의 삶이셨다. 사람은 받기만 좋아하고 주지 않거나, 주고 또 받거나 하지만 예수님은 일평생 주고 베푸신 교훈과 삶으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세계와 인류 역사를 변화시키고 재창조해 가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계속-


/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