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스본 성에 들릴 때 꼭 안내인을 찾아야 한다. 그 이유는 지상에 드러난 여러 시대에 걸친 성의 유적 외에 지하 동굴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역사를 보기 위해서이다.
평소 지하 동굴은 안전과 유물의 보호를 위해 철문과 자물쇠로 잠기어져 있다. 지하를 열수 있는 열쇠는 안내인이 가지고 있기에 방문시 꼭 안내인을 찾아 안내를 받아야 한다. 지하 동굴은 헤스본에 얽힌 역사가 지상뿐 만이 아니라 성 지하에도 잠들어 있음을 알게 하여 준다.
이 지하 유적은 성이 건축되던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과 또 여러 시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문명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시간을 조금 할애한다면 안내인으로의 부터 헤스본 성에 얽힌 초기 청동기 역사 이후로 부터 모세, 다윗, 솔로몬, 비잔틴, 이슬람 움마야 왕조에 이르는 온갖 역사를 다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의 설명 속에 숨겨진 허점들이다.
그의 설명 중 많은 부분이 성경보다는 코란과 이슬람의 전승에 따른 가미된 설명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듣는 모세와 다윗 왕의 이야기 그리고 솔로몬 왕 보물에 대한 이야기는 순례객을 먼 과거의 역사로 이끌어 줄 것이다.
헤스본은 이스라엘에게나 모암과 암몬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지였다. 바라기는 헤스본을 방문 할 때는 꼭 현지 전문가와 함께 이곳을 지키는 안내인으로부터 지역학적 중요성과 헤스본 유적 곳곳에 묻혀진 역사와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
헤스본 성 정상에 올라서면 성의 유적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유적은 다름 아닌 비잔틴 시대의 교회이다. AD 5세기 건물로 추정되는 이 비잔틴 시대의 교회는 주변의 무너진 유적들에 비해 기초를 잘 발굴해 놓았고 또 교회 바닥이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 한 눈에 바실리카 양식의 비잔틴교회임을 알 수 있다.
교회 주변에는 지진에 의해 무너진 교회 원주 기둥과 난간을 떠 밭이었던 전형적인 고린도 양식의 엉겅퀴 잎사귀 조각의 돌 받침들이 널려져 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눈에 띄는 희랍어 글자들은 이곳이 로마와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지역임을 알려 주고 있다. 조그마한 규모의 교회 터이지만 이곳 헤스본이 모세 이후로부터 면면하게 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지닌 곳임을 알게 하여 준다. 당신이 진정으로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면 무너진 교회터 위에 한 번 서 보라. 그러면 무언가 모를 도전이 내부에서 용솟음 칠 것이다.
아모리족속(산골 사람)
아모리 족속은 노아의 계보 중 함의 아들 가나안 자손에서 난 족속이다. 창세기 10장에 나타난 노아 후손의 족보를 살펴보면 “창 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10: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0: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라는 아모리 족속의 족보가 나타난다. BC 2250년 함무라비 때는 바벨론에 살았으며 BC 1400년경에는 팔레스틴과 레바논 베카계곡 평야지대에 살았던 족속이다. 출애굽 당시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지역에 살던 여러 족속과 함께 제거되어야 할 족속이었다. 나중 아모리 족속은 헷 사람(페니키아인)에 의하여 멸망된다.
헤스본 (Heshbon)
헤스본은 모세의 출애굽 당시 아모리 족속 시혼왕이 다스리던 나라의 수도 이었다.
헤스본의 의미는 책략(전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헤스본은 모압, 암몬, 이스라엘 모두에게 중요한 땅이었고 곡창지대였다. 모세의 가나안 입성에서 가장먼저 점령된 지역으로 르우벤지파의 기업이 되는 땅이다.
이병구 선교사
침례교해외선교회(요르단)
ybkjorda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