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의미요법

평상시 자주 들리는 김밥집이 있다. 김밥을 먹으려는데 지갑이 없다. 갑자기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과 걱정이 밀려왔다. 어디서 잃어버렸나? 카드 분실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집에 두고 나왔나? 분명 지갑의 분실을 인식하기 이전에는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지갑이 내 주머니에 없다는 자각으로 염려와 걱정이 생겼다. 그렇다면 현재의 인식으로 생긴 고통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고통을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


빅터 에밀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유태인 차별 정책과 유태인 말살정책으로 모든 것을 빼앗겼다. 그는 유태인 의사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나 나치가 독일의 정권을 잡으면서 직업과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도 포로수용소에 수감 되어 소유물을 다 빼앗겼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결혼반지가 그의 손에 남아 있었다. 반지는 오직 하나 남은 그의 희망이요, 꿈이 되었다.


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삶이 끝나면 이 반지로 사랑을 약속한 자기 아내와 재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었다. 그러나 간수가 그 반지까지 빼앗아갔다. 프랭클에게는 단순히 반지가 아닌 꿈과 희망을 빼앗겼던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가 완전히 좌절 되고 간수에 대한 분노의 감정으로 고통을 받던 순간에 프랭클은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저 무지한 사람들과 포악한 독일제국을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저주하며 미워하며 한 맺힌 가슴으로 살아 갈 것인가? 아직도 나에게는 이것을 결단할 자유는 남아있다. 아직도 나에게는 나의 미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빅터 프랭클이 모든 것을 빼앗긴 순간에 자신의 의지로 고통스런 삶의 의미를 긍정적인 삶의 의미로 전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저주와 미움과 한을 품는다면 자기 인생은 그 때문에 더욱 파괴되어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독일과 자기의 반지를 빼앗아 간 간수를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프랭클은 희생의 의의와 같은 어떤 의의가 발견될 때 고통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것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을 받아도 자식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면 그와 같은 고통은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촌에 사는 70대 노모(老母)가 도시에 사는 아들을 위해 추운 겨울 바닷가에서 힘들게 꼬막을 잡았다. 꼬막을 씻고 삶아 굽은 손과 깨진 손톱으로 까서 양념을 묻혔다. 잡아 온 고등어로는 조림을 하여 정성스레 아들에게 보낼 찬을 준비했다. 노모는 이 맛난 음식은 하나도 입에 안 대고 물에 밥을 말아 김치하고만 저녁을 먹는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왜 이 좋은 음식을 하나도 안 드세요?’ 라고 묻자 아들이 먹을 음식이라며 김치가 왜 이리 맛있는지 모르겠다며 아들을 위해 힘들여 꼬막을 잡을 수 있는 것만이라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 말한다.


인간은 자기가 당하는 고통이 그 고통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스스로 고통을 당할 준비까지 한다. 예수께서는 그 피할 수 없는 자신만이 져야 할 고통을 아셨다. 마태복음 2639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셨다. 어떠한 고통의 의미도 하나님의 사랑의 의() 보다도 더 큰 의미는 없다.


예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이러한 즐거움을 경험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을 도우며 오히려 이분들로 인하여 이러한 사랑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은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

사랑은 스스로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어 하고 스스로 상대방의 종이 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행복에 겨워한다.


그렇게 상대방도 나를 사랑해 서로 사랑하면 서로 하나가 되고 진실된 생명은 지켜진다. 부부가 서로 사랑해 한 몸 됨의 관계가 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온전한 인격이 된다. 온전한 인격이란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랑을 받지 않고 사랑하려는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실제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의 나눔을 경험하는 것에서 체험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진실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된다. 이들은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태복음 510~12)

/박종화 목사 빛과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