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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감동을 따르면 행복하다

행복한 교회 행복 바이러스-49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은 성령하나님이시며 성령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마음에 소원을 일으켜 그 일을 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령의 인도 받는 삶을 살아야 신앙생활이 행복하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필자가 청리교회에 초청을 받고 부임 했을 때는 갓 서른의 젊은 목사였다.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아이 둘의 아빠가 되긴 했지만 얼굴이 동안이어서 나가면 총각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에 한창 오토바이 붐이 일어나서 시골 교회에 목사님들이 오토바이를 많이 타기 시작을 했을 때였다. 그 때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고 부럽기도 했다.

부임해 며칠 지난 어느 날 집사님이 불러서 나갔더니 남자 집사님 두 분이 효성에서 나온 100cc 신형오토바이 한 대를 마당에 세워 놓고 목사님께 드리는 거라며 키를 건네주는 데 생각 밖의 선물에 큰 감동을 받고 기도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30년 전의 일이니 지금으로 하면 승용차를 선물 받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젊은 목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집사님들에게 감동을 주셨는지 새 오토바이를 선물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지금은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오토바이의 감동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오토바이는 저의 자가용이 되어 심방할 때 가족이 외출할 때 부지런히 타고 다녔다. 가족이 외출 할 때는 큰 아이는 앞에 태우고 작은 아이는 가운데 태우고 아내는 뒤에서 내 허리를 꼭 잡고 네 식구가 타고 다녔다.

 먼 곳도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타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잘 타고 다닌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오토바이를 선물 받은 나에게도 큰 감동이 되었지만 오토바이를 선물로 사준 두 분 집사님도 성령님의 감동이 아니었으면 그런 결심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밥 한 그릇도 사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목회자가 그렇겠지만 필자는 목회하면서 성령의 감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려고 귀를 기울인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성령하나님이 마음에 소원 두고 행하게 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실수가 없다. 작은 교회를 목회하면서 목사가 양복 한 벌 사 입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직접 돈 주고 사 입은 양복 중에는 20만 원이 넘는 양복이 거의 없다. 어떤 양복은 인터넷에서 9만 원주고 산 양복도 있는데 목회자는 양복을 자주 입기 때문에 비싼 양복 한 벌 보다는 여러 벌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 벌 값으로 세 벌을 샀는데 사고 나서는 후회하지만 그만큼 제값을 주고 좋은 양복을 사 입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을 따르다보니 목사님들께 양복을 선물 해드리는 기회가 있었다.


울산시내에서 초교파 목회자부부 세미나를 우리가 섬길 때 목사님들 양복을 맞춰 드려야겠다는 소원이 일어나서 성령님의 감동인줄 믿고 순종하기로 마음먹고 사전 예고 없이 부산에서 양복 재단사를 불러서 그날 세미나에오신 목사님들 양복을 한 벌씩 맞춰 드렸을 때 목사님들이 너무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 부부도 기쁘고 매우 감동이었다.


한 번은 울산지방회 목사님들이 울릉도로 수양회를 가시는데 울릉지방 목사님들께 드릴 선물을 울릉도 출신인 필자에게 부탁을 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내 고향 울릉도에서 목회하시는 침례교 목사님들에게 양복 한 벌씩 선물 해드리면 좋겠다는 감동을 받고 재단사를 울릉도까지 보내서 울릉도 목사님들 양복을 열 몇 벌을 맞춰서 택배로 보내드린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일정이 안 맞아 수양회를 가지 못해 목사님들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전화로 인사를 받고 참 행복했었다. 그리고 미국선교사님이 울산에 와서 활동하시던 선교사님 두 분이 계셨는데 그동안 우리가 미국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기만 했으니 우리도 뭔가를 드리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감동이 와서 선교사님 두 분께 양복을 맞춰 드렸더니 체격이 커서 맞는 옷이 없어 기성복 사 입기 어려웠는데 너무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양복을 30여벌 목사님들께 선물하게 됐다. 양복 값을 갚기 위해 차도 팔고 카드도 쓰고 해서 조금 애는 먹었지만 그 때가 아니었으면 평생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따르지 않고 형편 따지고 계산하면 이성적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성령님께서 그런 감동을 주셔서 귀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신앙생활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의 연조가 깊고 성경을 많이 알아도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필자는 교회에서도 행사를 할 때 재정이 필요하면 기도하고 감동이 오면 감동을 따라 드리라고 한다. 그러면 감동이 오는 사람이 순종하고 감동이 와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는 것이 은혜롭고 부담이 없고 복음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우리교회는 회비 내는 기관도 없고 얼마씩을 거두는 것도 하지 않는다. 주보에도 성령님이 감동 주시면 즉시 순종 하는 성도라는 글귀가 항상 적혀 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와 계시고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감동 주시는 대로 순종하면 모든 행사가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성령님의 감동은 부담이 될 수 있어도 순종하고 나면 기쁘고 믿음이 성숙하게 된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면 나는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감동을 준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19~21)


/유병곤 목사 새울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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