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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서 친밀감으로

가정회복-9

목회자와 사모로서, 혹은 교회의 리더로서, 분노의 섣부른 표출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인들 중 누군가 시험을 들었다고 한다면 이는 그나마 자신의 마음 상태에 어느 정도는 책임을 지는 말이다.

이 말은 어찌 보면 갈등을 통해 교회가 든든해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는 사단의 역할도 인지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흔하디 흔한 상처받았다는 말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직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상처를 입힌 가해자가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분노를 겪거나 목격한 성도들이 이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도 종종 있다. 소그룹의 리더와 갈등이 생기고 격한 말이 오가면 그룹원 또한 그 신앙공동체를 떠나기도 한다.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중책을 맡은 리더로서 알지 못하는 사이 누구에겐가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아서라도 우리는 조심하고 참는다. 목회자들이, 목자들이, 교회의 리더들이 화나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다 삭이고 기도로 푸는것을 미덕으로 안다.그런데 이렇게 참고 참은 화가 온데 간 데 없어지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분노가 여과 없이 분출될 때 내 주위 사람들에게 크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하나의 부정적 결과라면, 분노가 내 안으로 스며들 때 오는 결과들도 있다.


억제된 분노가 한 원인이 되어 강박증이 생기기도 한다. 내 감정이 표출될 때 두려워서 주위의 환경들을 제어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흐트러짐없는 완벽한상태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분노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참기만 할 때 무기력감이 오고, 이 무기력감은 우울증으로 깊어지기도 한다.

그 분노의 부정적 에너지가 스스로를 향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잊기 위해 술이나 도박 등으로 도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재된 분노가 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이다.


C양은 어릴 때에 극도로 엄한 어머니 아래 자라났다. 그녀는 어머니를 사랑했고 존경했지만 집에서 짜증을 낸다거나 운다거나 화를 내는 일은 심한 처벌의 이유가 됐다. 늘 어머니가 기대하는 반듯한 행동 외에 부정적 감정과 행동들은 일체 허락되지 않았다. 싱글맘으로 혼자 자녀들을 건사하느라 심신이 피곤한 어머니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정말 착한 아이로 컸다. C양의 절망감, 분노, 슬픔, 외로움 등의 많은 감정들은 그녀 안에 묻혔다. 부정적인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 되는 비밀이 된 것이다. 허락되지 않는 감정을 숨기고 있는 자신이 오히려 나쁜 아이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아이를 낳고서 상담소를 찾은 그녀는 쓸데 없는 일에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종이이든 조금이라도 구겨지면 계속해서 펴야 했다. 운전을 하다가도 다른 운전자에게 화가 난다거나 다른 일 때문에 짜증이 나면, 가던볼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 벽장 청소를 시작했다.

분노가 올라오면 마치 그 감정을 청소하듯 모든 집안의 물건을 다 꺼내 놓고 닦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두려웠다. 허락되지 않은 분노의 감정은 분명 처벌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벌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청소를 했다. 그래서 자신이 막상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들은 뒤로 밀린 채 남아있었다. 집 정리정돈을 시작하면 아이가 울어도 내버려 두었고,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아이에 대한 분노가 생기면 그 죄책감으로 다시 청소를 시작해야 했다.


내재된 분노의 부정적인 결과는 정신적인 데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한국문화에서는 차라리 몸이 아픈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작게는 두통에서 여러 가지 통증, 심장질환, 고혈압, 신경성 질환, 소화계 질환 등등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진다. 크고 작은 병이 없는 목회자들을 찾기도 드문 일이다. 많은 경우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며, 희로애락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는 환경 또한 신체적 질병에 큰 몫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분노도 건강하게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결론인데, 과연 화를 내는 것에 긍정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화를 내면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모두 떠나지 않을까? 분노에 어떤 유익이 있을까?

섣부른 분노의 표출은 분명 관계를 깨지게 하지만, 지혜로운 분노의 표현은 사람과 사람을 더 가깝게 하기도 한다. 내 앞에서 좋은 말, 예쁜 말만 하는 어떤 사람은 딱 그만큼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정말 가까운 사람은 힘든 일, 화나는 일, 섭섭한 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계속 같이 놀다가도 수도 없이 삐지고 화내고 욕하고, 또 다시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어느새 정말 가까워진 것이다. 그들은 진짜 나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진실한 나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상대의 그대로를 받아들인 탄탄한 관계들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C양에게 정직한 감정의 표현들이 허락되었다면 그녀의 어머니는 착하기만 딸대신에 진짜 딸을 얻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혜로운 분노의 표현은 진짜 나를 드러내는 용기 있는 과정 중 하나이다.

건강한 분노의 표현은 진짜 너를 만나는 길일지도 모른다.

 

 /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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