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현실을 이기는 영성

반종원 목사 / 수원교회

스티븐 코비는 그의 책  “원칙중심의 리더십”에서 자기 딸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책을 시작한다.
어느 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 바쁘게 사는 딸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이 키우랴, 직장 생활하랴 몸이 열 개라도 시간이 부족하겠다.’는 것이다. 그때 스티븐 코비는 사랑하는 딸에게 한마디 해준다. “아가야 그러면 이제는 시계를 보지 말고 나침반을 보도록 해라” 신앙의 딜레마는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사이에서의 고민이다.


어떤 때는 신앙과 현실사이에 괴리가 너무 먼 갈등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면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지도 못 할 뿐 아니라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도 없다. 신앙생활의 매력은 현실을 이기는 영성을 지니는데 있다. 성서는 그 답을 분명하고도 명쾌하게 제시해 주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가르치신 기독교의 산상수훈이다. 그리스도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제자도 즉 영적 지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의미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첫째,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는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향을 잃어버려서 혹은 잘 못 잡아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데 반평생, 혹은 어떤 이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방향이 지시하는 인생의 무게는 실로 중요하다. 인생을 풀어 가는 데는 육하원칙의 질문이 중요하다.


그 가운데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바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왜?’의 답이 있어야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방향이 맞다 고 잡았는데, 그 방향을 잘못 된 것을 잡은 것, 그에 대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인생 전체를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방향이 없으면 인생을 설렁설렁이라도 살 것이다.
잘못된 방향을 잡은 줄도 모르고 열심히, 한눈 팔지 않고 달렸는데 그 결론이 꽝일 때, 배신감을 느낄 만큼 허무로 끝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영적 무기와 비방(비책), 즉 영적 무기의 역할을 한다.  
사람은 운명론자이든 아니든 누구나 운명을 믿고 산다. 인생은 내 힘이 아닌 어떤 타자의 절대적 힘에 의해서 이끌려 살아간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절대 힘의 능력인 타자를 누구인지 모른다는데 있다. 그래서 미래의 운명을 두려워하고 불안 해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절대 타자를 잘 안다.


그리고 절대 타자이신 그 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분은 나와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요. 지금도 살아서 다스리시는 섭리의 주시다. 십자가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함께 하시는 분이다. 그분이 말씀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운명은 우리를 늘 불안하게 만고 두려움으로 이끌지만 창조주요 섭리의 주님이신 하나님은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가장 좋은 때를,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섭리하시는 통치와 주권을 믿기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만 이 말씀으로 현실을 이기는 영성으로 삼기위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신앙적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는 ‘그의 나라’ 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만이  흔들이는 세상에서의 답이다. 
둘째는 ‘그의 의’ 즉 하나님의 통치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인생은 안전하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쇠퇴함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먹고 살기위한 생존경쟁일 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영적 싸움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인생의 나침반과 영적 비방을 가지고 현실위에 우뚝 서는 영성의 신앙으로 내공을 다져야한다.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