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설 명절에 집안 사촌 형님 댁에 가서 친동생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을 보게 됐다. 그 아이들 덕분에 난 태어나면서부터 ‘아저씨’였다. 우리 아버지는 17세에 어머님을 만나서 결혼을 하시고 계속해서 자녀가 여러 가지 이유로 성장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는 일을 많이 겪으시다가 누나 셋을 얻고 41세에 나를 얻으셨다.
그렇기에 집안에서 나는 나이가 나보다 많은 조카들이 많았고 아버지같은 큰집 형님들과 겸상을 하곤 했다. 마을 전체가 파평윤씨 집성촌이라서 이런 대접은 동네에서도 ‘대부’, ‘아저씨’로 불려졌고 동네 잔치집의 상석을 앉게 해주고 특별대우를 해 주었다. 단지 대(代)를 이을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어릴 적 우리 집 바로 앞에 사는 사촌 형님 댁에는 아들이 삼형제 있었고 그 아이들은 나를 골목대장으로 받들어서 짓궂은 개구쟁이 시절을 보냈다. 말로는 아저씨라고 부르면서도 형제애를 느끼면서…. 그랬던 아이들이 이제 다 커서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시켜서 절을 받게 되니 시간 참 속절없이 잘 가는거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 아이가 말한다.
“아저씨, 난 뭐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아요. 직장도 중간에 그만 두게 되어서 장사를 했는데 그것도 가게를 세 번이나 바꾸고 그랬는데도 안정이 안 되고 다시 또 뭐를 시작해봐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아 새해가 되어도 기쁘지가 않다는 것이다. 아직 젊고 인생은 실패를 딛고 일어나야 값지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면서 미국에 있다는 ‘실패 박물관’이야기를 했다.
미국 미시간주 애나버에 있는 이 박물관은 아이디어는 기발했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데에 실패했던 7만여 점의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우리가 아는 것도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기도 전에 사라진 상품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색이 없는 콜라인 무색콜라는 처음에는 각광을 받으면서 세상에 등장을 했지만 ‘콜라의 색상은 흙 갈색이 돼야 된다’라는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깨지 못해서 그 박물관에 전시가 되었다.
또 연기가 나지 않는 담배도 있었는데 흡연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 곳 실패박물관의 운영자 로버트 맥레슨은 언젠가 한국을 방문해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실패박물관에 온 제품들은 기업의 신제품 중에서 80%가 실패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실패과정을 정확히 보는 눈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실패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하타무라 요타로 동경대 교수가 남긴 말과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성공기록은 남겨서 공유하고 싶지만 실패 경험은 책임이 두려워 숨기려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반면 실패를 정확하게 보지 못했더라면 놓칠 뻔 했던 음악들이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verdi)가 흥행 참패를 경험하고 오페라 ‘라트라 비아타’의 배우를 바꾸지 않았더라면,
또 베토벤(beethoven)이 최근에 실패했던 피델리오(Fidelio)를 계속해서 수정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혹평을 받고 좌절한 생상스(Saint Saens)앞에 리스트(Liszt)가 나타나서 생상스(Saint Saens)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형식적인 음악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지 않았더라면 음악 애호가들의 선택의 범위는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다.
참 다행인 것은 실수나 좌절의 경험을 인정하고 바꾸어 온 사람들은 영원한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박물관에 전시하듯 자신의 실패나 실수를 당당하게 꺼내서 정확하게 보는 것이 그물을 피하는 바람처럼 또 다른 시작 앞에 당당해질 수 있는 힘을 갖게 할 수 있다. 시작이라는 것이 주는 낯설음과 불편함,
그리고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출발하는 선에 서 있는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건네주고 싶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 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삶을 일깨우는 경구(警句)같은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하라고. “당신이 꿈꾸는 사랑도, 당신이 꿈꾸는 행복도, 우리가 원하는 평화도, 그리고 당신의 성공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