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크신 사랑(새15/통55)
작사: 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 1707-1788)
작곡: 존 준델 (John Zundel, 1815-1882)
수잔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19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중 아홉 명은 아주 어려서 잃었다. 그녀는 살아남은 열 자녀(3남 7녀)를 바르게 교육하려고 힘썼다. 수잔나는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철저한 계획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했다.
자녀들에게 말을 처음 가르칠 때는 주기도문을 따라하게 함으로써 가르쳤고 아이가 정확히 다섯 살이 되는 생일부터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읽게 하는 문장은 창세기 1장 1절이었다.
어머니 수잔나는 자녀들에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속 깊이 새겨 놓았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를 먼저 알게 하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교육이었다.
그렇게 자라난 존과 찰스 웨슬리에 의해 영국에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찰스 웨슬리는 수많은 찬송을 만들어 영국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고, 존 웨슬리는 전례 없는 설교사역으로 영국을 새롭게 했다. 감리교를 만들어 영적부흥을 일으킨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그들의 영향은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웨슬리 형제가 그러한 삶을 산 데에는 어머니 수잔나의 영향이 아주 컸다.
수잔나 웨슬리의 자녀양육 방법
쪾항상 규칙적인 계획에 따라 생활하게 했다.
쪾주기도문을 가르쳐 잠잘 때와 깰 때에 외우게 했다.
쪾성경구절과 교리문답을 외우게 했다.
쪾가족 기도회에 참여하도록 했다.
쪾주일을 다른 날과 구분하여 지키도록 했다.
쪾경어를 쓰게 하고 속된 말을 못하도록 했다.
쪾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하는 것을 금했다.
쪾매일 6시간 학습을 하도록 했다.
쪾글을 읽기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쪾거짓말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고 엄하게 다스렸다.
쪾잘못한 것을 정직하게 고백하면 용서했다.
쪾잘못한 언행에 대하여는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쪾잘한 일은 반드시 칭찬했다.
쪾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남의 것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
쪾약속은 반드시 지키게 했다.
쪾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을 금했다.
쪾저주와 맹세 그리고 무례한 말을 금했다.
찰스 웨슬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8,989편의 종교시를 썼다. 날마다 한 편씩 쓴다면 약 25년 동안 써야하는 엄청난 양이다. 그가 회심한 후 50년을 살았으니 죽는 날까지 이틀에 한 편의 시를 지은 것이다. 그는 병들었을 때도, 감사할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시를 썼다. 이 얼마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가. 웨슬리는 자신이 지은 가사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오로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흠뻑 빠져있었다. 길을 가다가도 심지어 결혼식을 올리는 중에도 찬송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웨슬리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찬송이 그가 지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새15)이다. 그 당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찬송이 드물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관심을 끌었던 이 찬송은 ‘성화의 경험을 통한 성도의 완성’이라는 웨슬리의 교리를 제시한다.
이 찬송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을 구원하게 하신 성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한다. 특히 성령의 감화를 간절히 구하는데 그 자신이 체험하는 신앙을 갈구했던 것이 드러난다. 처음과 끝이 되셔서 우리의 일생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힘입어 영광과 경배 드리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단 한 번의 호흡조차 할 수 없는 우리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항상 흘러 넘쳐야 한다.
웨슬리는 복음으로 가득 찬 “만 입이 내게 있으면”(새23), “오랫동안 기다리던”(새105) 등을 썼다. 또한 주관적 경험을 강조하여 회개, 신앙강화, 영적부흥의 찬송인 “웬일인가 내 형제여”(새522), “천부여 의지 없어서”(새280), “나 맡은 본분은”(새595) 등을 남기고 있다. 한국 찬송가책에는 그의 찬송 13편이 실려 있다.
찬송곡조는 존 준델이 작곡했다. 독일에서 음악공부를 마친 준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밴드 마스터와 오르간 연주자로 7년 동안 일한 후 32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에 정착한 그는 브루클린 ‘플리머스회중교회’의 헨리 비처(Henry Beecher) 목사를 도와 28년 동안 오르간 연주자로 섬겼다. 준델은 비처 목사를 존경하여 곡명을 ‘비처’(BEECHER)로 지었다.
1.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에서 내리사, 우리 맘에 항상 계셔 온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는 자비하사 사랑 무한하시니, 두려워서 떠는 자를 구원하여 주소서
2. 걱정근심 많은 자를 성령감화 하시며, 복과 은혜 사랑 받아 평안하게 하소서
첨과 끝이 되신 주님 항상 인도하셔서, 마귀유혹 받는 것을 속히 끊게 하소서
3. 전능하신 아버지여 주의 능력 주시고, 우리 맘에 임하셔서 떠나가지 마소서
주께 영광 항상 돌려 천사처럼 섬기며, 주의 사랑 영영토록 찬송하게 하소서
4. 우리들이 거듭나서 흠이 없게 하시고, 주의 크신 구원 받아 온전하게 하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 크신 사랑 감격하여 경배하게 하소서
/ 김남수 교수 침신대 교회음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