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 부처의 장차관을 임명하는 일들로 연일 시끌벅적하다.
청문회를 통해 공개되는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이 참으로 가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록이동색이기는 장관 후보자들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감싸기와 비판으로 서로 날을 세우는 여야 정치권도 오십보백보다. 협치와 소통을 내세우며 이미지정치와 감성정치로 시작한 새 정부는 어느새 불치, 불통의 이미지로 얼룩져가고 있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인사원칙 5대 공약, 즉 병역기피, 세금탈류,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위장전입자는 인사에서 배제하겠다며 스스로 깨끗한 도덕적 정부를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위장전입, 세금 탈류,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인사들 투성이다. 거기에다 음주운전 등 사회의 고질적인 인사들도 있다.
그 중에는 비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장관 지명을 사퇴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당당하게(?) 인사권자의 임명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또한 검증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대부분 인지했지만 국민감정 보다 자기 사람들 챙기기 같은 모습 또는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의한 뚝심(?)을 보이면서까지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비난이 누그러지기만을 기다리다 임명하려는 하책을 궁리하는 듯하다.
이같은 행태는 능력이 있으면 됐지 뭐가 문제냐는 심히 왜곡된 의식이 적극적으로 표현된 결과일 것이다. 또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인사의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함에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는 것은 왜곡된 사고의 고착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비록 지지자가 아닐지라도 흠을 잡으면 끝없다며 어느 누구든 들추면 다 그와 같다며 빨리 임명해 일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나라가 안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만 잘하면 되지, 능력만 있으면 되지, 국가를 잘 경영하고 국민을 잘 살게 해 주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심각한 허물을 못 본 척, 모른 척 무시한다. 도덕성이 뭐 그리 중요한가, 능력만 있으면, 그가 어떠했든 일만 잘하면 되지 라는 병든 생각이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아 가는듯한 것은 결국 이 사회를 불행한 사회, 불행한 인간이 되게 하는 단초가 된다. 절대적 가치를 무력화시키고 상대적 가치를 도리어 절대화 하는 순간, 인간은 최하류의 삶을 사는 저질적 존재가 된다.
능력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도덕성을 능가할 수는 없다. 일자무식한 사람이 보아도 많은 부분 논문표절이 당시 관례였다고 자기 합리화시키는 사람이 관계된 부처의 장관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라는 보편성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양심이다. 그 아무리 관행이었다 할지라도 잘못된 관행이었다면 하지 말았어야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성보다 능력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작은 불행의 시작이다. 결국 인간 스스로 가치적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장차관이 아니더라도 어느 집단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능력만 중시하고 도덕성이 무시되거나 상실된다면 그 자체가 이미 리더십을 상실한 것이다. 이러한 현재의 실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은 어떠한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능력과 도덕성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그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대선 기간 중 조사한 차기 지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에서 목회자와 성도 모두 정직과 도덕성이 49.0, 51.8%로 강력한 지도력보다 배 이상 더 높게 나타났다.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으나 능력과 도덕성 중 도덕성이 반드시 우선돼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다 하여도 그의 모든 행동과 삶을 결정할 수 있는 도덕성이 떨어진다면 그는 어떤 집단이든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도덕성을 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말한다면 거룩일 것이다. 거룩은 사실상 도덕과 능력을 초월한다. 거룩성 속에 도덕성이 있다. 세상의 풍조가 어떻게 변하든 교회와 성도는 거룩해야 한다. 거룩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은 능력중심으로 흐를 때에도 교회와 성도는 거룩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은 능력의 사람이 아닌 거룩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세상이 능력사회로 변한다 하여도 교회와 성도는 도덕과 정직성, 즉 거룩한 영역으로 남아야 하며, 이러한 영역, 즉 거룩한 삶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밖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나간 세상에서 그 어떤 유혹에도 우리 스스로 거룩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의 교회와 성도들에서 거룩성이 약화되고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서서히 일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교회가 직분자를 세울 때도 이러한 경향들이 보인다.
거룩성 보다는 그가 가진 사회적, 신분적, 경제적 능력이 기준이 되어 세움 받는 일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비성경적이며 세속화된 타락이며 변질이다. 도덕성이 무시되고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풍조를 최소화 하거나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어디이며 누구인가? 교회와 성도들이다.
성도의 진정한 품격인 거룩이다. 만약 거룩을 잃는다면 교회와 성도는 그리 오래지 않은 날 세상에 종속된 존재로 아무 가치가 없는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말 것이다. 세상모두가 능력이 도덕성보다 능력이라 말해도 교회와 성도는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교회와 성도가 사는 길이고 나아가 세상이 진정으로 사는 길이다.
계인철 목사 / 광천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