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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색시 바의 ''횃대보'

철없던 시절 엉뚱한 생각을 했던 날들이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웃는 일이 있다

초등학교 4~5학년으로 기억된다. 어느 따듯한 봄날 우리 대문에서 건너다보이는 친구네 형한테 새색시가 시집을 왔다. 호기심 많던 나는 친구네 집에 새색시 보러 자주 놀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활짝 열려있는 방 문안으로 예쁘게 꾸며진 새색시 방안을 보게 되었는데 참으로 예쁘고 좋아보였다. 무엇보다도 벽에 걸려있는 횃대보가 얼마나 예쁘던지. 하얀 천에 예쁘게 수놓아진 횃대보가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찾아온 엉뚱한 생각, ‘장가가고 싶다!’ ‘빨리 장가가서 내 방에도 횃대보가 걸려있는 방을 갖고 싶다는 없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며칠 후 집에서 키우는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던 날, 아버지는 뜬금없이 이 송아지는 네 장가밑천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잘 키우라고 하셨다. 물론 아버지는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었지만 어린마음에도 장가밑천이라는 말씀이 싫지 않았다. 그날부터 학교에서 오면 언제나 송아지를 관심 있게 돌봤고 여름이면 들에 나가 열심히 소먹이를 베어다 주곤 했다. 송아지는 잘 자라서 어미 소만큼 컸고 살찌워서 등에서 윤기 나는 기름진 소가 됐다. 소를 몰고 풀 뜯으러 가다가 동네 어른들이 보시면 소 잘 키웠다고 칭찬을 하곤 하시면서 부지런히 키워서 장가가라고 하시곤 했는데 그 소리가 듣기 싫지도 않고 장가애기를 해도 조금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 후 초등학교를 마치고 읍내에 나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장가 밑천인 소를 아버지가 키우게 되었고 주말이나 방학 때만 내가 꼴을 베어다 주고 여물을 먹이는 일을 했다. 이제는 송아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큰 소가 되었다. 아버지는 소가 다 컸으니까 색시만 있으면 장가가도 되겠다고 하시면서 색싯감을 찾아보라고 하시면서 웃으시곤 하셨다. 그런데 이듬해 가을 어느 주말에 집에를 가보니 마구간에 있어야 할 송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송아지 어디에 있어요?” “어제 소 장사한테 팔았다.” “왜요, 내 소잖아요?”

그래, 내가 그 돈 잘 보관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나중에 알고 보니 농사하느라 조합에서 빌린 돈을 갚느라고 팔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믿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후 학교 공부가 많아지면서 장가 밑천은 잊어버리고 지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신학도가 됐다. 그 후 군대도 다녀왔고 남들보다 먼저 색시도 만나 장가도 갔다. 신학생으로 수입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결혼식을 검소하게 했고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러해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병석에서 농담처럼 하셨던 말씀, “네 장가 밑천을 갚아 줬어야 하는데미안 하구나.”


이제 나는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 몸 된 한 교회를 33년째 섬기는 목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목자의 문화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외국에 여행길에 몇 번 목장을 들러본 경험이 전부이다. 그러나 나에게 익숙한 경험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소를 산으로 데리고 가서 풀을 먹이던 일은 익숙하다. 풀을 먹이고 돌아오는 길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물을 먹이던 일, 벌컥 벌컥 시원스럽게 잘도 먹었는데.


소는 어떤 꼴을 좋아하고 어떤 꼴을 먹어야 잘 자라며 살찌는지를 몸으로 체험했다. 그래서 좋은 꼴이 있는 곳을 찾아서 소를 데리고 다녔고 부지런히 꼴을 베어다가 배불리 먹였다. 정말 우리 동네에서 제일 살찐 소는 내가 키우던 내 장가 밑천 암송아지였다. 때로는 송아지를 몰고 가다가 잠깐 방심한 사이 남의 밭에 들어가 곡식을 못 쓰게 만들어 놔서 야단을 맞은 기억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운 추억이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27:23)


올해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으로 주셨다. 또한 들 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6:6)는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장가 밑천보다 더 좋은 목회 밑천을 주신 아버지가 참 좋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려서부터 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주셨고 부지런히 좋은 꼴이 있는 산과 들을 찾아 소를 키우게 하셨던 나의 아버지는 참으로 큰 목회의 밑천을 주셨다. 나는 한 주일에 하루를 택하여 요즘 심방을 한다. 주로 결석자와 연약한 성도를 돌보는 일을 한다. 양떼의 형편을 살피며 소떼에게 마음을 둔 목자의 심정으로.


아버지 장가 밑천 안 주셨다고 미안해 마세요. 아버지는 이 아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목회의 밑천을 주셨습니다.”오늘도 좋은 꼴을 찾아 내 사랑하는 목장에서 양떼들의 형편을 살피리라. 꼴이 없어 우는 양떼가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성도들의 가정마다 횃대보처진 아름답고 향기 나는 가정이기를 기도한다.


반종원 목사 / 수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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