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작은 감사의 큰 힘

가정회복-15

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교육방송의 한 라디오 DJ의 멘트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날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큰 집을 사서 자기 방을 가졌을 때라던가, 오래 바라던 큰 선물을 받았던 때가 아니었다. 나름 호사스런 여행을 갔던 기억도 아니고 뭔가 큰일을 이루어서 상을 받았던 순간도 아니다. 그녀는 가끔 언니와 자신을 데리고 나가 과자나 초콜릿 등을 사도록 허락해준 아빠와의 미니 데이트를 떠올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두 딸을 데리고 마켓에 가서 먹고 싶은 스낵들을 고르도록 해준 뒤에 주일마다 달달한 군것질을 실컷 하도록 허락해 주셨단다.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버지와 장을 보러갔던 그 특별한 기억들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은 엄청나게 큰 어떤 사건이나 소유물이 아니다. 눈부시게 찬란했던 것은 한 평범한 날의 햇살이나 뛰어 놀던 마당의 흙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환한 웃음이 유독 기분 좋았다거나 깔깔거리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자신을 웃음 짓게 했던 기억들이다. 우리는 별 것도 아닌 줄 알았던 그 작은 일들을 생각하며 행복했던 순간으로 떠올린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바라는 것들을 얻기만 하면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믿고 산다. 더 나은 직장을 얻으면, 자녀가 내가 바라는 대학에만 들어가 주면, 돈을 조금만 더 벌면, 교회가 조금만 더 성장하면 행복해질 것 같다. 혹은 나를 지금 불편하게 하는 그 누군가만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지지리도 속을 썩이는 그 사람만 변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 지리라 믿는다. 목사님이 조금만 더 자상하면, 사모가 조금만 더 기도하면, 성도가 조금만 더 성숙하면 우리의 믿음 공동체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한다. 상담소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조금만 더가 이루어지지 않아 고통 받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 찬란하게 빛나는 행복의 순간들을 놓치고 산다.


상담소를 찾아온 B씨는 자기에겐 믿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어릴 때 이혼하신 부모님은 도통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단다. 재혼한 어머니와 살던 그는 새아버지의 눈치 보기 바쁜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새아버지에게 너는 세상에 쓸모없는 자식이라는 욕설을 몇 번 듣고는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 자신이 얼마나 쓸모없는 인간인가 증명하겠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트럭을 운전하던 생부는 늘 멀리 어딘가에서 일만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믿을 것은 자신뿐이라고 굳게 믿고, 자신을 받아들여준 갱단을 집과 가족으로 삼았다. 차곡차곡 마약과 폭력에 관련된 전과를 쌓아갔다. 감옥을 들락날락하며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정말 쓸모없이 인생을 허비해왔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마약을 팔며 낭비한 돈은 간데없고 빈주머니와 전과기록만 남았다.


돈이 떨어지고 경찰들의 집중 단속 대상이 되자 믿었던 친구들도 떠나갔다. 아무 것도, 어느 누구도 곁에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그는 자신을 그 위험 속에서도 보호하셨던 하나님을 만난다. 전과로 인해 취직의 길이 모두 막히고 새로운 삶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던 그 때에, 그는 자신의 걱정으로 마르지 않던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를 보았다. 자신을 야단하며 어른 공경하기를 가르치려고 애쓰던 새아버지조차 밉지만은 않았다. 평생 장거리 운전을 하며 일해오신 아버지의 성실함이 새삼스러웠다.

B씨는 자신에게 없던 것을 불평하고 분노하는데 지쳤다고 말한다. 그러자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축복들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늘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니를 뵈러 다니기 시작했다. 성실히 일해 오셨던 아버지에게 운전과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담과 더불어 직업교육소에 등록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이 있다는 별것도 아닌 평범한 사실이 이제 그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됐다. 그의 인생은 자신에게 있는 작은 것들을 깨닫고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워졌다.

많은 상담의 모델들이 강조하는 것이 “Here and Now(여기, 지금)”의 개념이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상처와 충격에 얽매어 헤어나지 못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들에게 과거와 미래가 아닌 오늘 이 순간에 집중하도록 도전한다. 지금 이 순간에 내쉬는 한숨,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 한걸음 내딛을 때 나를 받치는 땅의 감촉, 오늘 점심으로 한 입 베어 문 빵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 등을 느껴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지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 보길 권하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이미 둘러싼 축복과 은혜를 느끼고 깨닫기 시작한다.

얼마 전 아프셔서 투병 중이신 부모님의 병실을 찾았을 때, 말기 암에도 불구하고 한 달만 더 살 수 있기를 기도하거나, 재활을 통해 한 걸음만 더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을 보았다. 옆에서 눈물짓고 가슴 아파하는 가족들과 한 번만 더 일어서 걸어보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아내들, 남편들에게, 기적이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것뿐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이가 겨울을 지나고 봄에 피는 꽃을 보게 되는 것뿐이다.


어쩌면 나머지 우리는 지금 그 기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순간, 우리가 어떤 기적을 누리고 있는지.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새삼 우리에게 부어주신 주님의 은혜와 공급하심을 돌아보고 감사를 드린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 18)”는 하나님의 뜻을 되새긴다. 평소에 자꾸 까먹는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시고, 일 년에 한번이라도 감사를 표현하도록 돕는 절기이다. “Here and Now”라는 정신건강의 개념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알려주신 힌트이다. 이미 우리 앞에 오늘 부어진 축복을 찾아내고 감사하는 것은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항상” “범사는 오늘 시작한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누군가, 평범한 그 무엇에게서 시작한다. 지금 발견하는 작은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경배이자, 우리를 소생시키는 최상의 치료법이다.


심연희 사모 /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