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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훔치시렵니까?

내가 한국인으로 모국어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말은 우리 역사와 문화, 관습, 그리고 우리 전통들을 송두리째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민족의 의식세계에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민족들이 수천 년을 그 땅에서 살아오면서 민초들이 만들어낸 속담들이야말로 그 민족성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 한민족이 사용해온 속담가운데는 아름다운 속담들도 많이 있지만 내가 인생의 여정을 살다 느낀 것은 어떤 속담들은 이것들은 우리 속담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우리 사회 곳곳에는 오늘도 아니 땐 굴뚝에서 시커먼 거짓 프로파간다의 연기가 무럭무럭 피워 올라서 무수한 생사람들을 잡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옷깃 한번 스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소리들이 도처에서 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종류들의 어처구니없는 속담들을 오늘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 가운데서 내게 가장 공감되지 않는 속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된다.”는 속담이다. 이 속담은 아마도 과정이야 어떠하든지 결과만 좋으면 성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결과만의 성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대접받는 모순된 우리 사회를 만들지 않았을까?

이 속담에 대척점에 있는 서양 속담이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랴?”라는 속담일 것이다. 이 속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결과 위주의 사고(思考)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아닐까?

우리 속담에 또 하나의 결과주의를 생각하게 하는 속담이 있는데 개같이 벌어도 정승같이 쓰면 된다.”는 속담은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속담까지 더해보면 우리는 과정이야 어떻던 깡그리 무시되어도 결과만 좋다면 하는 깊은 유혹을 받게 된다. 이것이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과정은 무시되고, 우리가 지금 남의 촛불을 훔치고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촛불을 훔치는 일이 마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가 고3때 일이다. 대학에 원서를 내야 하는데 가려고 하는 대학과 특히 그 과의 지원서에는 사회봉사, 시상경력, 학생부, 자기소개 등이 하나라도 더 많아야 하는 과다 보니, 서울 강남 8학군에 다니는 아이들은 적개는 수백만 원 많게는 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액과외비를 주고 자기 소개서를 쓰는 법을 배운다는 소문이 정설같이 나도니 지방 그것도 면단위에 있는 시골교회 목사 아빠는 염려스럽고 미안하기만 했다. 마침 지방지검찰청에서 중고등학교 범죄예방 강사로 위촉을 받아 같이 강사로 다니던 고등학교교장출신의 선생님이 자기가 1년에 중고등학생 1명에게 도지사 봉사 표창을 받을 수 있게 추천할 권한이 있으니 목사님 자제분을 주말에 자기 사무실에 세 시간만 보내주시면 도지사 봉사 표창을 받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니, 교장 선생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 제가 목사님 자제를 돕지 않으면 누구를 돕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얼마나 고맙던지, 그날 밤 11시에 귀가한 아이가 잠시 씻고 간식을 먹고 있는데 아주 자랑스럽게 너 이번 토요일 오후에 좀 일찍 하교해서 OOO선생님 사무실로 가서 세 시간만 있다와 그러면 선생님이 너에게 봉사 상으로 도지사 표창장을 받게 해주겠다고 그러셔발 넓고 능력 있는 아빠 모습으로 우쭐하게 말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나를 한참을 보고 있더니 지금 말씀하고 있는 분이 우리 아빠가 맞으세요?

저보고 그런 방법으로 상을 받아서 대학을 들어가라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꿈꿔온 대학이고 과지만 저는 그런 방법으로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제가 어찌 그런 방법으로 상을 받고 내 프로필에 그것을 기록할 수 있겠어요? 저는 못합니다.”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내가 못 보일 꼴을 보였구나. 아이에게 내가 촛불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생전 처음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미안하다고 빌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아이는 지역 B.B.S사무실을 찾아가서 수기로 기록해 놓은 모든 서류들을 고3 그 짧은 여름방학을 쉬지도 못하고 타이핑하면서 보냈고 그 결과를 프로필에 기록했다.

지금도 가끔은 그 아이가 촛불을 훔치려 했던 아빠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몹시 궁금하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처절하게 경쟁하는 자식일수록 뭔가 돕고 싶은 것이 부모들이 가진 인지상정일 것이다.

목회나 자식 키우는 일이나 촛불을 훔치고 싶은 유혹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 아이는 목적을 위해 촛불을 훔치지 않고도 정정당당하게 가고 싶은 대학과 그 과에 들어가서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더 큰 시험을 통과해서 이 나라의 법조인으로 하나님과 국가를 섬기고 있다. 우리 아이가 지금 법조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든든한 것은 열여덟 어린 소녀가 촛불을 훔치려는 목사 아빠의 양심을 일깨워주며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 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저 아이는 하나님의 눈으로 정의를 바라보며 지켜 나가리라는 기대를 가진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다는 핑계로 얼마나 쉽게 그리고 비판 없이 마치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으로 착각하며 스스럼없이 촛불을 훔치지는 않는지? 촛불을 훔치는 일이 일상화 된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는 비록 목적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촛불만은 결코 훔치지 말았으면 한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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