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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인질외교’라는 마약에 중독된 북한정권

정교진 박사의 북한보기-10

지난주 어떤 목사님께 문의드릴 있어 문자로 대화하게 됐는데, 필자가 북한학자라고 하니까 대뜸 북한에 억류되어있는 김정욱 선교사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전도했던 친구라고 마음 아파하셨다.

김정욱 선교사는 북한에 억류 된지 벌써 4년째이다. 201310월 북한에 억류된 그는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불법국경출입죄’, ‘파괴암해죄등의 혐의로 무기징역(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 혐의 중 불법국경출입죄항목에 대해서 이윤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정보기관 관계자를 통해 김 선교사가 직접 북한에 밀입국해 체포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단둥의 모처에서 체포됐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에게 암묵적으로 국경지역의 혐의자를 체포하고 이송하는 문제에 눈을 감아주는 분위기란다. 20093월 한국계 미국인 기자 유나 리와 중국계 기자 로라 링의 체포 장소도 중국 땅이었다. 이들은 취재 도중 국경을 넘게 됐고 곧바로 인지하고 돌아왔지만 북한 국경경비대는 중국 땅에 진입해 그들을 체포해 갔다. 이 두 여기자는 6개월 억류되었고 형법 제69조선민족적대죄및 형법 제233비법국경출입죄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했고 북한은 곧바로 이 두 기자를 특별사면했다. 국내 국적을 가진 김정욱 선교사는 여전히 북한에 억류 중에 있다.


김 선교사 외에 현재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은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201410, 12), 북한이탈주민 고현철(20167)2명의 북한출신을 포함하면 5명이다.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도 김정욱 선교사와 같은 죄목으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달리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인가? 정부 나름대로는 2015년 남북 당국회담에서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가족의 편지를 억류자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북한은 완강히 거부했다. 이처럼, 가장 큰 난제는 북한이 미국과 달리 남한을 상대로는 인질외교를 할 마음이 없다는데 있다. 아직까지는 북한의 인질외교의 대상은 미국에만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딜레마이다

 

북한정권은 김일성부터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정상정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방법으로 외교수단을 삼고 있는데, 바로 인질외교이다. 인질외교는 핵과 미사일 협상에 이은 제3의 외교 수단으로 줄곧 작동되어 왔다. 그 주된 대상 국가는 앞에서 말한 미국이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처음 인질외교를 한 시점은 한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첫 번째 사례이면서 인질외교의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 바로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다. 북한은 1968123일 북한영해에 들어온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원산항으로 나포했다.


미국은 즉각 공군에 비상출격 대기령을 내리고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원산 근해에 급파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 당시 미국은 월남전에 깊이 개입되어 어려움을 겪었고 국내외의 반전 여론으로부터 큰 압력을 받고 있었을 때였다. 이런 정황을 짐작한 북한은 82(장교6, 수병75, 민간인 2, 1명 나포시 사망)의 승무원들을 1년간 억류하며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벌였다. 결국 미국은 한국의 반발을 무릎쓰고 판문점에서 북한과 비밀접촉에 나섰고 28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19681223일에 승무원 82명과 사체 1구를 판문점을 통해 돌려받았다.


푸에블로호 함장 푸커 소령은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북한 영해 침범 시인과 사과, 그리고 다시는 영해 침범을 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까지 했다. 북한의 완승이다. 미국은 선체와 장비까지 북한에 몰수당했으며 북한은 이 선체를 대동강 가에 전시(1994년부터)해놓고 미국에 대한 대표적인 승리의 표상물로 지금까지 삼고 있다.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1968년은 김일성의 일인독재가 구축되던 시점이었고, 이 사건은 미제국주의를 타도했다는 체제선전물로는 가장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 및 협상은 이후 북한 인질외교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이후 약 20년이 흐른 1994년 김일성 사망과 고난의 행군으로 위태로운 체제를 이어가던 김정일 정권은 훈련 중 실수로 분계선을 넘어온 미군의 헬기를 격추, 탑승했던 미국 군인, 데이비드 힐레먼 준위는 그 자리에서 전사했으며 보비 홀 준위는 생포되어 13일 억류당했다. 북한은 격추된 미군의 현 상태에 대한 정보를 무기로 대미인질협상을 다시 시작했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의 장성급 대화를 수용했고 사건 발생 5일 만에 사망한 준위의 시신을 인도받았지만 보비홀 준위의 송환은 거부당했다.


1226일 북한은 미국에 차관보급 인사를 파견해주면 조종사 송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서한을 보내면서 군법에 따르는 조사를 계속할 것이며 미국의 가해자로서 인정 및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은 1228일 토머스허바드 국무부부차관보를 특사 파견했지만 공식적인 사과는 거부했다. 그러자 북한은 보비홀 준위의 자필 자백서를 공개했다. 결국 미국은 30일에 재발방지 및 유감표현 수준의 사과에 합의하게 됐고 보비 홀 준위는 미국 측에 양도됐다. 여기에서 북한은 다시금 최강대국인 미국을 요리했다는 쾌감을 느끼며 인질외교라는 마약에 흠뻑 취했을 것이다. 환각상태를 경험한 김정일 정권은 1996년에는 에번 헌지커가 4개월 억류됐고, 미국은 빌리처드슨 하원의원을 특사 파견했다.


2009년에는 2명의 여기자 로라 링과 유나 리가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고 미국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 파견해 두 기자는 특별사면됐다. 2010년에는 아이잘론 말리 곰즈가 7개월 억류, 8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으며, 미국은 지미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 파견했다. 2011년에는 전용수 선교사를 6개월간 억류, 미국의 로버트 킹 인권특사를 통해 석방됐다. 같은해 북한에 체포된 케네스 배 선교사는 2년간 억류됐으며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은 제임스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을 특사 파견하였고 북한은 그를 석방시켜줬다. 이처럼, 김정일 정권 후반기에는 대미 인질외교라는 마약 중독에 빠졌던 것이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서는 중독에서 벗어난 듯싶었다. 2013년 북한에 체포된 메릴 에드워드 뉴먼(한국전 참가자)40일 억류되다가 재판도 받지 않고 특사파견 없이 석방됐다. 같은 해 북한에 체포된 제프리 파울 선교사도 6개월 억류됐지만 재판을 받지 않고 특사파견 없이 석방되었다. 그런데, 2014년부터 다시금 중독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북핵문제에 큰 진전이 없는 사이, 미국인 억류 및 인질외교가 김정은 정권하에서도 중요한 대미 압박수단이 됐던 것이다.


2014년 북한에 체포된 매튜 토드 밀러(영어강사)7개월간 억류, 형법 제64조 간첩죄로 6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김정은 정권도 다시금 인질외교를 펼쳤고 미국은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을 특사파견 했다.

결국, 김정은도 미국인 억류를 통한 인질외교를 고착된 북미관계를 변화시키는 중대 전환점으로 이용하고자했다. 또한, 북한주민들에게 반미의 유용성, 실효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또 다른 깊은 속내는 바로 통미봉남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201612일 북한에서 연행되어 15년 노동교화형 선고를 받았던 오토 웜비어가 한달 전인 613, 구금된 지 15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석방됐다가 미국에서 6일 만에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트럼프 미대통령은 북한을 야만스러운 정권이라고 분노했으며 모든 미국국민들이 비분강개했다. 그러나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여전히 북한에 3명의 미국인이 억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점차 이들 억류자들을 위해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인질외교를 끊을 수 없는 환각제인 것이다. 하지만 마약중독의 끝은 파멸이다. 북한정권은 점점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환각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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