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심리학 혹은 상담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몸과 마음의 안녕 및 관계의 문제를 포함한 영혼의 돌봄은 실질적으로 교회 혹은 신앙 공동체가 담당한 중요한 기능의 하나였다. 하지만 교회나 지도자들의 돌봄 혹은 상담이 교조적이고 경직된 인간이해 및 접근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서양의 과학적 사고와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 19세기와 20세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인간이해와 돌봄의 축이 기독교적 관점과 접근으로부터 비기독교적 혹은 일반적인 관점과 접근으로 크게 이동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 사고와 방법론으로 무장한 사람들 중에서 인간의 영적인 측면을 부인하거나 그러한 관점과 접근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자신들의 방식이 인간이해나 현상에 대해 더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는 관점과 접근이 급속하게 확장됐다.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종교를 ‘약자들의 망상이나 도피처’처럼 봤으며, 그를 비롯한 많은 정신분석가들은 죄에 대한 유대-기독교의 메시지가 각종 심리장애의 발발에 기여한다고 인식했다. 스키너(B. F. Skinner)와 같은 심리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초월적인 것보다 관찰 가능한 행동을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 로저스(Carl Rogers)와 그의 동료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경직되고 교조적인 인간이해와 태도에 반발해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기대를 반영한 인간중심상담 접근을 강조했다.

이러한 인식과 접근은, 1960년대에 필립 리프(Philip Rieff)가 지적한 대로, 급속하게 기독교적 인간이해와 돌봄접근을 대체하며 가히 ‘심리학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심리학이 사람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 자리잡기 시작했었고, 오늘날에는 상담심리학적 관점으로 인간이나 문제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확장됐다. 이것은 비기독인들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그 한 예로, 인간의 내면역동에 관심을 둔 임상목회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 접근이 등장하면서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영성초점이 급격히 과학적 심리학 혹은 그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기울어지게 됐다. 많은 크리스천 상담 전문가들이나 사역자들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성서적 이해와 상관없이 일반적인 심리학적 인간이해나 상담접근을 따르게 된 것이다.

물론 심리학이나 상담학의 영역에 인간의 영성이나 초월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담심리가 발달하는 초기부터 이미 언급되기 시작했다. 프로이드와 동시대를 살았던 칼 융(Carl Jung)이 이미 영적 영역이나 초월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고, 지난 세기 내내 다양한 전문가들에 의해 인간의 실존 및 영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도 인간의 전인성과 다면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강화되면서 영성에 대한 내용과 기능적 역할에 대해, 나아가 심리학 혹은 상담에서의 통합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은 ‘인간이해’와 ‘영성’을 주로 심리학적 차원이나 실존적인 맥락에서 혹은 어떤 가치나 우주적 힘, 종교성, 초월성이라는 ‘개념’과 연결한 것이 주류를 이뤘다. 성서적 인간이해에 대한 고려나 통합 없이 종교적 혹은 실존적 영성이 어떻게 인간의 심리적 기능에 영향을 주는 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좁혀 말하면,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 나라’ 메시지는 인간의 정체성과 영성적 차원 이해에 필수적인데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는 찾기 어렵다. 이에 연구자는 본 소고를 통해 성서적 및 심리학적 관점이 통합된 인간이해를 점검하고, 영성초점 상담접근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크리스천 인간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정체성의 문제는 심리학 혹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영역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고 기능하는지에 대한 인식에 따라 사람의 말이나 행동, 감정이나 사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제반 상황이나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 혹은 상담적 접근을 하는데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담심리의 제반 이론들이나 접근들은 인간이해에 대한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 원인을 찾는 장기적 상담접근이나 강점과 자원을 찾는 긍정심리학, 그리고 최근의 단기적 상담 접근 등은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 한 예로, 프로이드는 인간내면을 기본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했다. 즉, 원자아(id)와 자아(ego), 초자아(super ego)가 그것이다. ‘원자아’는 무의식적이고 인간의 본능적 측면을 다루는 영역이다. 이에 비해 자아는 의식적이고 현재적인 사고와 판단의 기능을 하는 부분이다. 초자아는 자아의 의식적인 차원을 넘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내용, 나아가 초자연적인 부분과 연결된 것으로 본다. 교류분석을 제창한 에릭 번(Eric Berne)은 이와 유사하게 인간의 내면에 어린이 자아, 어른 자아, 어버이 자아 등 세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어린이 자아는 성장기에 느끼거나 행동했던 것 같은 감정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자아상태를 의미한다.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솔직하며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자유 어린이와 자신의 내면을 억압하거나 부모 혹은 주위의 요구나 기대에 부응하려는 순응적 어린이 유형으로 나뉜다.

어른 자아는 합리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특성이 있고, 내적욕구와 외적상황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어버이 자아는 부모의 양육태도와 사회문화적 환경 혹은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영향을 내포한 자아상태이다. 지배적·통제적 어버이와 양육적 어버이 유형으로 나뉜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심리학적 인간이해들은 그 근간에 인간이 육신과 본능, 의식과 무의식, 감정과 사고 등의 기능을 가진 신체·심리적(body-mind)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초월적인 존재나 초월 세계에 대한 암시 혹은 언급들이 없지 않지만, 많은 경우, 그것의 존재나 기능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부정 혹은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인간존재나 구성, 기능과 관련해 그리고 초월적인 존재와 그 영역에 대해 이와 다른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을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크리스천들은 이런 성경적 사실에 근거하여 인간을 이해하고 상담을 할 때에도 그러한 맥락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실에선 일반 상담심리학적 관점이나 접근을 그대로 답습하고 심지어 그것을 더 신뢰하고 강조하는 크리스천 상담사들이 없지 않다.

성경은 인간 존재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 분명하게 밝힌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되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렇게 하셨다고 기록한다(창 1:26~27).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특별히 연결된 존재이며 그 관계의 맥락에서 살도록 의도된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구약과 신학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즉 ‘하나님과 닮은 것’ 혹은 ‘하나님의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성경에 근거하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형상을 신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관점이다.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마치 눈과 입, 팔과 다리가 있으신 것처럼 묘사하기 때문이다(신 11:12; 왕하 8:12; 시 42:2; 사 52:10; 마 4:4). 즉, 인간은 신체적인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각종 특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신체적인 차이가 있지만 동일하게 몸에 하나님의 형상이 반영되어 창조된 존재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과 똑같은 신체를 갖고 계시다고 볼 수는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과 다르시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하나님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편재하시며 무소부재하시지만 인간의 신체로는 불가능하다.

둘째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유하고 느끼며 행동하는 성품이나 기능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관점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첫 기록에서부터 하나님을 생각하고 느끼시며 행동하시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창 1:3~4; 6:6~7; 19:29).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 마음의 뜻대로 판단하고 결단하며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사랑에 한계가 없으시고, 기뻐하시며, 심지어는 분노하거나 슬퍼하시기도 한다.

인간은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제한된 존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생각하고 계획하며, 느끼고 기억하고, 판단하며, 교류하는 심리적 존재로 창조됐다.

유재성 목사

침신대 상담심리학과

늘사랑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