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노재천 목사(盧載天, 1884-1964) (2) 그들은 하나님이 이런 때를 위하여 준비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새로운 힘을 얻어 앞을 막고 있는 준령을 넘기 시작했다. 실은 죽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으므로 새로운 용기와 남은 힘을 다하여 준령을 넘어 약무초안교회에 찾아 들었다. 형제들의 뜨거운 영접을 받고 힘을 얻은 그들은 곧 사경회를 열어 많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노재천 목사는 간도에서 활동하다가 1924년 강원도 행곡에서 개최된 제19차 대화회(총회)에서 예천과 제천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겼고, 이후 이곳에서 순회사역을 하였다. 그런 와중에 1938년 웅기교회의 ‘달편지’ 발각사건이 발발했다. 경흥구역에 속한 함경북도 웅기교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광고가 실린 ‘달편지’가 일경에 의해 발각됐는데, 이는 동아기독교 탄압의 빌미가 되어 노재천 목사를 포함해 김영관 감목(총회장)·백남조 총부서기·이종덕 목사·전치규 목사 등이 원산경찰서로 소환됐다. 일제의 강압적 조사와 무자비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답변으로 인해 일제는 가둔지 3개월 만에 이들을 검찰에 송치하여 5개월간 원산교도소에 감금했다. 이후 더
‘로뎀나무’는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경의 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 대부분은 로뎀나무를 소나무처럼 그늘을 제공하는 아주 커다란 나무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로뎀나무는 쉼, 안식, 평안, 여유, 휴식을 제공하거나 그런 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 또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로뎀카페, 로뎀쉼터, 로뎀양로원, 로뎀수목장, 로뎀푸드와 같은 이름들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로뎀나무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과연 어디서 시작됐을까? 아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열왕기상 19장 사건에서 기인한 것 같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는 성경 사건의 배경이 되는 풍습, 자연, 지형, 그리고 식물들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의 자연환경과 매우 다른 지역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로뎀나무’는 그런 것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라고 말씀드린 바 있다. 또한 로뎀나무는 성경 현장답사를 하면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대부분 성도들은 로뎀나무를 느티나무나 소나무처럼 아주 커다란 나무로, 그래서 많은 그늘을 만들어내는 나무로 생각한다. 아마 주일학교에서부터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도서에서 로뎀나무를 느티나무처럼 그려놓은 것을 보고 ‘책을 펴내는 곳에서,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로뎀나무는 히브리어로 ‘rotem’(영어로 white broom)이라고 불리는데, 묵다, 속박하다를 의미하는 ‘rotena’가 어근이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빗자루를 만들던 싸리나무와 흡사한 모습으로, 1.5~3m까지 자라며, 우기가 끝나갈 무렵인 2~3월에 마치 안개꽃과 같은 흰 꽃을 피우게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해안지역의 모래 구릉지, 산지, 브엘세바 지역(남방), 그리고
(창세기 13장 1절 ~14장 24절)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 일행은 이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13장 2절에 가축과 은, 금이 풍부했다고 쓰여 있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기존 재산에 애굽 땅에서 얻어 온 재물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과거에 제단을 쌓았던 벧엘 동쪽 지역으로 돌아온 일행이 다시 한번 예배를 드렸는데요, 애굽에서 한 단계 성장한 신앙을 확인하는 자리였죠.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으니, 조카 롯 사이에서 벌어진 재산 분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창 13:7) 데라가 죽은 후 길을 떠난 아브람이 밟은 여정은 한편으로 재산이 늘어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최대 위기였던 애굽에서도 재산이 불어났을 정도였죠. 그런데 늘어난 재산이 모두 아브람 소유는 아니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롯의 재산도 늘어났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둘의 재산이 많아졌죠. 재산이 적을 때는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나누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겠으나 살림이 넉넉해지기 시작하면 다툼이 생기기
기독교로 개종한 후, 피터스(이삭)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신학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스승이자 지도자인 알버터스(피터스) 선교사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알버터스 선교사는 단순한 신학적 교리 교육을 넘어, 성경 해석과 설교, 교회사, 선교학의 기초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지도를 통해 피터스의 신앙과 지식을 세심하게 다듬어 줬다. 당시 나가사키에는 몇몇 개신교 선교사들이 함께 운영하는 소규모 성경학교가 있었고, 피터스는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수업을 들으며 신학적 기반을 쌓아갔다. 정통파 유대인 청년이 침례를 받고 개신교인이 됐다는 소식은 나가사키를 넘어 규슈 전역, 더 나아가 일본 전체에 복음을 전하고 있던 선교사들에게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혼슈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사역하던 헨리 루미스 선교사는 피터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미국 성서 공회(American Bible Society) 일본 담당 총무로, 후에 일본 최초의 장로교회인 요코하마 제일장로교회(요코하마 시로 교회)의 초대 목사로 섬기게 되는 인물이다. 루미스는 피터스를 만나기 위해 요코하마에서 나가사키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찾아왔다.
6·25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김종혁 목사, 한교총)은 6월 25일 성명을 발표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한 참된 평화와 통일, 생명과 정의의 회복을 한국교회가 함께 이뤄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교총은 성명에서 “대한민국을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공화국으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참전용사들과 순국선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또한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사 32:17)이란 말씀을 인용하며,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의 정의 위에 세워질 때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했다. 성명은 특히, 최근 출범한 국민주권정부가 헌법 정신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통합과 민생경제 회복에 힘쓰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했다. 아울러 한교총은 “정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을 적극 추진해 남북 당국자 간의 대화를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한교총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있으며,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사용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죄악”이라며
성령을 따라 행하자(갈라디아서 5:16~26)
기후 위기는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장마를 통해 우리에게 가슴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극한 기후’라는 말을 남기며 인간의 예측을 넘어서는 재해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도 고지대로 혹은 위도가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며 기후 위기의 고통 가운데 있다. 이처럼 창조 세계의 신음과 고통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자녀인 우리에게 큰 도전이다. 이는 외면하거나 방임할 수 없는 숙명적으로 대처할 과제이다. 창조세계의 회복과 보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지구를 위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꼭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급변하는 지구 생태계 위기는 비단 우리 시대, 우리 교회만의 도전과 관심사가 아니었다. 6세기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들도 파괴된 숲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20세기 초에 창설된 시토 수도회도 다른 영적인 일도 중요하지만, 삼림복구를 위해 나무 다시 심기 운동을 벌였고, 훼손된 땅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힘썼다. 우리 시대의 주 관심사인 생태운동(生態運動)은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역사에서 진행되었던 일이다. 현재 인류의 주소는 423이라고 한다. 423은 무슨 숫자일까?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이다. 마리아와 요셉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작은 일이 큰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의 패튼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하지만 부하들에게 무척 악명 높은 존재였다. 그는 군인의 생활 속 사소한 부분까지 가혹하게 요구했는데 이는 부하들이 신발 끈이 풀려 전쟁터에서 넘어지거나 철모를 제대로 쓰지 못해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1943년 제2사단장으로 임명된 패튼 장군은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시찰을 시작했다. 옷이 단정하지 못하거나 모자를 비뚤게 쓰고 단추가 고르지 않은 부하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구두에 먼지가 조금 묻어 있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항상 자신의 철모, 총 및 다리 보호대를 잘 간수하고 매일 면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군의 요구 사항을 들은 교만한 부하들은 하찮은 일에 신경 쓰라는 사단장의 말에 불만을 품었다.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정신을 심어줘도 모자랄 판에 면도나 하라는 말에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그러나 패튼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지시를 엄격하게 따를 것을 요구했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무시하는 부하가 있으면 엄격한 처
골고다의 언덕길을 따라간 여인의 숨가뿐 비명 고통에 울부짖던 그녀는 피멍이 들도록 제 가슴을 쥐어뜯었다 어느 누가 그녀의 고통을 알겠는가? 그러나 골고다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내쉰 고통의 비명이 잦아들어 평화가 찾아올 때 이제 새 길이 열렸다 아무도 열지 못하는 길이 열렸다 그 길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었다 이 세상의 숨결이 아닌 본질로 나아간 그녀에게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세상에 생명의 열쇠를 선물하기 위해 용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