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양 목사(朴基陽, 1894-1979) 박기양은 1894년 10월 20일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청북동에서 박규석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5세 때(1899년)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기 시작해 4년간 수학했는데, 훈장이 가르침에 따라 잘 읽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를 배우면 두세 가지를 깨닫는 등 그의 자질이 뛰어나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서당을 수료할 즈음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어 1903년 9월 세상을 떠났고, 아내를 잃은 부친은 방황하다가 훌쩍 방랑의 길을 떠났다. 이로 인해 박기양은 졸지에 부모를 잃게 됐고, 급기야 1년 후 동생마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다른 동생들과 함께 외갓집에서 성장했고, 17세 때(1911년) 소산동에 살던 임학이의 장녀와 결혼했다. 1911년 4월 충청북도 영동에서 활동하던 박영호 전도인을 통해 기독교로 개종했고, 1915년 이종덕 감목(총회장)으로부터 침례를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경상북도 포항 조사리에서 개최된 제10차 대화회(총회)에서 반장 직분을 받았다. 이듬해인 1916년 경상북도 문경의 신원(세원)에서 개최된 제11차 대화회(총회)에서 전도인으로 임명받았다. 1917년 2월 4일 장남이 출생했으나
한국의 선교 지도자들이 유럽 복음주의자들과의 협력 강화와 공동선교 방안 논의를 위해 유럽복음주의선교대회(European Leadership Forum, ELF)에 참석했다. 이번 대회는 5월 16~20일 폴란드 비스와(Wisła)에서 개최됐다. 약 900여 명의 유럽 교회 및 선교 리더들이 모여 유럽 재복음화를 위한 전략과 차세대 리더십 개발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은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 강대흥 사무총장, 미션파트너스 한철호 대표, TIM 한충희 대표, KWMA 노성천 협동총무가 참가했다. 이들은 18일과 19일 이틀간 유럽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적 대화를 진행하며, 한국과 유럽 교회 간의 선교 협력 가능성을 집중 논의했다. 유럽 측에서는 로잔 3차 대회의 국제디렉터인 린지 브라운(Lindsay Brown), ELF 회장 스테판 구스타브손(Stefan Gustavsson), 로잔 유럽지역 대표 짐 메모리(Jim Memory)와 우샤(Usha), 케임브리지 틴데일 하우스 학장 피터 윌리엄스(Peter Williams), 독일 선교지도자 알렉산더 핑크(Alexander Fink), 루마니아 에마누엘 신학교 총장 엠마누엘 툰드레아(Emmanuel Tundre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사명 중 하나는 복음전파와 영혼 구원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목회자는 자기가 원치 않아도 장례를 주관하고 집례해야 하는데, 장례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그러기 위해서 목회자는 먼저 장례사역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현 장례 절차와예법이 유교와 불교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른다고 하면서 유교식 용품을 쓰거나 삼우제 등을 하기도 한다. 목회자가 장례를 알아야 하는 이유 구체적인 예로 위패가 있다. 장례 예배를 드리면서 위패(신주)에 고인의 이름을 붙여 세워둔 위패를 그대로 두는데 위패는 유교의 전통용품이다. 유교에서 장례를 치른 후 탈상을 할 때까지 혼을 모시고 일정기간 제사하기 위해 만들었다. 따라서 위패가 아니라 명패를 별도로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 죽음은 이 세상의 마지막이지만 절망이 아니라 내세의 시작이기 때문에 소망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줘야 한다. 또 장례 일정 등도 알려줘 실제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이 지면을 빌어 장례 발생시 기본 매뉴얼을 소개한다. 장례 발생 초동조치 시 목회자는 장례 발생 소식을 접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즉각 현장으로 향한다.
바울의 종말론의 일관성 바울의 종말론이 그의 사역기간을 통해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즉 바울은 미래의 재림에만 강조점을 두었고, 묵시사상(默示思想)에서부터 성장하여 구원의 현재적인 완성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에 강조점을 둔 소위 실존주의적(實存主義的) 견해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는 서신을 통해 볼 때 대조가 된다기 보다는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의 초기 서신을 보면 바울은전도설교에서 성도들에게 미래를 환기시켜 주면서(살전 1:10) 유대 묵시사상과 거의 유사한 재림론을 펴는 한편(살전 4:13~5:11, 살후 2:1~12) 믿는자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로 특정지워진 성도의 행위에 대해서도 말했다(갈 2:20). 또한 고린도 교회와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죽음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 버리고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고후 5:1~10) 재림시에 완성될 종말을 강하게 강조하고 (롬 8:8~15, 고전 15:12~58) 주님의 기도문처럼 “주께서 임하옵소서”라고 말했다(고전 16:22). 로마의 옥중서신에서 쓴 것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안’
7월이 되면 총회 주관으로, 그리고 개교회별로 다음세대 사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교회와 교단의 미래가 바로 이들에게 달려 있는 만큼, 7월의 행사에는 많은 관심과 비중, 그리고 적잖은 재정이 투입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헌신, 열정이 과연 진정한 열매로 맺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이는 오늘의 교회가 여전히 다음세대를 향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음세대 사역은 여전히 위기 가운데 있다. 교회 내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교회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성경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교육의 강화, 다음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커뮤니티 형성, 교회와 가정 간 협력적 관계 구축이 절실한 때다. 성경적이고 실용적인 말씀 교육의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많은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이나 주일학교에서 성경 내용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깊이나 실용성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앙을 실제 삶에 적용하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이 부족하다. 젊은 세대는 이론에 머무는 신앙에는 흥미를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사람은 내면이 강해야 우뚝 설 수 있다. 세계 당구대회에서 1위 자리에 올랐던 자넷 리는 세계 당구스포츠계를 평정했지만 그녀의 지난 삶은 무척 기구했다. 4살 때 종양을 앓았고, 11살 때는 다리의 악성 종기로 고생했다. 12살 때는 척추병으로 서 있을 수 없고 걸을 수도 없었다. 허리를 굽히지 못해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13살 때 의사는 그녀를 위해 등쪽에 금속 받침대를 설치해 줬고, 두 개의 강철봉을 용접해 설 수 있게 도왔다. 그 후 그녀는 어깨 이두박근 근육염과 목 디스크 등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생사를 오가는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자넷 리는 어둠 속에서 묵묵히 활로를 찾았다. 18살이 됐을 때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바꾼 당구를 만나게 됐다. 승부욕이 강했던 자넷 리는 아주 빠르게 이 운동에 빠져들었다. 매일 10시간 넘게 연습했다. 가장 완벽한 드라이버 핸들을 잡기 위해 그녀는 매일 밤 잠자기 전 플라스틱 테이프로 자신의 손을 표준 자세로 고정시켰다. 기상과 목욕 시간에도 예외가 없었다. 맹훈련은 그녀의 운명을 성공적으
과학의 많은 영광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허락신다 해도, 그 이유로 필요한 한 가지를 잊지 말게 하소서. 주께서 우리의 정신력을 소멸시키거나, 이 땅에서 너무 늙어 우리의 정신이 무뎌지도록 하신다 해도, 아!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잊는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아들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소서. 183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키르케고르가 남긴 일기의 여백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기도입니다. 저는 이 기도 역시 ‘솔로몬의 영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누가복음 2장 14절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크리스마스 이브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누구나 생각하는 날입니다. 즉,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날인지요! 아마도 키르케고르는 이 날의 영광과 솔로몬의 영광을 생각함과 동시에,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영광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키르케고르가 살았던 1800년대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런 과학 발전을 목도하였을
롯과 아브람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롯이 눈에 보이는 이익을 따랐다면 아브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약속을 택했죠. 신앙으로만 판단하면 아브람 선택이 당연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정말로 어려운 선택입니다. 이 선택으로 아브람이 얻은 이익이 조금도 없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가지게 될지, 정확하게 어디까지가 그의 땅이 되는 건지, 어떤 방법으로 성취될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거든요. 후손에게 주신다는 축복도 자신과 사래의 나이를 생각하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아브람 생전에는 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축복이라기보다는 기만에 가깝다고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브람에게는 몰라보게 강해진 신앙이 있었고, 어떤 어려움이라도 믿음으로 극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 13:18) 아브람은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았던 축복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상수리나무가 많이 있던 헤브론 마므레로 이주했고, 제단을 쌓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
성경의 현장에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속에 예수님의 형상이 있고 또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언급된 우슬초는 신앙인들에게 익숙한 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히브리어로 ‘에조브’, 아랍어는 ‘자아타르’라고 부르며, 헬라어로 ‘히솝’이라 불리는 것을 우리말로 ‘우슬초’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사실은 ‘우슬초’는 실제와 전혀 다른 오역이다. 한국의 식물사전에서 우슬초를 찾아보면 ‘그 생김새가 마치 소의 무릎처럼 생겼다 하여 우슬초(牛膝草) 또는 쇠무릎 풀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는 성경에 언급된 ‘에조브라’는 식물 자체가 없다. 그러니 ‘우슬초’로 번역해 부르기 보다는 ‘에조브’라고 그대로 써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우슬초(에조브)라는 실체를 찾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성경을 기록한 그 땅에 거주했던 사람들에게 우슬초(에조브)가 어떤 의미로 인식되고, 또 어떻게 그들의 생각이 식물에 투영돼 성경에 나타났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성경의 주인공들에게 우슬초(에조브)는 ‘겸손’ 또는 ‘비천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이었다. 그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