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많은 영광에 대한 지식을
우리에게 허락신다 해도,
그 이유로 필요한 한 가지를 잊지 말게 하소서.
주께서 우리의 정신력을 소멸시키거나,
이 땅에서 너무 늙어
우리의 정신이 무뎌지도록 하신다 해도,
아!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잊는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아들에 의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소서.
183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키르케고르가 남긴 일기의 여백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기도입니다. 저는 이 기도 역시 ‘솔로몬의 영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누가복음 2장 14절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크리스마스 이브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누구나 생각하는 날입니다. 즉,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날인지요! 아마도 키르케고르는 이 날의 영광과 솔로몬의 영광을 생각함과 동시에,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영광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키르케고르가 살았던 1800년대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런 과학 발전을 목도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4차 산업혁명의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키르케고르가 2차 산업혁명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인공지능 기술이며, 작년 챗GPT 모델은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과학 기술의 영광,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산업혁명의 현장 속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탄의 ‘영광’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의 기도의 1연은 그런 과학 기술이 많은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해도, 한가지만은 잊지 말게 해달라는 것이지요. 이 ‘한가지’ 역시 누가복음 10장 41~42절과 관련이 깊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1~42)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 오직 이 한 가지만 사모했던 마리아처럼, 세상이 과학 기술의 영광으로 떠들썩하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잊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2연은 이런 소원이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이 우리의 정신력을 약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리거나 나이 들어 우리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해도, 그리하여 다른 모든 것을 잊는다 해도, 이 ‘한가지’를 잊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3연에서 이 ‘한가지’가 명확하게 밝혀집니다. 즉, 모든 것을 전부 잊어버린다 해도, 주님이 탄생하신 이 밤, 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주님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사실, 이 하나만은 잊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담은 기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 기술의 혁명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로봇, 스마트 시티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발전에 모두 감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외쳤던 누가복음의 영광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과학 기술의 영광에 사로잡혀, 이 하늘의 영광을 망각하면 인간의 상태는, 여러분과 저의 상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창우 목사
카리스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