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에 관해 멜랑히톤은 세 가지 견해를 제시한다. 첫째, 율법은 이방 문화의 도덕률과 같은 것으로서 율법의 준수는 죄 된 세상에서 인간이 함께 사는데, 그리고 삶의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둘째, 신학적 측면에서 율법은 인간의 죄를 드러나게 한다. 셋째, 교훈적 기능으로 인간이 자신 속에 남아 있는 죄성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병을 알려주는 반면에 복음은 치료약’이라는 말로 멜랑히톤은 율법과 복음의 역할을 구분하고 있다. 율법과 복음은 동시에 선포돼야 하는데, 율법 없이는 죄를 알지 못하고 죄의 세력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칭의 : 멜랑히톤은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확고히 지지했다. 평생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였던 칭의론에 관해 멜랑히톤은 ‘오직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며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된다고 했다. 신앙 :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역사, 삶과 죽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역을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리스의 한 현인에게 제자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과 가장 어려운 일을 알려주십시오.” 현인이 대답하기를, “가장 쉬운 일은 일어나자마자 손을 앞뒤로 10번 흔드는 일이다. 가장 어려운 일은 이 일을 1년 동안 매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농담인 줄 알고 크게 웃었지만, 스승은 해보면 알 것이라며 “내일 아침부터 일어나서 손을 흔들어보라.”고 말했다. 일주일이 지나 스승이 “아직도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모든 제자가 손을 들었다. 한 달이 지나고 묻자 70%만 손을 들었다. 1년이 지난 뒤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는 제자는 단 한 명이었다. 스승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결심을 하루만 실천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결심을 끝까지 이어가는 일이다.” 이때 손을 든 유일한 제자는 그리스의 대철학자 플라톤이었다. 매일 벽돌 한 장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은 큰 성을 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계속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작은 반복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 작은 반복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우리의 인생과 운명
로마서에서 밝히는 죄는 구원론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로마서의 죄론에 대한 이해는 구원론에 대한 이해이며, 이러한 죄론과 구원론은 선포되는 복음과 이에 대한 인간편의 반응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밝혀준다. 로마서는, 유대인은 종이에 쓴 율법으로, 이방인은 본성(양심)에 쓴 율법으로 하나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않았다. 이것을 로마서는 ‘죄’라고 말한다. 그 죄는 아담을 통하여 들어온 죄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데 실패했으며 로마서는 이를 ‘죄’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로마서는 이 근원적인 죄와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행하는 온갖 죄악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까? 로마서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한다. 근원적인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며, 이는 동시에 우상숭배와 연결된다고 본다. 이 우상숭배가 바로 로마서가 기록되던 사회의 배경인 다신교와 종교혼합주의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단지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상숭배로 귀결된다는 것이
독일의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 광장 맞은편 루터의 동상 옆에 나란히 멜랑히톤의 동상이 서 있다. 그러나 멜랑히톤은 종교개혁에서 그의 역할과 업적에 비해 매우 덜 알려져 있다. 그는 신학자요 교육자요 훌륭한 작가였으며, 24세의 젊은 나이에 신학 통론을 저술해 새로운 시대의 신학 교과서를 집필한 인물로 유명하다. 동시에 그는 1530년 아우그스부르크 제국회의에 제출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을 편집해 루터교 최초의 신앙 고백을 탄생시켰다. 멜랑히톤은 가톨릭 측과도, 인문주의자들과도, 그리고 개혁파 개혁자들과도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멜랑히톤은 1497년 2월 16일 독일의 브레튼에서 태어났다. 멜랑히톤의 종조부 요한네스 로이힐린은 유명한 히브리어 학자이자 인문주의자였다. 멜랑히톤은 그에게 어려서부터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다. 1518년 멜랑히톤은 비텐베르크 대학에 헬라어 교수직에 취임하게 된다. 루터는 그의 헬라어 수업을 들었고 멜랑히톤은 루터에게 신학을 배우게 된다.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 신학에 감동되어 독일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요, 교육 개혁자요 종교개혁 1세대의 대표적 신학자로 활동한다. 멜랑히톤은 루터보다 14세 어렸지만 루터는 그와
구원의 다원성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오직 예수’라는 주장의 함정이다. 종교다원주의자가 유일신을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일 뿐이다. 만일 이들이 기독교(예수)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기독교 밖에서는 예수의 구원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오직 예수를 통한 구원은 그 내면에 오직 기독교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하나의 등산로를 택했으면 그 방향에서는 오직 그 등산로를 통해서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맥락과 같다. 그러나 산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지만, 구원의 길은 한 번으로 끝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등산과 구원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종교다원주의는 여러 구원의 통로는 서로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같다는 주장 속에서 종교 간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사랑과 대화를 주장하면서 사회의 지성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세력을 확장한다. 그렇다면 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는 실제로 어떤 관련성을 가질까? 종교다원주의의 다양성 존중은 결국에는 성적 취향의 다양성 존중으로 이어진다. 여러 종교의 공존과 같은 여러 성적 취향의 공존이 종교다원주의 사상 속에서 평등의 이
창조주 하나님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신약성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사회 윤리와 종교관을 어떻게 직시하고 복음으로 해석하며 대응했을까? 신약성경은 헬라-로마의 문화적인 배경을 어떻게 도구로 활용하며 복음을 전했을까? 신약성경이 형성되던 시대는 다신교와 종교혼합주의가 폭넓게 퍼져있던 종교다원주의 상황이었다. 신약시대의 분위기에서 단 한 분의 신을 섬긴다는 것은 무신론을 의미할 정도로 다신교가 성행했다. 그리스도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유일신관이 오히려 충격적인 사상이었다. 유일신을 섬긴다는 것은 당시의 지성적인 분위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반지성이었다. 여러 신을 섬기던 신전인 로마의 판데온(Pantheon, 만신전)이 다신교와 종교혼합주의가 만연했던 상황을 반영한다. 이러한 사상은 로마인들에게 생활이고 문화였다. 초대교회는 복음전파 과정에서 다신교나 종교혼합주의 영향을 치열하게 극복해 나갔다. 당시의 사회에서 유행하던 풍조에 맞서는 새로운 사상은 투쟁을 수반한다. 복음은 이러한 문화 투쟁을 하며 사상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었다. 로마 황제 숭배의 현상과 그리스도인의 대응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존중하는 분위기는 로마의 체제에
일제는 동아기독교회의 지속적인 신사참배 거부에 제동을 걸고 탄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1940년 동아기독교회 원산총부에 교규(敎規) 제출을 통보했다. 이에 교단총부는 서둘러 성경을 토대로 15장 36조의 교규를 작성했고, 원산에 있는 진성여자보통학교 교장인 강주수 선생의 도움을 받아 일어로 번역해 1940년 9월 9일 당국에 제출했다. 본 교규는 이종근 감목이 1940년 7월 15일 함경남도 원산부 영정을 주소로 포교관리자 설치를 신청한 서류와 함께 제출했는데, 주된 내용은 1906년에 작성했던 교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제가 동아기독교회에서 제출한 교규를 면밀하게 검토하던 중에 소위 ‘우태호(禹泰浩) 사건’이 발발했다. 그는 벨몬트침례교회에서 전도 목사로 안수받은 후 미남침례회 해외선교회 일본국 한국 선교사로 임명받아 입국해 일제의 감시를 피하고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1941년 말엽 원산의 동아기독교 교단총부를 찾아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교단 임원들은 우태호와 같은 외부인의 합류를 달갑지 않게 여겨 함께하는 것을 거절했고, 심지어 안대벽은 그가 교단 재산을 노리고 합류를 시도한다고 여겨 일경에게 그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땅, 땅, 땅! 지난 2024년 7월 18일 일부 대법관들이 반인륜적 혁명을 선언했다. “피고(국민건강보험공단)는 이 사건 처분을 통하여 사실상 혼인관계 있는 사람 집단에 대하여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취급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다른 대법관들의 별개의견과 보충의견이 합리적인데도 말이다. “①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간의 결합에는 혼인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움 ② 동성 동반자가 법률상 또는 사실상 배우자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속한다고 볼 수 없고, 설령 두 집단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피고가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합리적 근거 없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볼 수 없음 ③ 설령 배우자 외 동성 동반자까지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법률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입법이나 위헌법률심판제도로 교정해야 할 대상임.” [대한민국 법원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병원비 공짜, 교육비 공짜, 세금 없음, 한 가구당 한 명의 가정부 지원, 결혼하면 주택 제공, 매년 생활비 1억 원 지급 등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며 살고 싶은 나라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나라가 존재한다. 지상낙원이라고 불리었던 이 나라는 호주에서 북서쪽으로 3,260㎞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총면적 21㎢로 울릉도의 1/3 크기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 공화국이다. 나우루 공화국은 총인구가 9,000여 명인 세상에서 세 번째로 작은 나라이다. 나우루 공화국은 지폐를 휴지로 사용할 만큼 부유한 나라였다. 작은 섬나라인 나우루 공화국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된 것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새똥’ 때문이다. 나우루섬은 새똥 섬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산호초로 이루어진 이 섬에 많은 새들이 오랜 세월 똥을 싸게 되었다. 그 ‘새똥’은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 인광석이 됐으며, 그 위에 사람이 살게 된 것이다. 인광석은 비료의 주원료가 되는 인산염을 함유한 광석이다. 20세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의 식량을 충당하기 위해 사람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척박한 땅에서 풍족한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수동과 능동에 대한 심리학적인 이해를 통해 신학적인 통찰을 구하여 보기로 한다. 수동적(受動的 : passive)이란 말의 뜻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의 작용을 받아 움직이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혼자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를 말함인데 내가 동의를 하던지, 안 하든지 간에 타인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수동적이라 한다. 신학적인 면에서 칼빈의 절대 예정론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총론을 바탕으로 타락과 창조 이전에 이미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을 자와 멸망할 자가 예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의 의지나 믿음이 아닌 절대적인 하나님의 예정(하나님의 의지로 선택)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인간 자체의 자유나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의지는 없다고 본다. 즉,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역기능의 관계 가운데 수동적이란 말에는 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가스라이팅 등 부적절한 관계라면 가해자의 능동 또한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피해자는 심리적인 자아경계가 무너져 있으며, 가해자는 피해자의 자아경계를 무너뜨리고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면에서 보는 절대 예정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