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대한민국 국민의 1/4을 관객으로 끌어 모은 영화 ‘광해’ 이야기다. 이 영화는 조선의 15대왕 광해군 8년, 임진왜란 이후 나라를 다시 세워보려는 그의 의지에 대해 대신들의 왕권 견제가 극심하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심지어 반대파들은 중전의 오빠도 역적으로 몰고, 왕의 목숨까지도 노린다. 이에 극도의 위기를 느낀 왕은 어느 날 야밤 도주를 결심하고 자기가 없는 동안 잠깐이라도 자신을 대신해 줄 똑 닮은 한 사람을 수배하여 자기 자리에 앉힌다. 그로부터 이 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는 전개된다. 이에 광해는 그날 밤 자신이 좋아하는 기생을 찾아 급히 몸을 숨기지만 그만 암살자에 의한 독극물 중독으로 사경을 헤맨다. 그래서 졸지에 그 가짜 왕의 왕 노릇은 잠깐이 아닌 15일 동안이나 계속된다. 이에 광해의 최측근인 도승지 허균과 조 내관은 그 가짜 왕이 가짜임이 들통 나지 않도록 왕실 교육을 철저히 시키며 하루하루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해 나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벌어진다. 가짜 왕으로 앉은 이 ‘하선’이라는 기방의 광대가 처음엔 얼굴과 목소리만 흉내 내는 차원이었지만, 점점 나라 돌아가는 것을 눈에 넣게 되면서 정치, 경제, 외교
목회(牧會)를 하면서 고민이 되는 문제들 중 하나는 주(主)를 위해 뜨겁게 헌신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뜨거운 감격이 사라지고 헌신 또한 식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은 분명히 자기가 주인 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비췸 받아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Lord)으로 믿었고, 큰 구원(히 2:3)과 큰 사랑(엡 2:4)에 감격하여 주를 위해 헌신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뜨거움과 헌신이 사라지는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고민하며 의뢰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나 훈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데서 실패하였기 때문’임을 알려주셨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깨닫고 감격했을지라도 마음을 지키는 데서 실패하면 감격이 사라지고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다. 구원을 받고 많은 말씀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 즉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다시금 마귀에게 종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음을 지키는 데서 실패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풍성한 삶을 잃게 되는 것이다.우리는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추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소홀히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개역개정 성경에서 사무엘하6:5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로 기록하고 있고, 역대상 13:8은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로 기록했다.KJV성경에서 사무엘하 6:5은 “하프와 쏠터리와 탬버린과 뿔나팔과 심벌즈”로 기록하고 있고, 역대상 13:8은 “노래와, 하프와 쏠터리와 탬버린과 심벌즈와 나팔”로 기록하였다. NIV성경에서 사무엘하 6:5은 “하프, 리라, 탬버린, 딸랑이, 심벌즈”로 기록하고 있고, 역대상 13:8은 “하프와 리라와 탬버린과 심벌즈와 트럼펫”으로 기록하고 있다. NASB성경에서 사무엘하6:5은 “리라와 하프와 탬버린과 캐스트넷츠와 심벌즈”로 기록하고 있고, 역대상 13:8은 “리라와 하프와 탬버린과 심벌즈와 트럼펫”으로 기록하고 있다.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법궤를 이송할 때에 다윗은 화려한 무용을 동반한 음악연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그 악기편성은 사무엘하기자와 역대상 기자가 다르게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번역본 마다 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번역된 성경들은 번역본마다 번역이 다르고, 또한 잘못 번역되어서 바로 잡아야 할 부분들
나는 늦은 나이에 신앙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신앙생활 초기에는 성경을 읽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아 고민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 중 특히 오랜 시간을 고민했던 부분은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것이었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보면 어떤 때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어떤 때는 사람이라고 하니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신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믿는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인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가 선명하지 않으니, 당연히 신앙생활도 선명할 수가 없었다.6년이 넘게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교회사를 보니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문제로 이미 300~400년간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인격체 안에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理性)이나 이 세상에서 배운 가치관으로 풀려고 하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오직 성령께서 가르쳐 주셔야만 한다. 성령께서는 히브리서 10장 20절과 이사야 9장 6절 말씀을 통해서 이 문제의 해답을 정확히 가르쳐 주셨다.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신학교 예과를 다니던 시절에 한 교수님으로부터 지도자는 공평한 간칭(杆秤)으로 여러 분야의 일을 공평하게 가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해외선교를 강조하는 교회는 국내선교를 등한이 해서는 안 되며 사회봉사를 강조하는 목사는 교리 공부의 중요성도 내다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종합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종합적 시각은 현실적, 사회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종적, 시간적으로 자신의 목회를 내다보고 설계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시각일 것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한(恨)이 많아 단명하게 되며 현재만 보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고 미래만 내다보고 달리다가는 허공에 던져지기 쉬울 것입니다.장거리 주자(走者)가 달려갈 거리를 가름하며 힘을 조절하듯이 목회도 어떤 방향으로 얼마동안 달릴 것이지 계획을 세우고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목회서신은 그동안 발표했던 112편을 묶어 대학출판부 『하기서원』에서 책으로 출판해서 이미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지난 3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목회서신의 수취인이 되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며 목회와 삶에 대해 느낀 단상 몇 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싸움에서 지는 사람이 패배자가 아니라 진실을 굽히는 자가 패배자이다.-
물의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들 중에는 폭포와 분수가 있다. 폭포는 하류로 흐르던 시내가 절벽을 만나게 되면 그 물들이 한꺼번에 그 아래로 쏟아짐을 통하여 장관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고, 분수는 고여 있는 물에 인공적인 힘을 가하여 위로 솟구치게 함으로 장관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둘 다 아름다운 물의 예술이다. 시원하고도 아름답다. 수많은 사람들을 유쾌케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이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폭포는 자연적이지만, 분수는 인위적이다. 폭포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지만, 분수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다. 폭포는 흐르는 힘을 그대로 이용했기에 따로 힘 들어갈 것이 없지만, 분수는 솟구치게 해야 하기에 힘을 많이 필요로 한다. 폭포는 왠만해선 중단되는 일이 없지만, 분수는 모터만 꺼지면 바로 중단된다. 폭포는 그 낙차를 이용해 또 다른 에너지도 만들어내지만, 분수는 에너지를 소모시키기만 한다. 폭포는 돈이 들지 않지만 분수는 설치부터 운영까지 많은 돈이 든다. 폭포는 고장 나는 일도 없지만 분수는 자주 고장도 난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성도들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영적으로 솟아오르게 할
큰 기대와 환영의 박수를 받으며 부임하는 목사 뒤에는 쓸쓸하게 교회를 떠나는 이임목사가 있다. 이임 목사 중에는 명예롭게 정년퇴임 하는 이도 있고 원하던 교회에 부임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떠나는 이도 있지만, 갈 곳 없이 떠나는 이도 적지 않다. 전에 잠시 언급한 바 있는 옛 사람들의 손님맞이와 보내기(작별)에 대한 형식(形式)의 일부를 되짚어 보며 교훈을 얻고자 한다(57회). 과거 우리나라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는 찾아오는 과객(過客)에게 거처와 음식을 제공하는 풍습이 있었다. 과객은 대게 한 끼니 식사를 하거나 또는 하룻밤 신세를 지고 이튼 날 아침에 떠나지만 게 중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몇날 며칠을 머무는 이도 있었다. 그런 길손은 흔히 오래 머무를 구실을 찾기 때문에 주인은 핑계꺼리를 없애야 했다.그래서 혹 식객들 끼리 투전을 해서 길손이 노자를 잃어버릴 경우 그것을 기화로 더 눌러앉게 되지나 않을까 해서 행랑채에서는 투전을 금했으며, 비가 온다 날이 저물었다 하며 출발을 미루거나 떠나갔다가도 되돌아오지나 않을까 해서 장기 투숙 식객이 떠난다고 하는 날은 서둘러 음식을 공궤하고 해가 있을 때 재 넘어 주막집까지 배웅해 주기까지 했
요즘 사회적으로 목회자의 사례비에 대한 세금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일부 교회의 분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마치 많은 교회들이 재정 사용에 문제 있는 것처럼 호도되는 측면도 있으며, 세금 부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재정 사용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단초인 것처럼 여론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리 하나님의 것마저도 가이사에게 주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1:3~4)는 교훈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전문가와 토론하며 그 의견을 구해 보았습니다(이 난의 제‘75’번 항목 참조 바람). 납세의무조세는 나라 살림의 근간을 이루는 재정의 원천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비전은 석유나 광물과 같은 부존자원이 미약한 상태에서 결국에는 조세 수입을 통한 재정 조달을 통해 실현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 납세의무는 헌
저작권이라는 것 때문에 졸지에 황당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설상가상으로 2012.3.15 한미 FTA가 발효됨에 따라 저작권 침해에 대한 범세계적인 감시가 더 강화됐다. 저작권법 제1조에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 저작권법의 제정의 목적이 저작물의 불공정한 이용을 억제하고 공정한 이용을 유도하여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제4조에 저작물을 예시해 놓았다. 소설, 시, 논문, 강연, 연설, 각본 그 밖의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연극 및 무용, 무언극 그 밖의 연극저작물. 회화, 서예, 조각, 판화, 공예, 응용미술저작물 및 그 밖의 미술저작물. 건축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그 밖의 건축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지도, 도표, 설계도, 약도, 모형, 그 밖의 도형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 여기 열거한 저작물들의 저작권의 존속 기간은 제39조 ‘저작재산권은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간 존속한다’는 규정에 따라 저작권자의
“80퍼센트”(88회)에 이어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절제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신자가 여남은 명 정도 출석한 교회에서 한 방문 설교자가 설교를 하면서 마치 수백 명의 회중 앞에서 하듯 음성을 한 옥타브 높여서 사자후를 토했다. 열의는 좋았지만 회중은 목사의 고성에 큰 부담을 느꼈다. 같은 빌라의 이웃 부부들이 한 가정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만찬이 끝난 후 주인의 요청으로 손님 중 한 여성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 크지 않은 거실이었는데 그 여성은 눈을 부릅뜨고 입을 한껏 벌리고 목청이 찢어질 듯 큰 소리로 노래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서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듣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았다.애국가를 부른 한 두 성악가들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거니와 가곡(歌曲)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리 가곡은, 노랫말이 섬세하고 곡이 민족정서와 잘 맞아서 아름답고 때로는 향수(鄕愁)마저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노랫말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래하는 이가 자신의 음성을 조금만 절제해도 가사 전달은 물론 음악도 훨씬 좋아질 것 같은데….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오래된 아파트를 개수하면
어느 왕이 신하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한 부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 이르고, 또 한 부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랬더니 그들은 몇 날을 헤매다 ‘사람의 혀’를 똑같이 들고 돌아왔는데, 그것을 본 왕은 모두 큰 상을 내렸고, 왜 같은 것을 가져왔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성당의 신부가 성찬식 때 잔을 깬 아이를 야단쳤더니 그는 정말 다시는 성당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35년간 유고슬라비아를 전제 통치했던 티토(Josip Broz Tito)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신부가 아이를 격려했더니 세계 카톨릭계의 최고의 지성인 훌톤 쉰 대주교(Bishop Fulton Sheen)가 됐다.역시 말의 파괴력은 포탄보다 치명적인 것 같다. 사람을 살인하지 않고서도 죽이며, 가정을 파괴시키고 마음을 부수며 삶을 좌초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말은 불협화음을 바로 잡는 피아노 조율사이며,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화장실이며, 숨어있는 거대한 능력도 찾아내는 전파탐지기이기도 하다. 사람을 끄는 자석이며, 따뜻하게 하는 난로이며, 배부르게 하는 빵이다. 말이 죽이고 말이 살리는
교회 안팎에서 십일조에 대한 논쟁이 그치지 않는다. 논쟁의 핵심은, 율법시대의 규례가 오늘날까지 유효하냐 하는 문제인 것 같다. 막상 성경을 펴들면 기록이 단순하고 명확해서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1. 십일조의 기원-창세기14:17-20아브라함이 부족 간의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을 찾아 돌아가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서 축복을 받고, 전리품의 십분 일을 그에게 바친 것이 성경 최초의 기록이다.2. 십일조에 대한 약속-창세기28:22 야곱이 하란 가는 길에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고 약속했다.3. 심일조의 용도-느헤미야13:10-13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회막에서 일하는 레위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교회의 필요를 위해 사용된다는 말로 해석 4. 십일조에 대한 명령-말라기3:9-10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