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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담긴 신학 산책>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앙-3

 

 

필자는 기독교인들이 가진 부활신앙이 부활현현의 체험에 기초한 것으로서 사람에게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혹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라는 것을 제시했다. 이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10:17)라는 사도 바울의 교훈에서도 제시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원어로 레마인데, 이 레마는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 감동과 능력으로 다가오는 생동적인 말씀을 가리킨다. 곧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레마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관하여 선포되는 감동된 말씀을 듣는데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레마곧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감동의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가 전파한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4)라는 것이며 그 부활하신 주님의 현현을 체험한 사람들의 명단을 제시한다. 부활의 주님은 먼저 게바 곧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시몬 베드로에게 보이셨다(고전 15:5).

 

부활의 예수님이 시몬에게 보이신 사건은 엠마오 사건의 결론에도 나온다(24:34). 다음에 오백 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전 15:6).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다(고전 15:7).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예수님 공생애 시절에 예수님에 대하여 회의적인 자세를 가졌었지만, 부활현현을 체험하고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큰 지도자가 됐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박해자였던 사울 곧 후에 기독교 사도가 된 바울에게도 보이셨다(고전 15:8).

 

사도 바울은 이 말씀들에서 보이셨다라는 동사를 네 번이나 사용했다. 이 동사의 문법적 형태는 보다라는 동사의 단순과거 수동태인데, 이 수동태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는 유대교적 표현법이다. 이러한 수동태를 가리켜 신적인 수동태”(divine passive) 혹은 신학적 수동태”(theological passive)라고 부른다.

 

보이셨다라는 것은 먼저 주님께서 보여주셔서 그들에게 보이신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부활의 주님을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계시를 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이신것이다. 보다라는 동사는 가시적인 것을 육안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는 것과 같이 분명하게 체험하고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 결과를 나타내는 시각의 동사다.

 

이 동사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초월의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계시 행동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시각의 동사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체험적 인식을 나타낸다. 구약성서 욥기의 결론부에서 욥은 그가 당한 많은 고난을 통과한 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는 구절을 헬라어 구약성서의 본문에서 직역하면 그런데 이제는 내 눈이 주님을 보았습니다라는 말씀이 된다. 여기서 보다라는 동사도 사도 바울이 부활현현의 경험자 명단을 제시하는 말씀에서 사용한 바로 그 동사다.

 

다만 고린도전서 15:5-8에서는 단순과거시제가 사용된 반면, 욥기에서는 완료시제가 사용됐다. 헬라어 완료시제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그래서 내 눈이 주님을 보았다라는 구절은 내가 주님을 보았고 그래서 지금도 보고 있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내 눈이 주님을 보고 있다는 것은 육안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어떤 형상이든지 하나님을 가리키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엄중하게 명령하셨다.

 

여기서 내 눈이 주님을 보았다라는 말은 내면의 눈, 영혼의 눈, 혹은 영적인 눈이 열리면서 하늘의 세계가 보이고 하나님의 존재와 주권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된 내면의 변화를 나타낸다. 마치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을 나타낸다.

 

욥은 그가 받은 혹독한 고난을 통과하면서 처음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답답하며 속상하고 안타까웠지만,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을 들으면서 의인이 당하는 애매한 고난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됐다.

 

욥은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의 삶에 주권적으로 관여하고 계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의 눈에 보이듯이 확실하게 그의 삶에 함께 계시며 주권적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욥은 그가 깨닫고 확신하게 된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의 사실을 이제는 내 눈으로 주님을 보았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에 대한 체험적인 확신을 나타내는 욥의 표현과 동일한 표현이 부활현현을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를 통해 부활의 주님을 보는 부활현현을 체험하게 됐으며 그 결과로 전에는 그의 의식 속에 없었던 부활의 주님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됐다.

 

그는 이러한 그의 인식의 변화를 내가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고전 9:1)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주님을 확실하게 보았다라는 체험적 확신을 나타낸다. 여기서 내가 주님을 보았다라는 말은 욥의 고백과 동일한 완료시제로 표현됐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주님이 보이는부활현현의 체험을 통해 그 주님을 보게 됐으며 그 결과로 지금도 그 주님을 보는 것과 같은 분명한 확신으로 그 분의 임재와 권능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다는 그의 사도직을 변호한 것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부활하신 주님의 현현을 첫 번째로 체험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로 제시된다. 마리아는 처음에는 부활의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다른 데로 가져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 마리아야라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시자 그녀는 그제서야 그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나 놀랍고 반가운 마음으로 예수님께 달려오는 마리아를 향해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20:17).

 

나를 만지지 말라라는 말씀은 마리아가 이제는 예수님을 그녀가 지금까지 존경하고 따랐던 선생님으로서의 인간 예수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제 죽음에서 부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로 올라가시는 분이시며 그 올라감이 완결되면 부활의 주님은 아버지와 완전하게 하나로 연합된 신비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존재하게 되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현현하신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지만 아직은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계신 과정에 있는 분으로서 현현하신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부활의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시면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그들에게 나타내시던 주님의 존재와 같은 국면을 반영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라는 것과 또한 주님께서 그녀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신 것을 알려줬다(20:18). 마리아의 말에서 내가 주님을 보았다라는 말에서도, 욥의 고백과 사도 바울의 고백과 동일하게, ‘보다라는 동사의 완료시제가 사용됐다.

 

부활현현을 체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 체험의 결과를 내가 주님을 봤다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부활현현의 체험의 결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됐으며 그래서 그 부활의 주님을 담대하게 고백하며 전도하게 된 것을 나타낸다.

 

초대 교회 사도들은 부활현현의 체험의 결과로 확고부동한 부활신앙을 갖게 됐으며 그 부활신앙으로 기도했을 때 성령 강림을 체험하게 됐다. 성령 강림의 결과로 사도들은 권능(복음의 확신과 담력)을 얻게 됐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유일한 구원의 복음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전파하게 됐다.

 

김광수 교수 / 침신대 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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