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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老牧의 “독일 베를린 늘푸른침례교회”

알바 목회 체험담(2017. 11~2018. 1)

내 나이 80이 넘었고 공적 사역을 떠난 처지에 다시 교회 일을 하게 됐다는 의미로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아르바이트의 약자로 통하는 알바란 접두어를 붙여 알바 목회란 애칭을 붙였다. 이런 용어에 오해 없기를 서두에서 변명하는 것은 젊어서 하나 늙어서 하나 간에 목회는 직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30여 년 전에 출현한 베를린 늘푸른침례교회의 초청을 받은 나는 주저하지 않고 베를린으로 날아갔다. 이 교회는 출현 초기 목회자이던 이광명 목사가 지병으로 일찍 소천하고 그 뒤 장 모 목사님, 함 모 목사님, 김 모 목사님이 거쳐 간 유럽의 중앙 베를린에 나타난 역사적인 침례교회였다.


2017년 말에 교회에 갑자기 어떤 이변이 생겨서 그 교회가 나에게 윤정신 권사의 전화로 SOS를 발송했고 나는 2주 만에 급히 출국해 베를린 늘푸른침례교회 현장으로 날아가 80세 노목의 알바 목회가 시작됐다. 이미 두 주 동안 강단에 목회자가 공석이라서 성도들이 독일인 교회 예배에 참예하다가 내가 도착하는 즉시 교민들만의 늘푸른교회 예배가 정상화됐다.


나는 도착해서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 특유의 교회생활의 고통을 털어놓는 것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군대 사단은 사단장의 지휘 여하에 따라 사단 병력의 전투력이 좌우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임을 느끼는 현장에 나는 왔다. 나는 전임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촌평도 하지 않았고 또 성도들의 성토에 대해서 한 마디도 “예” “아니요”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니 이제는 그것이 이렇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인도하는 문제 해결사가 아니라 나는 단지 복음 전도자로 성도들에게 당당히 군림(君臨)했다. 보아하니 세계나 한국이나 교민사회나 간에 교인은 언제나 착했다. 아이가 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 밖에 없다. 그 하나는 어딘가 몸이 아파서 울고 다른 하나는 배고파서 젖 달라 우는 것 외에는 울 이유가 없다. 모든 어린아이는 이 둘만 충족되면 그냥 웃고 노니는 것 밖에 모른다.


80을 넘은 이 늙은 목사를 이 교회가 소위 수습 차원에서 구원자로 부르는 데에는 내가 초창기부터 이 교회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것을 나에게 기대했던 것으로 본다. 또 다른 게 뭐냐? 말씀의 갈증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좋은 후임자를 정해주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3개월 시한부로 강단을 지켜주기로 하고, 그 뒤에 후임자를 천거하겠다고 했고 3개월이 지난 지금 약속을 이뤘기에 체험담을 약술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해결방안이니 수습책을 공사석에서 일체 언급하지 않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교회인양 그냥 일상적인 설교만 했다. 설교내용이 뭐냐? “율법과 복음의 이별”이었다. 제발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복음의 자유로 나아가는 신약시대 교인이 되라고 외쳤다. 성도들을 보노라면 구약율법과 신판 여러 규제와 규정에 얽매여서 마치 훈련소의 훈련병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훈련병의 훈련은 특수 목적을 위한 특수훈련일 뿐 그게 제대한 자유시민의 일상생활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나는 성도들이 이제는 훈련소의 훈련병 신세를 버리고 제대한 예비역 병장의 자유시민으로 살아가라고 호통 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