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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에게 정답이 있어야 할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목사의 글에서 목회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가 목회(木灰), 즉 나무가 다 타서 생긴 재라는 뜻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에 유달리 큰 울림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한마디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참된 교회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패기 어린 주장을 펼치는 열정 어린 신학생들에서부터, 한국 사람이라고는 몇 가정이 채 되지 않는 시골교회에서 은퇴의 나이가 지나도록 섬기시는 선배 목사님들까지 목회자와 사모님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상하게도 목회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논제 앞에 할 말을 잃어간다.


대형교회라는 축복과 짐을 동시에 지고 부러움과 질타의 대상이 되는 유수한 기독교계의 리더들도, 일주일에 10번이 넘는 설교에 교회 청소까지 맡아하면서 따로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작은 지역교회 목회자들도, 뜻하지 않은 일로 교회의 분열이나 급작스런 사임의 아픔을 경험하는 목사님들도 하나같이 목회라는 여정에서 두렵고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경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와 기도 응답으로 순간순간 신나고 벅차기도 하지만, 타들어가는 나무처럼 그 심장이 까매져 갈 때도 있다. 턱없이 부족하고 약한 한 목회자와 그 가정이 목회라는 자리를 지키며 남겨진 재가 세월과 더불어 희어지는 머리처럼 쌓일 때 그 앞에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잘 하는 목회에 대한 질문에 과연 어떤 정답이 있을까?


직업으로 상담을 하는 상담사들 못지않게 목회자들은 수많은 상담을 한다. 셀 수 없는 아픔과 기도제목들을 가진 성도들이 목회자들에게 그 마음을 쏟아놓는다. 기도 부탁을 하고 조언을 청한다.
그런데 막상 우리들은 할 말을 잃을 때가 너무나 많다. 우리 머릿속에 뾰족한 묘안이 없을 때가 허다하다. 난치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왜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두시냐고 울부짖기도 한다. 자신을 무시하고 폭언을 서슴지 않는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서 꾸어줄 돈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어린 자식들을 앞에 두고 온 몸에 퍼진 암 선고를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도 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쌓여온 울분과 고통을 고스란히 쏟아내는 성도들 앞에서 목사로서 사모로서 기도한다는 말 외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예수님을 똑바로 안 믿어서 받는 벌이라고 질책해야 할까?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실 것이라고 위로를 해야 할까? 힘들고 아파도 이 시험을 믿음으로 잘 이기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을 해야 할까?


무엇인가 힘이 될 한마디라도 해주고픈 마음에 늘 애써 답을 찾지만 결국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거듭 깨닫게 될 뿐이다. 성도들의 질문뿐이 아니다. 목사로서 사모로서 우리에게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까? 몇 가정 없는 조그마한 교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성도가 떠나갈 때, 목사님의 말씀이 더 이상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 자기가 기대하던 사모가 아니라고 비난할 때, 교회가 한 결정이 하나님 뜻이 아닌 것 같다고 의심할 때, 교회가 아니라 종교집단이라고 공격할 때, 교회 사이즈가 좀 커지더니 교만하고 타락했다고 판단할 때, 목회자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지던 이 질문들을 다른 성도의 입을 통해 들을 때, 과연 무슨 말로 답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보고 경험하리라고 스스로 위로해야 할까? 그 말이 그저다 맞다고 수긍하고 사과해야 할까?
생긴 것부터 재수 없다고 독설을 쏟는 성도 앞에서 펑펑 울었다던 어떤 사모님의 눈물에 그저 코끝이 싸해질 뿐이다. 문득 교회에서 하는 말씀 잔치에 얼굴도 내놓지 못하고 내내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던 한 사모님의 젖은 앞치마와 질문이 잊히지 않는다.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목회자에게 꼭 답이 있어야 할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려운 일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멋진 한 마디가 있어야 할까?
깊이 있는 말씀 묵상과 경험으로 어떤 질문에도 척척 대답할 노하우가 쌓여야 할까? 우리 스스로에게 드는 의심과 회의를 한 번에 날려버릴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있어야 할까?  손에 아픈 사람들을 단번에 치유할 처방전이 있어야 할까? 우울증과 불안증 같은 것은 너끈히 이겨낼 정신력을 본으로 보여야 할까?


가끔은 질문만 있고 답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자리에 설 때가 있다. 그저 ‘잘 모르겠어요’가 우리의 답일 때가 있다. 시험을 넉넉히 이기었노라고, 사랑으로 모두 용서했노라는 말이 아직도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이제껏 해왔던 일들이 죄다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그 무너진 마음 그대로로 괜찮다고 말해주시는 분이 있다. 답을 몰라도 괜찮다. 기운 빠지고 불안한 상한 심령을 때로 목회자 자신이 경험하고 있어도 괜찮다. 꼭 찬송으로 끝나는 기도가 아니어도 괜찮다. 성공적인 결말이 아니어도 좋다.


타들어가는 나무같은 마음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스스로를 추스를 힘도 없어 그대로 엎드려 있을 때, 문제에 대한 아무 답이 없을 때, 내 안에 아무런 해결책이 없는 그 순간에 나는 진짜 나 자신이 된다.
기도의 자리에서 성공과 간증으로 가리지 못한 진짜 자신을 내놓을 때, 그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 텅 비고 낮아진 내 자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부으시는 은혜의 자리가 된다. 도대체 답이 없는 우리가 유일한 답이 되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답이 없어도 괜찮다.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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