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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다!

심연희 사모
RTP지구촌교회(미주)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영어에서 “cutting off your nose to spite your face”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의 얼굴에 앙심을 품어서, 혹은 괴롭히려고, 자신의 코를 벤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서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데 결국은 스스로만 괴롭히고 만다는 뜻의 숙어이다. 과연 누가 자신의 얼굴이 맘에 안 들어 코를 베어내려 할까 싶지만 사실 우리가 무심코 수없이 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늘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님이 미워서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세상이 못마땅해서 계속 술로 푼다면 이 또한 자신만 상처 내는 행위이다. 교회에서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고 아예 예배를 안 드릴 수도 있다. 결국에는 누군가 때문에 ‘시험 들어서’ 혹은 ‘삐쳐서’ 주님께 마땅히 드릴 찬양을 포기하고 말씀으로 스스로를 새롭게 할 둘도 없이 귀한 기회를 포기한다. 상대 때문에 자신이 손해 보는 짓이다.


우리는 때로 정말 참기 어려운 감정에 휘말린다. 너무 화가 나거나 상처를 받아 잠이 오지 않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살다 보니 열받을 일이 많다. 분명히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의사를 보러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아내가 자기 부모님께는 용돈을 찔러드리면서 남편 부모님께는 입을 씻는 일도 있다. 우리 교회에서 맨날 내가 커피 내리는 걸 당연히 여길 뿐만 아니라 누가 내리는 지도 대부분 모를 수도 있다.


이번 달 날아온 전기세가 이유도 없이 너무 올라 전화를 했는데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30분은 기다리게 한다. 간신히 받은 안내원이 내 영어를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지 약만 바싹 바싹 올릴 때가 있다. 둘도 없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그다지 잘못한 일도 없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 선한 마음으로 도와줬는데 돈을 떼어 먹히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노골적으로 무시당하기도 한다.


강단에서 멱살 잡힌 목사님,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나간 사모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목회자에게 감쪽같이 속았다는 집사님들의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공평하지 않는 일들이, 부당한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우리 모두에게는 열 받을 이유가 충분히 있다. 괴팍해지고 나빠지는 성질을 정당화할 만 가지의 이유가 있다. 이런 열 받는 일들이 생기는 것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열 받을 이유들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감정에 휩쓸려서 우리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무차별로 때려눕히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 머릿속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야!’ ‘이건 내 생각과 달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네가 뭔데!’ ‘이래서 안 되는 거야! 저래야 되는 거야!’ ‘공평하지 않아!’ 등의 목소리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분노에 찬 생각에 사로잡혀서 지혜로운 자신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복수심과 자기 의, 무의미한 분노에 사로잡혀서 효과적이지 않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원하지 않는 상황, 편치 않는 상황에 처할 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진짜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이다. 그 목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 뒤에 바싹 붙어 오며 헤드라이트를 깜박이는 무례한 운전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브레이크를 계속 밟아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까? 일부러 느리게 가서 열 받게 해야 할까? 나의 목표는 그 운전자를 벌주는 것인가? 싸우는 것인가? 아니면 안전하게 집에 가는 것인가? 그 운전자를 물 먹이고 싶거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들다가 잘못하면 내차를 받을 수도 있다. 내 코를 베는 일이다. 안전하게 집에 가는 것이 나의 목표라면 옆 차선으로 비키면 그만이다. 치솟는 분노에 초점을 맞추면 진짜 목표를 잊는다.


집에 와서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는 남편을 대할 때 화가 나겠지만, 목표가 무엇인지 잠깐 다시 생각해야 한다. 복수를 하는 것이 목표라면 남편을 굶기던지 폭포수처럼 잔소리를 쏟아내면 된다. 욕을 하고 옆집 남자와 비교하면 된다. 그러나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 목표라면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남자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잔소리에 움직이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들어간 노동력에 비하면 밑지는 장사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싸움이 났을 때, 목표가 상대를 이기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자신이 옳음을 증명해야 한다. 상대방의 생각이 왜 짧은지, 인격이 어떻게 부족한지, 믿음이 얼마나 수준 이하인지 까발려야 한다. 그런데 상대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이 목표라면 접근이 달라진다. 이 목표를 이루는 효과적인 방법은 지는 것이다. 그를 위한 기도이다. 감싸주는 언어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는 것만이 예수님의 목표였다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눈먼 자의 치유에서 끝났어도 될 일이다. 그분의 권능은 천사의 군대가 하늘만 한 바퀴 돌아도 증명될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아셨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그 처절한 십자가에서 기꺼이 죽음을 지나셨다.
우리는 직장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프로가 돼야 한다. 지혜로워야 한다. 아마추어는 별생각 없이 다음 수를 둔다. 프로는 몇 단계 앞을 내다본다.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안다.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디에 바둑알을 두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고 미리 읽는다. 어느 길로 가야 효과적으로 목표에 다다르는지 주목한다. 감정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칼에 자신의 코를 베기보다, 무엇을 썰어야 하는지 신중히 판단해서 멋진 요리를 만든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드는 상황까지는 어떻게 못해도, 내 코를 베어낼지, 마사지를 받을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프로답게. 우리는 프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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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위 113-1차 회의
우리교단(총회장 이종성 목사) 위기관리위원회(위원장 가순권 목사)는 지난 11월 3일 총회 회의실에서 113-1차 회의를 진행했다. 위기관리위는 이종성 총회장이 경건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회의는 신임 위원장과 서기를 선출하고 총회에서 파송한 신임위원을 받았으며 1년 주요 사업을 함께 논의했다. 이날 이종성 총회장은 안완수 목사(흥해)와 남기원 목사(의당)에게 신임 위기관리위원회 위원 임명장을 수여하고 격려했다. 이와 함께 신임 위기관리위원장으로 이재혁 목사(예수인), 서기에 구자춘 목사(신광)를 각각 선출했다. 가순권 목사는 “지난 회기 대형 폭우 피해 등으로 여러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속에서 총회와 위기관리위가 작은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며 뿌듯함을 느꼈다”며 “차기 위원회도 위원장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힘이 되는 위원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임 이재혁 위원장은 “107차 총회에서 시작된 위기관리위가 그동안 천재지변을 당한 교회들에게 힘을 주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교회들의 형편을 돌아본 것을 기억하며 앞으로 위기관리위 사역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총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겠다”고 소